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casablanca
아마 내가 그때 스페인에 있지 않았다면 모로코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모로코의 위치조차도 몰랐다. 스페인에서야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과 가장 가까운, 스페인과 바다 건너에 위치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커다란 호기심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 아프리카를 언제 가볼까 싶었다. 모로코 행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결정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의 난이도에 비해 준비는 참 미흡했다. 정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니 별다른 준비 없이도 대충 예상한 대로 돌아가는 패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모로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략적인 이미지조차 흐릿했다. 다만 '아프리카에서 상대적으로 잘 사는 나라' 라는 짤막한 정보만 인식한 채 비행기에 탔다.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도시는 마라케시였고, 마라케시의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낙후되고 무질서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는 어마어마한 바가지를 쓰지 않으면 타기가 불가능했고, 숙소는 구글 맵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구불구불한 골목 안에 있었고, 사람으로 붐비는 시장에서는 파리가 앉아있는 음식들과 온갖 종류의 짝퉁 상품들이 판을 쳤다. 사방에서 들리는 니하오와 곤니치와, 신호등과 횡단보도의 부재,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낙타까지... 한국에서도, 여행을 하면서도 깨끗한 도시에서 벗어나본 적 없는 나에게는 이 모든 광경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마라케시에서의 일정은 1박 2일이었다. 그리고 1박 2일만에 나는 내가 이국적이지만 다소 불편한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열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여행 경험이 많은 분들에겐 마라케시 정도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어서 다시 '문명의 단 맛'을 보고 싶어 허덕였다.
다음 도시였던 카사블랑카 기차역에서 내린 직후 나는 완벽히 만족했다. 익숙한 도시의 모습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높은 건물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고 심지어 트램 정류장까지 보였다. 어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푼 다음 괜찮은 식사를 하고, 큰 체인 슈퍼마켓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고 싶었다.
그러나 모로코는, 카사블랑카는 다시 한 번 나를 배신했다. 어째 숙소로 가까워질수록 이 도시는 점점 황량해지고 있었다. 길거리의 인구 밀도는 블록을 지날 때마다 급격히 줄어들었다. 점차 언제부턴가 관리가 되지 않는 것 같은 건물, 빈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도대체 안에 사람이 있는 건물은 무엇인지 궁금한 지경이 되었다. 어떤 거대한 빌딩의 벽면에는 해골 모양 같은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는데 괴기스러움이 이를 데가 없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성적인 농담을 내뱉는 아저씨까지 있었다. 나름 호텔이라는 숙소마저도 어딘가 음산했다. 표정 없는 직원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의 분홍색 조명도 꺼림칙했고, 호텔 복도에 걸린 그림들마저 주인의 취향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카사블랑카에 대한 나의 인상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유령 도시'
정말로, '유령 도시'가 배경인 영화를 찍는다면 이곳이야말로 매우 완벽한 로케이션이라고 생각했다.
레스토랑이 몇 군데 있긴 했으나 연 곳이 없었다. 직원의 말로는 몇 블록을 더 걸어가면 다운타운이 있다는데 더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는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를 하나 찾았다. 이름 모를 핫도그 몇 개를 테이크아웃한 뒤 황급히 호텔로 돌아갔다.
결국 우연히 만난 그 핫도그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다. 맹세컨대 그것은 살면서 먹어본 모든 핫도그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이었다. 데우지 않은 편편한 빵 위에, 공장에서 바로 나온 듯한 차게 식은 햄과 시큼한 올리브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핫도그. 말하자면 음식이라기보다는 식재료들이 성기게 뭉친 덩어리에 가까웠다. 나는 한 입을 먹자마자 두 개나 산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흡사 고무를 씹는 듯한 맛이 나던 카사블랑카에서의 핫도그. 우리는 배탈이 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희한한 도시의 광경과 혀끝에 맴도는 시큼한 맛으로, 어쨌든 카사블랑카는 내게 굉장히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여행지로 남게 되었다. 분명히 잘 계획돼 지어진 도시 같은데 사람이 없고, 먹으라고 준 핫도그인데 고무 맛이 나는 모순은 방문자인 나에게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현실과 비현실의 인식이 충돌하는 체험이었다. 다음 날 하싼 2세 모스크라는 걸출한 사원을 방문하였지만 그조차도 '고무 맛 핫도그'의 존재감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카사블랑카는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엄청난 도시였음에 분명하다.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가 바로 라마단 기간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 정작 카사블랑카가 아닌 탕헤르에서 아이스크림을 잘못 사먹었다가 배탈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