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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경 딸 Feb 27. 2021

볶은 건 오징어가 아니라

엄마의 애간장이란다 요년아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싱크대 앞에 발 매트가 깔려 있었다. 고무로 만들어져 발로 밟으면 발바닥 모양 고대로 자국이 남는 폭신폭신한 매트였다. 엄마는 발 매트를 방석 삼아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곤 했다. 거기서 밥을 먹기도,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아빠는 멀쩡한 식탁 놔두고 왜 궁상맞게 바닥에 쭈그리고 앉느냐며 타박하곤 했지만,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싱크대 앞자리를 고수하곤 했다. 그 몇 뼘 안 되는 자리에서 웃기도, 울기도 했다. 아마 크지 않았던 그 집에서, 엄마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 중 하나가 그 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집에 살던 때, 아마 초등학교 삼사학년 때쯤의 일이었을 거다. 내가 반나절 정도 실종 아닌 실종이 된 적이 있었다. 요즘에야 어린아이들도 다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초등학생은 흔치 않았다. (나중에 이 일이 핸드폰을 사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집에 전화할 일이 있으면 공중전화에서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기억 속의 그 날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 함께 하는 춤 연습이 숙제로 주어진 날이었다. 꽤 흥이 올랐었는지, 학교를 마치고 나서도 연습은 끝날 줄을 몰랐다. 학교가 끝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네 집에서 연습을 두어 시간 더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집에 연락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어렸으니 별생각 없었겠거니, 짐작할 따름이다.

  한편 그 시각 엄마는 집에서 애를 태우고 있었더란다. 진작에 집에 왔어야 할 아이가 오지 않으니,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기다리던 엄마는 안 되겠다 싶어 선생님께 전화했고, 선생님께서는 평소처럼 하교했는데 아직도 집에 오지 않았냐며 무척 당황하셨다고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갈 무렵,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룰루랄라 실내화 주머니를 흔들며 집에 들어 와보니 엄마는 싱크대 앞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내가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다고 했다. 어린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으레 그렇듯, 불길한 예감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을 것이다. 엄마는 동네 문구점부터 피아노 학원까지 온 동네를 쥐 잡듯 뒤졌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숨이 가빠왔다. 시작은 한 줄기 흐릿한 불안함이었지만, 어느새 방 안을 꽉 채운 두려움이 숨을 막히게 했던 것이다. 선생님뿐 아니라 친한 반 친구들 집에도 전화를 돌렸는데 아무도 내 소식을 몰랐더란다. 결국, 해 볼 수 있는 걸 다 해본 엄마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싱크대 앞에 앉아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온 거였다.     

  얼마나 얄미웠을까. 아니 고맙기도 하면서 화도 나면서, 어이가 없었겠지. 아마 아직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을 테다. 나는 태연하게 ‘엄마 왜 또 그러고 앉아있어?’하며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들어왔고, 엄마는 ‘너, 너..!’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크게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서는 몇 시간 동안 내 짧은 실종(?)시간 동안 엄마가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다가, ‘집에 곧바로 오지 않을 때에는 꼭 엄마에게 먼저 연락을 해줘야 해’라는 당부와 함께 끝을 냈다.     

 


  그 날 저녁 메뉴는 오징어볶음이었다. 길쭉길쭉 먹기 좋게 자른 오징어에 달큰한 양배추를 한가득 넣어 만드는 오징어볶음.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메뉴 중 하나였지만 어쩐지 밖에서 돈을 주고 사 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건 오징어볶음이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준 오징어볶음이었나 보다. 쫄깃한 오징어와 부드러운 양배추가 함께 씹히는, 적당히 매콤한 오징어볶음. 엄마는 울어서 충혈된 눈과 번들번들해진 눈가를 찬물로 한 번 씻어내곤, 가스레인지 불을 올렸다. 나는 그 앞 식탁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었다. 

    


 - 거봐, 엄마!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줘. 잔소리만 하지 말구.
그래야 이렇게 오징어볶음도 해줄 거 아냐!
이런 것도 내가 있어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무슨 정신으로 그런 당돌한 말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엄마도 웃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무안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좋아하는 오징어볶음을 먹게 되어서 신이 났던 것 같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웃고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 아직도 나는 엄마가 해준 오징어볶음을 좋아한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금징어’라고 불릴 정도로 값이 오른 오징어를, 엄마는 다섯 마리나 사왔단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담는 그릇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오징어볶음은 같은 맛이 난다. 아니, 이제 성인이 되어 엄마의 손맛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된 지금은 더 감칠맛이 난다. 귀한 오징어에, 그보다 더 귀한 엄마의 손맛이 더해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징어볶음이 완성되었다. 뜬금없이 나는 싱크대 앞에 앉아 울고 있던 그날의 엄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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