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만 무료

화려한 덫

by 돌부처

홍대의 밤은 낮보다 뜨겁고, 낮보다 위험했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부터, 이 거리는 이성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능의 민낯을 드러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는 클럽의 베이스 소리, 그리고 골목마다 짙게 배어 있는 싸구려 술 냄새와 매캐한 담배 연기,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마치 다른 세상의 것 같았다. 이곳은 욕망이 끓어 넘치는 거대한 가마솥이자, 백면이 가장 좋아할 만한 최적의 사냥터였다.


“여기야? 백면의 두 번째 거점이?”


이강우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클럽 입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검은색 대리석 외벽 위에 붉은 네온사인이 핏줄처럼 얽혀 ‘PANDORA’라는 글자를 흉물스럽게 번쩍이고 있었다. 입구에는 오늘 밤의 쾌락을 위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된 듯, 화려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차려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덩치의 가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선별하며, 마치 가축을 등급 매기듯 들여보내고 있었다.


“네. 기운이... 아주 강해요. 단순한 유흥가의 탁한 기운 정도가 아니에요.”


하진은 목에 걸린 옥 조각을 매만지며 말했다. 옥 조각이 미세하게 떨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판도라. 이름부터가 불길했다. 그녀의 영적인 시야에는 클럽 입구에서부터 검붉고 끈적한 안개가 뱀처럼 피어올라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개는 클럽 안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흥분과 쾌락, 그리고 타락의 기운을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악의였다.


“이강우 씨 말이 맞았어요. 이곳 지하 깊은 곳에... 또 다른 지맥 포식자가 자라고 있어요. 놈은 이 클럽 전체를 자신의 밥그릇으로 쓰고 있어요. 사람들의 광기를 먹이로 삼아서요.”


“미친놈들. 하필이면 클럽이라니. 아주 대놓고 뷔페를 차려놨구만. 젊은 피가 놈들한테는 보약일 테니까.”


윤도진은 혀를 차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미 정보원들을 통해 이곳이 신종 마약 유통의 온상이자, 최근 강북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실종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실종자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녀들이었고, 클럽에 들어가는 모습은 CCTV에 찍혔으나 나오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전대로 갑시다. 하진 씨와 나는 손님으로 위장해 정문으로 잠입해서 VIP 구역을 확보하고, 이강우 씨는 뒷문으로 들어가 지하 기계실과 환풍구를 확보해 주시오. 그곳이 지맥 포식자의 둥지와 연결된 숨겨진 통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케이.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이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내 심장 박동이랑 딱 맞거든.”


이강우는 씨익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움직임은 고양이처럼 은밀하고 빨랐다.


하진과 윤도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클럽 드레스 코드에 맞춰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으로 제법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하진은 짙은 스모키 화장에 등이 파인 검은색 반짝이는 미니 드레스를, 윤도진은 낡은 형사 점퍼 대신 가죽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한 위장이었다.


“준비됐소?”


“네. 가요.”


두 사람은 연인인 척 팔짱을 끼고 클럽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던 가드가 선글라스 너머로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하진의 몸을 훑고, 윤도진의 덩치를 가늠했다. 그는 무전기에 대고 짧게 무언가를 말하더니, 무심하게 벨벳 로프를 열어주었다.


클럽 내부는 말 그대로 지옥도와 다름없었다. 터질 듯한 전자 음악 소리에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고, 현란하게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 아래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몸을 비비며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땀 냄새와 짙은 향수 냄새, 알코올 냄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달콤하고 비릿한 향기가 섞여 있어 숨을 쉴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냄새....’


하진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그것은 단순한 방향제가 아니었다.


‘환각제예요. 백면의 기운이 섞인...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욕망을 극대화하는 향이에요. 이걸 맡으면 공포심은 사라지고 쾌락만 남게 돼요.’


그녀는 윤도진에게 귓속말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윤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해독제가 든 사탕 두 개를 꺼내 하나를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입에 물고 절대 뱉지 마시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사탕에서 퍼지는 씁쓸한 맛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두 사람은 춤추는 인파를 헤치고 스테이지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탐닉하거나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모두 풀려 있었고,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 보였다. 마치 좀비 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VIP 룸이 있는 2층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파티’에 초대되어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입구는 덩치 큰 가드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일반 구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삼엄한 경계였다.


“여기서부터는 일반인은 출입 금지입니다.”


가드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윤도진의 앞을 막아섰다.


“초대받았어. 사장님 친구인데. 오늘 특별히 물 좋은 애들 데리고 오라고 해서.”


윤도진이 능청스럽게 말하며 위조된 명함을 내밀었지만, 가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명단에 없습니다. 초대장이 없으면 돌아가시죠. 사장님은 지금 손님을 받을 기분이 아니십니다.”


가드의 손이 허리춤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무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 2층 난간에서 누군가가 와인 잔을 든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색 벨벳 정장을 입은, 뱀처럼 날카로운 눈매와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이 클럽의 사장이자, 백면의 충실한 하수인 중 하나인 ‘독사’였다.


독사는 하진을 보자마자 눈을 번뜩였다. 그는 하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되지 않은 맑고 강력한 신기(神氣)를 단번에 감지한 것이다. 썩은 내 진동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보석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들여보내.”


독사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손짓했다.


“하지만 사장님, 확인되지 않은....”

“내 말이 안 들리나?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다는데. 내가 직접 모시지.”


가드들이 당황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함정인 줄 알면서도, 호랑이 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진은 윤도진의 팔을 꽉 잡았다. 윤도진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며 계단을 올랐다.


2층 VIP 룸은 아래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두꺼운 방음 유리로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고, 은밀하고 퇴폐적인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붉은 조명 아래, 테이블 위에는 하얀 가루와 주사기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액체가 담긴 병들이 널려 있었다. 몽롱한 눈빛의 남녀들이 소파에 엉겨 붙어 짐승 같은 교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곳은 쾌락의 끝이자, 인간성의 무덤이었다.


독사는 가장 안쪽, 뱀 가죽으로 장식된 소파 깊숙이 앉아 와인을 흔들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누추한 곳에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특히... 아가씨는 향기가 아주 좋군요. 아주 특별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요. 100년 묵은 산삼보다 더 귀한 냄새군요.”


독사는 혀로 입술을 천천히 핥으며 하진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혀는 인간의 것보다 길고 끝이 갈라져 있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쓴 요괴, 혹은 백면의 기운을 받아 괴물로 변이 한 존재였다.


“본론만 말하죠. 실종된 사람들, 어디 있습니까. 당신들이 납치한 그 아이들 말입니다.”


윤도진이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손은 재킷 안쪽 권총 그립에 닿아 있었다.


“실종이라뇨? 그들은 이곳이 너무 좋아서 떠나지 않은 것뿐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잊고, 영원히... 이 쾌락 속에 머물고 싶어 했죠. 저는 그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을 뿐입니다.”


독사는 사악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방 안의 조명이 더욱 붉게 변하며, 한쪽 벽면이 기계음과 함께 스르르 열렸다.


그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리벽 너머, 거대한 수조 같은 공간 안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실종 신고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 나체 상태로,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물속에서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덜미와 팔에는 굵은 튜브들이 꽂혀 있었는데, 그 튜브를 통해 붉은 액체, 즉 그들의 피와 생명력이 바닥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붉은 액체가 모이는 곳, 수조 바닥 깊은 곳에 또 다른 지맥 포식자가 입을 벌리고 둥지를 틀고 있었다. 놈은 위에서 떨어지는 인간의 정기(精氣)를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을 산 채로 정기 추출기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새끼들....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윤도진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총을 뽑아 들었다.


“이강우, 지금이야!”


하지만 무전기 너머에서는 치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통신이 차단된 것이다.


“형사님, 여기서는 그 장난감이 통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친구는... 아마 지하에서 제 부하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을 겁니다.”


독사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식사 시간입니다. 당신들의 영혼은 아주 훌륭한 메인 요리가 될 거예요.”


독사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그의 몸이 팽창하며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변했다. 비늘은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고, 눈은 붉게 타올랐다. 놈은 윤도진을 향해 굵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크윽!”


윤도진은 반응할 새도 없이 꼬리에 맞아 벽에 처박혔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권총이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형사님!”


하진이 비명을 지르며 옥 조각을 쥐고 나섰다.


“문지기의 이름으로 명한다! 물러가라!”


그녀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터져 나와 독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독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몸을 비틀어 불꽃을 피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하진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조여왔다.


“크큭, 넌 내가 직접 먹어주마. 네 영혼은 아주 맛있는 디저트가 될 거야.”


하진은 숨이 막혀 발버둥 쳤다. 독사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목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이 멀어지려 했다.


바로 그때.


콰광-!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엄청난 먼지 구름과 함께 누군가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아이고, 늦어서 미안! 환풍구에 쥐새끼들이 너무 많아서 청소 좀 하느라 말이야.”


이강우였다. 그는 천장의 환풍구를 뜯어내고 잠입한 것이다. 그의 온몸은 흙투성이였고, 손에는 시퍼런 기운이 서린,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이 뱀 새끼야, 밥 먹는데 체하게 해 줄까? 어디서 감히 내 파트너 목을 조르고 있어?”


이강우는 착지와 동시에 망설임 없이 독사의 머리를 향해 단검을 내리꽂았다.


[키에에에엑!]


독사가 비명을 지르며 하진을 놓쳤다. 단검이 놈의 한쪽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 피가 솟구쳤다.


“지금이야! 아가씨, 저 수조부터 깨부숴! 놈들의 밥줄을 끊어버려!”


이강우가 소리쳤다. 그는 독사의 꼬리 공격을 현란하게 피하며 놈의 시선을 끌었다.


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조를 향해 달렸다.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저 아래 있는 괴물의 먹이 공급을 끊어야 했다. 그녀는 옥 조각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문지기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문지기의 힘이여, 저 사악한 감옥을 부수고, 억울한 영혼들을 해방하라!”


하진은 온 힘을 다해 옥 조각을 쥔 주먹으로 수조의 강화 유리벽을 내리쳤다.


쨍그랑-! 쿠르릉!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두꺼운 유리벽이 산산조각 났다. 수조 안의 붉은 액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튜브들이 끊어지고, 갇혀 있던 사람들이 휩쓸려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먹이 공급이 끊기자, 바닥 아래의 지맥 포식자가 굶주림과 분노에 미쳐 날뛰며 울부짖었다. 땅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질 듯 진동했다.


“젠장, 놈이 올라온다! 다들 꽉 잡아!”


윤도진이 고통을 참고 일어나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빨리 나가요! 다들 정신 차려!”


독사는 이강우와의 싸움에서 밀리고, 수조가 파괴되자 당황하여 바닥의 구멍으로 도망치려 했다.


“어딜 도망가! 네놈도 같이 묻어주마!”


하진이 쫓아가려 했지만, 이강우가 다급하게 막아섰다.


“놔둬! 저놈은 미끼야. 지금 중요한 건 저 밑에 있는 놈이야!”


구멍 속에서 지맥 포식자의 거대한 촉수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번 놈은 지난번 북아현동에서 봤던 놈보다 훨씬 더 크고 흉포했다. 놈은 클럽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2라운드 시작이다. 이번엔 진짜 목숨 걸어야 할 거야.”


이강우가 단검을 고쳐 잡으며 씩 웃었다. 하진과 윤도진도 각자의 위치에서 전투 태세를 갖췄다.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비상등만이 깜빡이는 붉은 클럽 안에서, 그로테스크한 괴물과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돌부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읽고 쓰는 사람.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소설을 씁니다.

55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