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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백 Dec 18. 2020

쉬는 게 쉬는 게 아닌데 쉬고 싶구나

제대로 충분히 쉰다는 소망


“손 끝 하나 안 움직이면서 두 달 정도만 쉬면 다시 신나게 일할 것 같다.”

몇 년간 나도 주변인들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언제부터 만족스럽게 쉬지 못하게 됐지?

잡무를 처리하고, 누군가를 챙기고, 이런 생각 저런 걱정으로 휴식을 망친다. 그렇게 쉰 후에는 상쾌하지도 않고 오히려 무기력해질 뿐이다.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유아기 때처럼 충분히 푹 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아마도 우리는 습관성 워커홀릭 환자로 일종의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워커홀릭은 업무를 비롯해 생활 유지를 위한 모든 노력에 찌든 인간상을 포함한다.




난 진짜 엄청 게으른 사람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한 번 누우면 방바닥에서 몸을 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누워만 있으라고 하면 며칠 동안 누워 지낼 수 있다.


그런 나에게 아무 관리감독도 없이 집에서 혼자 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쉴 틈 없이 계속 내 몸을 바쁘게 굴리려 노력한다. 내가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길은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는 방법뿐이다. 분 단위로 쪼개 놓은 스케줄 속 부엌에서 혼자 먹는 점심 식사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재택으로 개인작업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을 주위에서는 보통 ‘집에서 노는 애’라고 부른다. 난 나름 바빠 죽겠는데 따로 사는 가족들은 내가 하루 종일 노는 줄 알고 아무 때나 방문하려 한다.

그렇게 게으른 내가 이렇게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항상 조바심이 났다. 하루빨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쉬고 있어도 초조했다. 쉬는 행위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나는 쉴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주말도 쉬지 않고 평일과 비슷한 스케줄을 강행하기로 했다.


근데 생각보다 부작용이 컸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보상심리로 새벽마다 폭식과 폭음을 저지르고, 몇 주 후 도로에 퍼져버린 자동차처럼 후유증으로 일주일간 누워 지낸 것이다. 오만가지 걱정 속에 시간이 흐르는 걸 절망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며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건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는 걸. 결국 그 상태로 몇 가지 프로젝트는 정이 떨어져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자기 목표가 뚜렷하거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혹은 나처럼 자신의 역량에 대한 불안감이 큰 사람일수록 일 중독 증상에 무디어져 쉬는 것에 무심해진다.

본인이 처리해야 할 할당량에 대한 강박이  큰 탓에 시야가 좁아져 심신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비교적 큰 성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결국 번아웃으로 피폐해지므로 롱런에는 부적합하다.


내가 만약 저 시기에 조바심을 버리고 쉬는 날을 충실히 즐겼더라면 다른 작업 계정이 몇 개 더 있었을 테지만, 쉬는 것에 대한 경종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 것. 너무 자신을 개처럼 부려먹지 말 것.

쉬는 날은  일이든 뭐든 알 게 뭐냐. 그냥 한 명의 순진한 바보가 될 것.

우리는 언젠가 결국 해낼 테니까, 불안해하지 말 것. 이건 나에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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