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서 주최된 나의 전시회, 오프닝 나잇
전시회 준비를 마친 후, 초조한 마음으로 오프닝 나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사람이 없는 전시회 오프닝 나잇이 얼마나 쓸쓸하고 초라한지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운 좋게 대략 60병의 와인들을 스폰받았다. 감사합니다, 스폰서님들.
너무 많이 받았나.. 미쳤나.. 싶었지만 일단 챙기고 보자!!라는 심보였다.
한 명씩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좋았던 게 우리 슈퍼바이저는 바에 가서 손님들에게 와인과 맥주를 서빙하기 시작했다. 사실 RSA(호주 주류 취급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그 사람뿐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으스대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처해서 일하는 저 모습이 너무 좋았다. 인턴 학생은 카운터에 앉아서 오시는 관객들을 맡았다.
30여분 만에 사람들이 꽤 들어왔다.
어떤 소녀가 한참을 이 작품을 들여다가 보고 있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 이 작품 보면서 무슨 생각하고 있나요? 이건 애니 신이라는 작가의 작품이에요. 그녀는 심리학과 미술을 함께 전공했는데, 그래서 그녀는 인간의 심리와 연관된 작품을 만들죠. 아, 참고로 저는 이 전시회의 큐레이터예요."
"아, 그렇군요! 저는 내셔널 아트 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유독 이 작품이 제 마음을 건드렸어요. 심리학을 함께 공부한 작가였군요. 어쩐지 이 작품이 왠지 제 내면에 무언가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요."
애니의 작품 한 개를 번쩍 들어서 그녀의 손에 갖다 대어주었다.(작품에 대해서는 애니에게 사전 동의받은 상태이니 혹여라도 괜히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이래도 돼요???"라고 화들짝 놀랐지만 애니의 작품에 그녀의 손을 맞추어대니 "무언가 마음을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 같아서 감동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 이 정도라도 와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했었다.
한쪽 공간에는 관객이 도자기 흙의 질감을 느끼고, 미리 만들어놓은 도자기 접시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마련해놓았다.
종종 이런 아티스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해서 놀랬었다.
사람들이 슬슬 몰려들기 시작했다.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지만 처음 보는 생소한 얼굴들이 더 많이 보여서 너무 놀랬던 오프닝 나잇.
직원이 입구에서 사람들 수를 하나하나 카운트했는데, 3시간 동안 대략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해주었었다.
관객들 하나하나 인사하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주셔서 바빴었다. 처음 60병 넉넉하게 스폰받았던 와인은.... 거의 남지 않았다. 남으면 챙겨가려고 했었건만!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와주셔서 기뻤다.
3시간 동안 정말 정신없었다. 오프닝 바로 전까지도 일을 했었기 때문에 샤랄라 한 모습이 아니었지만 내게는 에너지 넘치는 너무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정말 좋은 전시회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굉장히 찡했다고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와서 눈으로만 보는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전시회가 아닌, 생각을 하고 느낄 수 있는 전시회를 만든 나 자신에게 뿌듯했다.
전시회 오프닝 나잇 끝나고, 기다려준 친구들과 함께 집 앞에서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었다. 너무 바빠서 점심도 저녁도 먹는 것을 깜빡했었던 날. 어떻게 먹는걸 내가 잊을 수가 있지?
다음 날 아침, 갤러리로 출근할 때에는 일찍 가서 좋아했던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넉넉하게 먹었다. 이제 이 카페 음식 맛이랑 커피 맛 바뀌어서 두 번 다시는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슬펐지만.
오프닝 나잇에 받은 꽃 선물. 꽃을 선물 받고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받아보네 꽃.
그리고 꿍쳐둔 두병의 와인들을 벗 삼아서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다. 응?...
커스티의 작품들도 쫙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커스티의 작품들을 참 좋아한다.
간식으로는 근처 좋아하는 베이커리에서 사 온 수제 블루베리 베이글.
크림치즈와 오렌지 데낄라 잼을 발라서 먹었다.
점심으로는 우리 슈퍼바이저가 해준 건강한 샐러드. 직접 만든 저 소스들 비법 알아내야겠다. 너무 맛있게 건강하게 먹었던 샐러드.
낮에 오는 관객들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작품들 쫙 한번 더 둘러보고..
갤러리 주인 강아지인데, 나를 너무 좋아해 줘서 감사했다.
갤러리 주인이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엘레인, 너는 강아지를 꼭 키워야 해."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언제쯤 들어주시려나.
흙의 원초적 질감들이 잘 살아난 것 같아서 좋았던 작품들.
밖에서 본 조셉의 작품들.
조셉의 작품 때문에 논란이 좀 있었다. 물론, 조셉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항상 전시회 할 때에 겪는 호주 아티스트 특유의 텃새 트집들이 있었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써봐야겠다.
하도 말 같지 않아서 싹 무시를 하긴 했지만 마음이 속상하고 슬퍼서 그날 저녁, 각자 다른 젤라토 집에 두 번 가서 젤라토 왕창 먹은 건 안 비밀.
전시회는 생각 이상으로 꽤 성공적이었다.
이 전시회 이후로 새로운 일 제안을 4개 받았다.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다음 전시회는 5월 말에 메리빌 지역에서 열리는 전시회이다. 이스터 홀리데이 기간에 보고서를 다 쓸려고 했지만 왠지 홀리데이에는 일하기 싫어서 푹 쉬었다. 덕분에 눈 깜짝할 사이, 벌써 휴일이 다 끝나버렸네.
덕분에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이렇게 브런치 글을 쓰면서 워밍업 중.
이제부터 오늘 하루 종일 할게 너무너무 많다. 오늘 저녁에는 두 개의 갤러리에 무조건 방문해야 하는데, 그전에 일들을 다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시회가 끝나고 철거하는 날, 엘리자베스의 작품들과 함께.
갤러리에 방문한 티카의 따님.
잘 가, 티카.
올 때는 앞 좌석으로 오더니.. 갈 때는 뒷좌석으로 가는구나.
갤러리 강아지도 안녕. 보고 싶을 거야.
전시회 기간 내내, 갤러리 주인은 나에게 카푸들 꼭 키울 것을 강요하였다.
짐 싸는 애니.
빌린 받침대들 내 차에 실어서 반납하는데, 완전 일이 꼬여서 힘들었었다. 그래도 무사히 잘 해결!
큐레이터 친구 딜런과 커피 마시면서 도란도란 큐레이터의 고충과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딜런은 중국 사람인데,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내년에 서울대에 간다고 한다. 서울대, 나도 넣었었는데.
서울대 넣을 때에 우리 교수님이 엄청난 거짓말들(편지도 엄청 길게 써주셨는데, 세상에.. 나는 우리 교수님이 나를 그렇게 좋게 보시는 줄 몰랐었다. 다 읽고 감동과 미안함? 이 몰려왔었다. 한편으로는 나를 정말 한국으로 아예 보내고 싶으셨나? 싶고.. ㅋㅋㅋ)로 나를 아름답게 포장해주셨건만..
나는 한국 가면 힘든 ENTJ라서.. 응? ㅋㅋㅋ 그냥 호주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걸로.
모든 것이 끝나고, 혼자 좋아하는 공원에 가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 날, 공원에 앉아서 혼자 엉엉 울었었다. 시원 섭섭함이랄까.
개인적으로 내게 감동이 되는 전시회였고, 기회가 되어줬고,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나와 같이 일해주신 작가님들과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준 우리 슈퍼바이저님들..
그리고 응원해주신 친구들, 앞으로도 나의 성장을 지켜봐 주시는 분들.
그대들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내 삶에 항상 관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