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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D컬렉티브 Jul 22. 2023

[아트토핑_5to7]

죽음과 환희가 공존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시간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546 [더보기] 


영화 <5 to 7> 속 뉴요커 브라이언과 파리지엔 아리엘이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네이버 영화]출처 : 투데이신문


2014년 개봉한 영화 <5 to 7>에서 짧은 에피소드의 소재로 등장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5시에서 7시 사이, 뉴욕 맨해튼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만난 두 주인공 브라이언과 아리엘, 그들의 첫 데이트가 호퍼의 그림 속에서 펼쳐졌다. 그들의 대사를 읊조려 본다면, 뭐 이렇다.



“이건 죽음과 위협에 관한 거예요. 아주 멋진 배잖아요. 주위에 근사한 해변도 있고 날씨도 좋고요. 저 배에서 삶이 느껴져요? 삶의 반대가 뭐죠? 죽음이요, 하지만 핵폭탄이 터진 걸까요? 배 안에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죠”

-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호퍼의 <긴 다리 The Long Leg>(1935) 앞에서 미국 남자 그 자체인 브라이언과 프랑스에서 온 아리엘은 서로 다른 감상평을 펼쳐놓는다. 솔직함을 넘어서 서로가 얼마나 다른 인생과 삶 그리고 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도시


강 : ‘아트 토핑’ 첫 번째 픽(Pick)은 영화 <5 to 7> 속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영화 속 호퍼의 그림을 따라가며 호퍼를 재해석해보고 그의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호퍼는 한국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화가인데요. 김선 비평가님은 호퍼의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김 : 네, 좋아합니다.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호퍼 스타일의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호퍼만의 개성이 제대로 녹아든 그의 풍경은 시대를 불문하죠. 현재 도시의 풍경과 닮아있으면서도 도시만이 가진 특유의 감성과 매력이 느껴집니다. 도시의 화가라고 하면 당연, 호퍼의 작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강 :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2011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전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소개되기도 했어요. 바로 이번 에드워드 호퍼 단독 전시 포스터로 쓰인 ‘철길의 석양’이라는 작품입니다. 그때 처음 호퍼의 작품을 접했을 때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네요. 그러다 2018년 ‘엘리펀트 스페이스’에서 호퍼 작품과 재즈 연주를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공연에 가보기도 했네요. 잘 아시다시피 호퍼 작품을 그대로 담은 영화와 광고도 있고요. 호퍼의 영향력과 인기는 실로 대단합니다. 지난달 20일부터 열린 한국 첫 전시에서는 얼리버드 티켓이 13만장이나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호퍼에 열광할까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4월20일부터 8월20일까지 열릴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전시메인 포스터에 호퍼의 1929년 作 <철길의 석양>(1929)이 시선을 끈다. 

김 :  호퍼의 명작들은 낯이 익으면서 뭔가 우리와 닮아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아서 아닐까요. 호퍼의 풍경은 지금 우리의 모습, 지금 우리의 현재와 닮아있는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자기만의 세계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느 시대보다 지금 우리의 세대는 자신의 감정과 감각에 더욱 집중하는 경향이 커졌어요. 컬러감이 강한 색들이 공존하는 시대라고 할까요. 그런 우리에게 호퍼의 풍경은 단지 사진의 기록물이 아니라 나의 공간, 나의 장소 그 곳에서 나의 현재의 감정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색이나 시선을 교차시키는 대상의 풍경이 됐습니다. 특히 공간구성과 여백, 인물들의 모습들로부터 당신에게 도시, 자연 그 속에서 풍경의 일상은 어떤 존재인지 질문합니다.



영화 <5 to 7> 속 두 주인공은 1935년경 바다풍경을 배경으로 작업한 <긴 다리>(1935)를 보고 죽음과 위협에 대해 느껴진다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강 : 영화 <5 to 7> 속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긴 다리>와 관련한 대화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김 : 호퍼가 1935년 작업한 <긴 다리>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한 작품인데요. <철길의 석양>(1929)에서 호퍼다움이 뭔지 알겠다 하는 순간 <긴 다리>에서도 그의 스타일이 느껴집니다. 철도에서 호퍼의 여행에 대한 애착, 바다를 배경으로 한 <긴 다리>로부터 그의 바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느껴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물길을 가로지르고 있는 배가 앞으로 항해하고 있는 것인지 혹여나 기울어져 물속에 잠겨가고 있는지 싶다가도 멀리보이는 도착지의 평화로움은 스산함까지 줍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수평선 저 너머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고요함과 단조로움이 한적한 장소로 평온하게 다가오면서 스치는 스산함이라고 할까요.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에 파도의 물결이 스며들다가 이상하게도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아리엘의 목소리가 제 마음에 와 닿네요. ‘죽음’, 그리고 ‘위협’. 어떤 두려움의 대상도 고통을 주는 힘은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아리엘의 말처럼 대상을 보고 느껴지는 힘입니다. 배에 탄 자신을 생각하며 항해의 장애물이 없음에도 아리엘의 쓸쓸함과 고독이 묻어나는 말 한마디. 혹여나 호퍼가 이 작업을 할 당시의 감정을 생각해보게 할 만큼 불안 속의 한 인간의 모습이 상기돼요. 1929년경 본격화된 경제 대공황의 암흑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미국 경제 침체기로 지역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였던 시절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죠. 생각해보면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유년시절을 보낸 호퍼에게 강둑, 마을의 부두, 조선소는 그의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누군가와의 함께하는 즐거움보다도 그가 경험한 세상, 그곳에서의 자신이 느낀 경험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풍경의 장소를 스케치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보트와 바다는 자신의 인생과 뗄 수 없는 풍경이자 자신의 삶의 방향성, 그리고 미래에 자신의 두려움을 이입시켰다고도 볼 수 있죠.


영화 <5 to 7> 속 두 주인공은 <긴 다리>(1935)를 감상한 후 1942년경 호퍼의 ‘미국적 풍경’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을 함께 본다. 


강 :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여긴 사람이 있네요. 죽은 사람들이죠 (...) 모두 죽은 사람이에요. 맞은편 가게는 문을 다 닫았고 위층 아파트에는 아무도 안 살아요. 세입자들은 쫓겨났고 건물은 폐허가 됐죠. 이 호퍼란 사람이 미국 화가의 전형인가요? 그렇다면 미국은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라고 말합니다. 대도시의 명암을 그린 호퍼의 작품의 맥을 잘 짚은 대사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이 장면은 어떻게 보셨나요.


김 : 풍요 속의 이면. ‘멋진 신세계’가 과연 멋.질.까.에 대한 의문들이 드는 이런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의 풍경은 디즈니랜드처럼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조명의 전광판부터 크고 많은 양의 패스트푸드, 먹거리, 개방적인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비잔틴 미술의 특징이기도 한 황금의 배경과 후광에 둘러싸인 종교적 신화의 시대를 빗대어 메트로폴리스로서의 뉴욕을 황금의 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도시의 후광이 황금으로 빗댈만큼 화려하고 높은 건축물들이 빌딩숲을 이루고 중산계층의 호화로운 생활을 우리는 보통 생각하죠. 아리엘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 걸까요. 대체 우리가 생각한 미국에 대한 환상과 다르게 울창한 빌딩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둡다. 칙칙하다. 음침하다” 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스치게 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거예요. 살아있는 생명력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어요. 싱그러움과 뭔가 도전적이고 생기발랄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호퍼는 미국적인 것, 특별함은 없다고 알려줍니다. 그저 고단하고 지친 이들의 일상을 필터링 없이 등장시켜 우리를 놀라게 하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을 더 자세히 보면 보이실 거에요. 도시는 황폐함이 느껴지는 삭막함과 시간이 가지 않는 듯 한 무료함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식당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보이는 풍경은 모두 다 닫혀있습니다. 어둠의 그림자 속에 짙게 드리워진 맞은편 가게들은 사람들의 인적이 느껴지지 않아요. 유일하게 불이 켜진 카페의 실내조명 아래 앉아 있는 세 명의 인물들이 이곳의 유일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아요. 땅값이 비싸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한 것인지 두려움으로 인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인지. 이곳에 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는데요. 삶에 체념한 듯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과 냉소적이다 못해 삭막한 주변의 어둠속에 보이는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의 배경에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폐허의 공간이죠. 대도시가 주는 빛의 그림자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강 : 호퍼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작품을 꼽아주신다면.


김 : <5 to 7> 영화에서 나왔던 작품이기도 하고, 뭐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대중적인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이 단연 1위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이 작품의 제목이 호퍼의 부인 조의 아이디어와 그의 내조로 그의 작품이 20세기의 미국의 상징이 됐다는 생각을 해보면 조와 호퍼가 함께한 대표작품이 아닐까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두 남녀, 조와 호퍼같지 않나요? 그리고 홀로 한 남자의 모습 그 사이에 보이는 한 사람, 그리고 그 어둠에서 그곳을 비쳐주는 조명은 주변 밖의 어둠과 대조되는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게 하면서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한 장소 같은 시간에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사적인 삶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긴 하루를 마감할 때, 고단함과 뭔가 씁쓸할 감정을 경험할 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장면이 더 깊숙이 감정을 파고드는 거 같아요.


파리의 어느 한 카페에 담배를 피우는 백의의 광대가 테이블 중앙에서 시선을 집중시킨다. 호퍼의 1914년 作 <푸른 저녁>(1914)이다.


◎ 불안과 고독으로의 침잠


강 : 그 어떤 화가보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호퍼하면 ‘고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김 : ‘고독한 호퍼’, ‘고독한 미국적 풍경’으로 소개가 될 만큼 호퍼의 작품은 단언 고독이라는 감정을 스며들게 합니다. 호퍼의 <푸른 저녁>(1914)은 고독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까요.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지만 광대에게 쏠린 이목과 그가 경험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해본다면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슬픔을 전제로한 감정 상태였을거예요. 호퍼에게 고독은 언제나 그 옆을 붙어 다니는 수식어였습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생활을 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간 호퍼의 인생에서 그가 지나온 길을 생각해보면 그는 아내 조세핀 외에 혼자였어요. 작가로서의 명성은 쉽게 얻지도 못했어요. 생계와 꿈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처럼요. 생각처럼 뜻대로 나아갈 수 없었고 작업으로부터 누군가의 인정은 더더욱 그렇고요. 1913년경 뉴욕 <아모리쇼 Armory Show>(1913)에서 작품이 처음 판매됐지만 줄곧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으니 더한 고통과 불안이 있을까요. 화가로서 자신의 작업방식과 스타일에 스트레스가 많았을 거예요. 부인 조세핀 호퍼 외에 정말 혼자만의 길을 간 화가 중에 한명이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호퍼의 화가로서의 그의 녹록치 않은 인생사가 떠오르게 되네요. 그리고 워낙 호퍼의 작업스타일에서 그의 색채는 단연코 독보적이게도 호퍼적인 색감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둡고 침체된 색조들이 그의 표현에 주를 이룹니다. 당시 호퍼가 살고 있는 도시와 교외 지역 전체 깔려 있는 침체된 경제적 위기가 오버랩 되면서 도시의 아우라라고 할까요. 도시에서 품어져 나오는 분위기의 색감을 재현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강 : 도서 ‘빈방의 빛’(2016) 에서는 호퍼의 그림을 두고 “암시로 가득 차 있고, 연극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연의 ‘클라이맥스’, ‘절정’ 부분을 보여주는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 탄광촌>(1947), <호텔 룸>(1931) 등 다수의 작품에서 무슨 일이 바로 일어나기 전과 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작가요.


김 : “무슨 일이 바로 일어나기 전”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영화감독으로서의 호퍼의 모습이 상기가 되는데요. 사진을 좋아하고 영화광으로 소문난 호퍼를 두고 사람들은 영화폭식자라 불렀어요. 영화가 하나의 영향이 됐고 해프닝적인 상황을 서사적으로 풀어내면서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할까요. 특히 호퍼의 작품에 영감을 준 장소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 탄광촌, 호텔 등 무대 위에 연출된 도시가 배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당시 미국의 시대적 암울함이 무대의 주인공들의 역할들을 통해서 드러났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그 장소의 분위기를 기록해 담아낼 수 있을까”, “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하는 호퍼의 시선이 카메라가 된 셈이죠. 호퍼가 얼마나 깊이 있게 세상을 보고 풍경에 대해 사유했는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퍼는 그림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도시를 배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대상에 대한 연출력과 빛의 효과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호퍼만의 표현방식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줬습니다. 장면 연출에 재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요. 삽화 일러스트로 활동을 하면서 장면을 그려내는 것은 누구보다 정확한 묘사와 디테일을 살려서 인물과 공간의 구도를 연출하는 표현방식은 탁월했던 거 같아요. 결과적으로 호퍼가 만들어낸 장면 하나 하나는 상당한 연출력이 숨어있고, 과연 그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의 한 단면을 자연의 한 풍경을 그렸어요. 또 그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다 보니 관람자로서의 우리는 호퍼의 명장면에 빠져들어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이 느끼게 되죠.



강 : 호퍼의 그림에서 ‘빛’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들 설명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순간과 찰나를 담는 화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호퍼는 ‘시간을 그리는 화가’이지 않았을까요. 빛이 들어오는 시간, 바람이 불어오는 시간, 칠흙 같은 어둠이 내리 깔리는 시간. 시간적 개념이 호퍼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중요하다고 느껴지는데요. 인물 행위 자체보다는 시간적 개념이 더욱 중요해 보이는 작품도 많이 보입니다.


김 : 호퍼에게 빛은 공간의 구조와 풍경, 장면 연출에 필수적인 중요한 수단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조명과 자연의 빛으로 안과 밖의 공간의 경계를 구분하고 풍경을 더욱 극대화시켜 포착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필수 아이템입니다. 빛으로부터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장면의 상황에 긴장감을 높여주니깐요. 파리 여행을 즐기고 그 장소의 풍경의 장면을 많이 남겼던 호퍼가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 또한 적지 않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빛’이기도 해요.


짧게 소개하자면,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인상, 해돋이>(1872)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자연의 풍경에 ‘찰나의 순간’을 표현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알려준 그림이기도 한데요. 단순히 장소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시간이 도입된 거죠. 시간에 따라서 오전과 오후의 빛에 따라 빛의 세기와 시간대에 따라서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호퍼에게 빛은 색채의 표현이자 그 순간 찰나에 받은 ‘인상’으로부터 오는 장소의 시간적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색채가 주는 빛과 실제 사물에 내려쬐는 빛에 따라서 화폭에 묘사된 장소의 시간과 분위기가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죠.


특히 야외에서의 자연광과 실내공간의 조명의 빛을 자유롭게 표현한 호퍼는 공간의 구조와 형태에 따라서 장면을 더욱 디테일하게 살리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상태가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드가의 영향을 빼놓을 수가 없네요. 예를 들어 본다면,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발레 무용수들을 상기해보더라도 실내공간에서 빛에 따라 발레 동작을 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포즈들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요. 호퍼 역시 카페나 호텔, 사무실을 배경으로 어떤 행위와 동작이 슬로우 모션처럼 재생되는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긴장감을 흐르게 하죠.


여름 대부분을 매사추세츠 주의 케이프코드에서 보냈던 호퍼는 해안지역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햇볕이 잘 드는 스튜디오를 설계하고 건축했다.


강 : 호퍼는 사실주의 작가라고 불리지만 <바다 옆 방>(1951)이나 <이른 일요일 아침>(1930), <오전 7시>(1948)는 마치 현실에 없는 공간과도 같아 초현실주의 미술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김 : 호퍼는 빛과 그림자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방식이 남달랐습니다. 도시나 자연의 장면을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의 재현을 넘어서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풍경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호퍼의 무의식이 반영된 사색적인 풍경이라서 그럴까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바다 옆 방>(1951)만 보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열린 문을 사이로 펼쳐진 바다와 조용하고 한적한 실내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은밀하고도 신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 일요일 아침>(1930)도 생각해보면 <바다 옆 방>(1951)보다 앞서 작업한 호퍼의 도시의 한 장면인데요. 도시의 거리가 이렇게 한적할 수 있을까 싶어요 .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수직과 수평의 연속선상으로 줄지어 있는 건물 사이로 내리쬐는 기하학적 구조로 제작된 텅 빈 거리의 연극적인 무대로 착각할 만큼 시선을 주목시키는데요. 그 다음 무언가 일어날 거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나요? 실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에 배경이기도 했던 뉴욕의 7번가 거리의 풍경인데요. 밤과 다르게 낮의 거리가 빛의 효과로 인해 더욱 낯설면서도 익숙한 신비로운 장소가 됐다고도 볼 수 있죠.


또 “으스스하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빛이 가려진 장소를 환하게 비쳐주지만 으스스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죠. <오전 7시>(1948)도 이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요. 상점 같은데, 상점의 선반은 듬성듬성 비어 있고 벽에 걸린 시계는 또 어떤가요. 특정한 시간대, 제목처럼 7시임을 알려주면서 그 시간 그 장소의 황량한 분위기는 뒤에 보이는 나무들 사이로부터 암시되는 어둠으로 스산한 기운이 다가오네요.


강 : 호퍼는 미니멀리즘으로 자신만의 재구성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제 세계보다 훨씬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 : 호퍼의 시선을 따라서 본 풍경은 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념비적인 미국의 한 공간이 표현됐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수많은 드로잉나 유화작업을 통해서 호퍼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도시의 풍경의 변화를 관찰하고 공을 들였는지를요. 다만 그 작업들 사이에서 무언가 공허함과 허기짐을 가져오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들기도 하는데 매우 차갑고 도시적이기 때문인 거 같아요.  한마디로는 미니멀리즘적으로 재구성된 세상의 풍경이 이렇게 단조로울 수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당시 호퍼의 시대는 높디높은 수직적인 건축물들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가고 유럽적인 양식과 절충한 고풍적인 빅토리아양식의 건축스타일이 곳곳에 배치되면서 미국만의 트렌드와 스타일의 환경을 만들었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에서도 주배경이 된 건물들의 구조나 형태의 골격만 보더라도 매우 미국적 스타일의 양식으로 골조를 세운 건축물과 아파트, 공원이 도시 전체를 완성시켰습니다. 또한 워낙 건축물들이 높다보니 자연의 채광은 제대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빛이 귀한 공간들이 많았을 것이라 보여요. 호퍼에게 빛은 자연의 채광을 넘어서 빛이 필요한 공간에 빛을 만들어줬다고 볼 수도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바다 옆 방>(1951)은 미국적 풍경의 기념비적 단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참 “미국적인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수직과 수평구조의 단조로움의 붓질은 여과 없이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근데 또 자세히 호퍼의 붓질을 들여다보면 거칠고 투박하기도 해요. 하지만 안정적이면서도 구도적으로 조화롭고 균형감이 느껴진 형태로 공간을 그렸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시각과 색조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듯 정확하고 반듯해요. 깔끔하면서도 색의 여백과 단조로움으로부터 오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강 :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읽기 어렵습니다. 호퍼는 무질서한 세상에서 안정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을 그린 건 아닐까요. 아니면 반대로 사물들에 잠식당한 세상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요.


김 :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이나 <푸른 저녁>(1914)에서처럼 호퍼의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그의 인물들은 표정은 무덤덤하면서도 세상과 선을 긋는 듯해요. 나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듯, 독백하는 한 사람의 연극 무대와도 같습니다. 호퍼의 인물들은 표정으로 자신들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은 “나는 사회의 일원이지만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라는 표정으로 말하죠. 고뇌이고 사색하는 자신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침묵이 주는 불안이라고 할까요. 고요하다 못해 담담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무표정한 이들로부터 우리들은 걱정스러운 우려를 보낼 수밖에 없죠. 호퍼가 주는 침묵의 표정은 사회에 대한 그의 체념이자 불안이 잠재돼 있는 현실에 대한 걱정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낯설지 않은 장소를 배경으로 호퍼의 현실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을 색채로 잠식시키거나, 극적인 장면연출로 빛의 공간으로 재구성해 하나의 캔버스 프레임에 들어오게 합니다.


호퍼의 동반자이자 그의 작품세계에 영감과 아이디어를 준 조세핀 호퍼를 주인공으로 한 <햇빛 속의 여인>(1961)은 그의 후기작이다.


◎ 소외와 폐허 속 카타르시스


강 : 호퍼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아내 ‘조세핀 호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의 인생에서 아내는 어떠한 의미였나요.


김 : 앞서 소개해드린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이 작품만 봐도 호퍼가 얼마나 조세핀의 영향을 받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반자이자 동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세핀을 모델로 한 1961년 <햇빛 속의 여인>(1961)은 대표적인 호퍼의 작품이었고요. 참 그녀는 외로웠던 길을 걸었던 거 같아요.1924년 호퍼와 결혼한 조세핀 역시도 그처럼 화가였어요. 더욱이 조세핀 호퍼는 자신의 작품 활동의 조력자이자 하우스 와이프라는 다양한 역할로 그를 도왔습니다. 화가였던 아내, ‘조세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 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가로 서로 같은 길을 가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던 부분도 없지 않았던 거 같아요. 작품세계부터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색, 어떤 주제 등으로 작업을 할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온갖 고민을 함께 나눴어요. 그러한 그들의 관계를 우정과 사랑 모두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결국 호퍼의 예술세계는 그만의 특별함이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아내 조세핀과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죠.


워낙 호퍼와 조세핀의 잦은 싸움은 일화처럼 잘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관계가 호퍼의 활동에 원동력이 되고, 조세핀의 격려와 질책은 그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솔직히 호퍼를 위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조세핀의 화가로서의 삶은 달라졌겠죠. 그의 작품 곳곳에 조세핀의 아이디어와 흔적들이 있어요. 저는 여성으로서 조세핀의 활동이 호퍼에게 가려져 그녀의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는 그 부분이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호퍼는 정말 동료이자 부인을 잘 만난 거 같아요. 여자 모델은 조세핀을 모델로 평생 작업을 한 것을 보면  조세핀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이 느껴지면서도 집착이 보여집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호퍼도 분명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강 : 호퍼의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요.


김 : 미술계에서는 호퍼스타일, “호퍼레스크적”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1930~40년대의 미국사회의 증권가 위기에 따른 경제적 침체기와 대공항기를 배경으로 주 작업을 펼쳤던 호퍼는 자연과 도시를 넘나들며 전통적인 풍경화의 선입견을 깨고 고정관념을 파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자연이나 도시의 풍경의 현실이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호퍼의 그림에서는 낯설게 느껴지죠. 생동감이 없는 풍경의 단상을 현실과 상상이라는 관계망에서 재현의 힘을 빌려 표현했다고 할까요. 호퍼의 영향을 상기해볼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조지 시걸, 뱅크시 그리고 에드 루샤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조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의 경우는 실물뜨기로 조각의 형태로 제작한 인물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호퍼의 회화가 3차원적 이미지로 형상화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조각된 인물들이나 배경들이 실로 살아있는 듯 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도시에서의 익명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잘 투영돼 있습니다.


호퍼는 당시 사회로부터 개인이 경험한 폐허의 감정을 인물들의 모습에 담아냈어요. 풍경이라는 장르가 더 이상 재현, 사진의 기록물로서가 아닌 개인이 경험한 현실과 심리상태를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장르의 특수성과 역할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했습니다. 예술은 곧 한 삶의 경험에서 빚어져 나온 결과물이자 과정을 보여주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호퍼는 우리에게 또 한 번 경험시켜주네요.


강 : 이렇듯 호퍼를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니 영화 <5 to 7> 속 호퍼의 그림이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김 : 저도 동감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에서처럼 아리엘과 브라이언의 대화 속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예술은 누군가의 미래, 누군가의 고민, 타인에 대한 시선과 생각들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대상이죠. 그들 덕분에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호퍼의 작품을 우리는 만나게 됐는데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구겐하임미술관에서의 호퍼의 그림에 관한 대화는 익숙하고 낯익은 풍경이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서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죠. 


강 : 마지막 질문입니다. 호퍼라는 예술가를 정의해주신다면.


김 : 호퍼는 누구나 보고 경험하는 일상의 도시와 자연을 다른 시선과 색채로 세상을 바라보고 감각적으로 연출한 아티스트라는 설명이 맞겠네요. 미술이라는 게 참 그런 거 같아요. 알면 알수록 누군가의 한 인생과 삶이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대상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할까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예술이라는 맥락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가까이 와있는지 새삼 알게 됩니다. 예술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더욱 감각적으로 살아가는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왼쪽1925~30. 캔버스에 유채, 64.5), (오른쪽)1950년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 조지 플랫 라인 스


출처 : 투데이신문(https://www.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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