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취향이 돈이 된다

by 돌부처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아래로 한참 내려보십시오. 혹은 지금 당장 유튜브 쇼츠 탭을 열어 엄지손가락을 무심하게 몇십 번 튕겨 보십시오. 수천 개의 짤막한 콘텐츠들이 마치 한 공장에서 찍어낸 쌍둥이처럼 기이할 정도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쏟아질 것입니다.


똑같은 파스텔 톤의 썸네일, 똑같은 노란 자막 폰트, 똑같은 구도의 후킹 한 줄, 똑같은 톤의 AI 성우 내레이션, 심지어 "이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으시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라는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은 도입부까지.

조금 전 손가락을 비벼 넘긴 영상과 다음 영상, 그 다음 영상이 모두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얇디얇은 기계의 냄새를 폴폴 풍깁니다.


이것이 거대언어모델과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이 대중의 손에 풀려난 지 불과 2년 만에 이 행성에 드러난 민낯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도구로, 똑같은 프롬프트를 아주 약간만 변주해, 똑같은 정답을 모니터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텍스트도 이미지도 영상도 코드도 기획서도, 이제는 수돗물처럼 흔해 빠진 공짜 재화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정답 대 바겐세일의 시대.


그리고 그 흔해 빠진 수돗물의 홍수 속에서 가장 먼저 허우적대다 익사당하기 시작한 집단은 정작 그 수돗물을 틀어대는 공급자들 자신입니다. 모두가 정답만을 토해내기에, 정답의 가격은 처참할 정도로 0원을 향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정답의 시체들이 즐비한 폐허 위에서 단 하나의 자원만이 금괴처럼 가격을 거슬러 폭등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계가 아무리 파라미터를 불려도 끝내 복제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영역, 바로 '인간의 취향과 안목'입니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기획안 한 장을 매끄럽게 뽑아낼 줄 아는 능력은 그 자체로 연봉의 절반을 보장하는 든든한 자격증이었습니다. 오탈자 없는 이메일 한 통, 논리에 빈틈이 없는 보고서 한 페이지, 색감이 어긋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한 장. 이 기능적으로 정답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직장인들은 형광등 아래 야근을 갈아 넣었고, 취업 준비생들은 스터디카페에서 자소서를 수십 번 뜯어고치며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그러나 앞선 화들에서 누누이 강조했듯 기계가 공짜로 정답을 공급하기 시작한 순간, 이 모든 기능적 숙련의 가치는 시장에서 0원으로 증발해 버렸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로 무서운 대목입니다. 정답을 뽑아내는 행위의 가격이 0원이 되었다는 말은, 당신이 어젯밤을 꼴딱 새워가며 챗지피티를 쥐어짜내 발행한 그 자랑스러운 블로그 글 한 편과, 공들여 뽑아낸 인스타그램 릴스 한 편, 큰마음 먹고 돌려본 미드저니 이미지 한 장의 시장 가격 또한 0원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뜻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당신이 의기양양하게 업로드 버튼을 누른 그 결과물은 오늘 오후 옆집 중학생이 학원 수업 쉬는 시간에 단 1분 만에 뽑아낸 결과물과 단 1mm의 차이도 없이 동일 선상에서 취급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 대부분이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듭니다. 인공지능을 쓰기 시작하면 이제 나도 대기업 전략기획팀 부장급, 광고 대행사 수석 카피라이터급 결과물을 뚝딱뚝딱 뽑을 수 있다고 김칫국을 마십니다. 하지만 시장은 더 이상 대기업 팀장급 결과물 따위에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결과물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담배꽁초처럼 지천에 널린 기본 재화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무한히 복제되고 증식되는 정답의 더미 속에서 시장이 새롭게 프리미엄을 얹어주기 시작한 단 하나의 지점. 그것은 수만 개의 정답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로 좋은 결과물인지 즉각 골라낼 줄 아는 날카로운 '고르는 눈'입니다. 미드저니가 한 번에 토해낸 수천 장의 생성 이미지 중 딱 한 장을 골라 "이것이 이번 캠페인의 얼굴이다" 하고 단호히 확정 지을 수 있는 감각. 인공지능이 써낸 500자 초안 중 단 한 문장에 빨간 줄을 긋고 "이 문장이 이 글의 심장이다" 하고 선언할 수 있는 결단력. 기계가 자동으로 편집해 준 3분짜리 영상을 가차 없이 해체하고 딱 38초로 다시 잘라낼 수 있는 냉혹한 편집자의 눈.


기계는 무한한 선택지를 24시간 쉼 없이 토해낼 수 있을 뿐, 그 중 어느 것이 인간의 심장을 진짜로 흔들 수 있는 작품인지 단 한 번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영원히, 앞으로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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