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삶 Sep 12. 2021

네가 맞은 돌은 누가 던졌을까

- 범죄를 막기 위한 재범 위험성평가, 그 시작에 대해서-

- 전체적인 줄거리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후 살을 붙여서 에피소드 별로 올리겠습니다- 

# 1

수형자들이 교도소에서 나가는 시간은 새벽 5시경이지만 아이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다. 조그만 여학생 둘이 날이 저물 때부터 새벽까지 교도소 문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버티고 있었다. 옆에는 유튜버들이 확성기를 들고 떠들고 있었다.

“우리가 이런다고 저 사람이 보기나 할까? 변하는 것도 없는데 추운데 이러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뭐, 그래도 뉴스에 한 줄 나오겠지”

정문을 지키던 제복 입은 아저씨가 나왔다. 레쓰비 캔커피를 하나씩 주면서 묻는다. 

"학생인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요? 그놈은 새벽에나 나갈 텐데"

# 2  

그놈은 석방 후에는 안산의 어느 동네 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가족들은 가난했고 동사무소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러 나섰다. 그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요건에 해당했고 나라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는 나라에서 범죄피해자 구조금이 나왔다. 그나마 그것을 받은 것 그 제도를 알고 있던 한 명뿐이었다. 다들 슬픔에 잠겨 제도 같은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놈은 벌써 석방되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원을 받고 있었다.

# 3  

정 계장은 일에 있어서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우직했고 물러날 줄 모르는 저돌적인 힘으로 업무를 밀어붙였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그의 성격은 학자로서, 공직자로서는 좋은 태도였다. 그러나 윗자리로 올라가기는 어려웠다. 이제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에게는 대학생이 된 아들이 있었고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아내가 있었다. 재작년 승진 기회 때 그는 분류센터 설립을 위해서 분주히 돌아다녔다. 서울지방교정청에서 일하던 동기는 그때 일주일 휴가를 쓰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동기한테 전화가 왔다.

“그거 만든다고 승진하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고 공부해”

“아, 그래야지~”

그러면서도 일에 매달렸다. 경기대학교에 가서 범죄심리학 교수를 만나고 분류 과장을 따라다니면서 기획재정부에 예산안을 만들어 올렸다. 문득 멍하다 싶으면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났고 분류센터가 남부구치소에 들어섰다. 그리고 동기는 교정관으로 승진해서 지방으로 내려갔고 그는 본부에서 일선으로 내려갔다.

# 4  

미국에서는 FIRST ACT를 발표했다. 이제 수용자 처우에서 재범 관리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과거 마약 범죄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응보형주의로 돌아섰던 것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이제는 사회의 안전을 위해 다시 사회에 나서는 수형자들의 재범을 막는 것에 집중할 시기가 온 것이다.

미국 교정행정의 변화에 따라 우리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 5  

교정본부에서 내려가 일선 분류과에서 일했지만, 전문가가 없다 보니 가만 놔두는 법이 없었다. 법무연수원에서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법무연수원 강의실에서 분류심사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우리 교정은 기존의 수용자 처우 중심에서 석방한 범죄자의 재범 관리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일선에는 여러분들이 서 주셔야 합니다. 전국 분류과와 분류센터에서 범죄자의 신입 심사를 거쳐 석방 전 평가까지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업무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앞에 있는 직원들의 표정은 별 반응이 없었다. 열성적으로 듣고 필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앞으로 일 또 늘어나겠네’ 싶은 표정이었다. 그중에서 한 친구가 질문했다.

“분류센터와 분류과의 역할이 다른데 재범 관리의 주축은 어떤 기관이 할 수 있을까요? 분류센터에 가면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나요?”

 # 6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한직이었다. 이제는 그만 물러나라고 압박하는 셈이다. 본부장까지 오르지 못해 아쉬운 것보다도 아직도 몇 년은 남은 정년이 아쉬웠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 동생이 왔다. 모처럼 연수원에서 교육이 있다고 했다. 적적한 연수원에서 반가운 얼굴이다.

느닷없이 정 계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말씀하시길 이제 교정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좋은 말이네. 그렇지만 이제 나는 힘이 없어. 본부장한테나 가서 말해봐. 허허”

“제가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근속으로 겨우 7급 달고 이제 나이도 들어서 본부에서 일하지도 못합니다. 그냥 조용한 곳에서 취미생활하면서 지내려고 했는데 욕심이 좀 생겼습니다. 센터에 가서 일해볼까 합니다.”

“굳이 나한테 말 안 해도 근무경력이 있잖아. 그냥 지원하면 되지. 안 그런가? 너 정도면 누가 말 안 해도 뽑아 줄 거야”

 # 7

독거실 순찰하는데 동국이가 또 소리를 지른다.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들어올 때마다 잔뜩 쫄아든 몰골로 와서는 이제 살이 포동포동 쪄서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나이 60이 다 되어서 맨날 교도소 들락거리는 꼴이 볼썽사납다. 구치소가 제집인 줄 아는 모양이다. “보안과장 불러!” 하고 소리치는 것을 보니 나랏밥을 먹고 건강해졌나 보다. 좀 조용히 있으라고 말했더니 느닷없이 바지를 내린다. 뭘 하는 꼬락서니인가 봤더니 “에라 똥이나 먹어라.” 하고 무언가 던진다. 그나마 독거실 창이 철망으로 되어있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똥 묻은 관복 빠느라 힘들 뻔했다. 동국이랑 한바탕 하고 진이 빠져서 사소 간에서 오뚜기 통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커피 믹스를 탔다. 담당실에서 법무샘을 보던 중 문득 서울청 직원 모집 공고가 보였다.

# 8  

역사에 남을 독립 교정 시설 최대 전염병 감염사태였다. 뉴스에는 본부장의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고 장관이 가는 앞길에 안내하며 손짓하는 모습만 간혹 비췄다. 현장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먹히지 않았으며 본부장이 움직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벌어진 일의 수습에 바쁜 가운데 우리가 올린 재범 위험성 방지를 위한 청사진은 서랍 속에 묻혀버렸다. 

# 9  

"이제 우리 교정도 수용자 처우를 내세워 안으로 침잠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 수용자 처우는 그 한계에 도달했으며 밖에서는 출소한 지 얼마 안 되는 범죄자들이 다시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수형자의 재범 관리에 더욱 힘써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형자들에 대한 많은 자료를 축적해 왔으며 이제 보호관찰과 경찰과 공유하며 수형자의 재범을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협의체를 구성하고 수형자의 심리와 재범 위험성을 파악하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합니다. 이들을 바탕으로 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파악하고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사회에서 재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전문기관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10  

하지만 그분은 너무 아깝습니다. 센터는 그분이 없으면 그냥 건물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교정도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담장 안에 도둑놈들만 붙잡고 예산 타낼 생각이나 할 겁니까? 이제는 밖으로 눈을 돌려 우리가 축적한 자료를 활용하고 범정하고 경찰과 연락하고 협력해서 밖에 있는 우리 국민이 범죄자들에게 피해를 보지 않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 11  

또다시 사회가 떠들썩했다.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과자가 사람을 죽였다. 도대체 정부는 전과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법은 두 가지야. 인력과 예산을 늘려서 전국의 수용자를 다 커버하던지. 아니면 선택과 집중으로 몹시 나쁜 놈들만 관리하던지.”

“범정국도 그렇고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부족하지. 저기 건물에 무슨 기획단만 많아지고. 손발이 움직이고 머리는 깔끔하고 단순하게 지시를 해야 하는 데 손발은 짧고 머리 역할만 하려는 사람들만 많아서 문제야”

# 12  

“전 그냥 이렇게 살랍니다. 취미 생활하고 아내랑 잘 지내면 되지 뭐 해보겠다가 아등바등 힘쓰겠습니까? 정작 열심히 뛰어야 할 윗사람들은 사무실에 처박혀서 숫자 놀이만 하고 실적만 챙기려고 하는데. 제가 힘쓴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 13

양천경찰서는 사각형 건물이 마치 학교처럼 생겼다. 입구의 의경이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도 예전 학교 건물에 수사과장실은 교무실처럼 생겼다. 복도를 쭈뼛거리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온다.

“교정에서는 오래전부터 분류센터를 통해 수용자들, 특히 성폭력 살인강도 등의 고위험 범죄자들의 자료를 축적해왔습니다. 물론 경찰에서도 많은 자료가 있겠지만 안에서 생활한 모습은 또 다를 것입니다. 이제 이런 협의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전과자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면 재범 위험성은 현저히 줄어들리라 기대합니다.”

“아, 저는 머 많은 거 바라지 않고요. 교정에서 심리검사 한 거랑 수용 생활 중 징벌받은 거 머 그 정도만 알려주시면 돼요. 회의는 장관님이 특별히 말씀하셔서 하기는 하는데, 그냥 자료만 보내주세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 14

“어차피 한순간에 다 이뤄질 거로 생각한 건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천천히 해나가시죠.”

“그동안에도 수형자들은 석방되어서 계속 나갈 건데. 좀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

“결재하는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맡은 거나 열심히 하죠. 그래도 이렇게 시작한 게 어딥니까?”

# 15  

연합뉴스에서 분류센터 취재를 왔다. 인터뷰를 하면서 분류센터에 대해서 소개를 했다.

“일선의 분류과에서 하는 심사가 일반 건강검진이라고 할 때, 우리 분류센터에서 하는 심사는 정밀 건강검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피검사도 하고 내시경도 하고 MRI도 하는 정밀 건강검진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분류센터에서는 그와 같이 사회에서 고위험 범죄, 살인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MMPI를 비롯한 각종 심리검사 도구를 활용하고 전문인력을 통해서 정밀하게 그들을 분석하고 석방 전에는 평가하는 업무를 하면서 사회에서의 재범을 줄이고 사회 안전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16  

지난 몇 년간 열심히 뛰어왔다. 범죄심리학 교수와 재범 위험성 도구를 수정하고 윗선에 전문인력 확충과 궁극적으로 분류 전담 기관 설립을 이야기하고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협의체 설립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 결과 정 계장은 여전히 승진하지 못했고 분류센터에서 벌써 6번째 센터장을 만나고 있으며 겨우 경찰서 회의만 몇 번 들락거렸다. 사회는 느리게 변했고 고구마가 얹힌 듯이 변화는 더뎠다. 그놈이 나가던 날 새벽 플래카드를 들고 밤새 교도소 앞을 지키던 학생이 뉴스에 나온 것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위해 뛰어왔을까.

# 17  

“그래도 경찰서는 들어갔잖아. 이제 네가 승진해서 이어가면 되지”

“이번 생은 글렀습니다. 코스피가 4천 눈앞인데 사는 주식마다 폭락하는 제가 무슨 운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승진도 못하고 나이도 먹어서 이제 본부에서도 안 불러줄 겁니다. 그저 계장님 믿고 달려왔는데, 출장 다니느라 산 양복이 이제 맞지도 않네요. 그냥 조용한 교도소나 가서 일 하렵니다”

“그래도 저 뉴스 나올 때 좀 멋지지 않았습니까?” 

작가의 이전글 오래 보아야 예쁘고 다정해야 살아남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