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에서 벗어나기, 처지를 끌어안기, 동병상련 실천하기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드러머 루빈(리즈 아메드 님)은 어느 날 청각 장애 판정을 받아 모든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맞는다. 그의 여자친구 루(올리비아 쿡)는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루빈과 그곳을 방문한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조(폴 라시 님)는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 외부와의 절대적 격리를 요구한다. 루와 떨어질 수 없었던 루빈은 처음엔 들어가길 거절했지만, 루의 설득에 눈물겨운 이별 뒤로 결국 공동체에 입성한다.
공동체에서 루빈은 수화를 배우고, 조가 제공한 고요한 빈 방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노트에 글을 쓰며 평온을 찾아본다.
루빈이 공동체에 잘 적응하자 조는 루빈에게 직원으로 남아주길 제안한다. 하지만 루빈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아 인공 청각 장치를 이식하는 수술 일정을 잡는다. 조는 아쉬웠지만 루빈의 결정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길 진정으로 빌어줌과 동시에 공동체에서 떠날 것을 부탁한다.
인공 장치 이식 후, 루빈은 루를 찾아 파리로 향한다. 루빈은 루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곧바로 짐을 챙겨 떠난다. 멍하니 공원에 앉아 있던 루빈은 인공 장치를 떼어내며 영화는 끝난다.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과 음향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때로는 적절한 스매시 컷(매치 컷의 반대로 대비되는 장면을 이어 임팩트를 주는 컷)으로, 또 때로는 한 편의 처절한 휴먼 다큐멘터리 같은 편집 방식으로 이입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음향상을 수상한 것도 놀라운데, 이는 음향 연출이 탁월한 다른 영화들처럼 배경음악 선곡이나 효과음을 통한 분위기 조성 때문이 아니라,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가지 고요함 때문이다.
초반 루빈을 둘러싼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이명을 통해 고요함으로 바뀌며 관객은 공포감을 느낀다. 하지만 마지막 공원에서 루빈은 되려 인공 장치를 스스로 떼어내며 자의적으로 고요함을 찾는다. 그 고요함은 처음의 공포적인 연출과는 다르게, 청각적 편안함과 모종의 다짐을 한 루빈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중독’과 ‘고요함’이다.
중독은 곧 ‘의존’이고, 고요함은 ‘처지’다.
루빈은 4년 전까지 마약 중독자였다. 루를 만나며 마약을 끊을 수 있게 되었지만, 루가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이다. 그는 삶을 마약에 의존했고, 여자 친구에게 의존했다.
고요함이 재앙처럼 루빈에게 닥쳤을 때 조는 루빈이 세상과 단절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지탱해 주던 여자 친구와 헤어져 공동체에 들어온 루빈은, 말 대신 손으로 대화하는 법, 소리를 듣지 않고 느끼는 법을 배우며 고요함에 적응해 나간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기를 겪는 것이다.
하지만 루빈은 결국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외부와의 단절을 원칙으로 하는 공동체에서 루빈은 몰컴을 통해 루의 소식을 접하며 안위와 분노를 느낀다.
조는 루빈이 고요함 속 평온을 느끼길 바라며 아침마다 빈 방을 제공했지만, 그곳은 루빈이 화를 분출하는 공간, 혹은 그저 따분한 공간으로 전락한다.
연인과의 보금자리였던 캠핑카와 음악 장비를 모두 팔면서까지 수술 비용을 마련한 루빈은 결국 조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수술을 결심한 것도 조의 마음을 후벼 팠겠지만, 캠핑카를 다시 사기 위해 조에게 돈을 빌리고자 하는 루빈은 ‘영락없는 중독자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돈을 빌리지 못하더라도 난 여자 친구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면 된다. 그는 부자다’라고 말하는 루빈은, 여전히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부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루빈은 곧장 루를 찾아간다.
하지만 인공 기관을 통해 루빈이 듣게 된 소리는 장애를 갖기 전 기억 속 소리와 이질감이 있었다. 그리고 루빈과 함께 밴드 생활을 했을 때의 루와, 아버지와 공동체의 온기 속 루 사이에도 루빈른 이질감을 발견한다.
루와 재회한 날 밤 루빈은 ‘다 괜찮다. 난 네 덕에 산다.’라는 말을 전하고 다음 날 아침 루의 집을 떠난다. 오랜만에 재회한 커플의 간 사랑 고백처럼 보이는 이 말이, 루빈이 루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이자 작별 인사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과 같지 않은 소리, 이전과 같지 않은 모습의 루에게서 결국 자신도 다시는 전처럼 캠핑카를 타고, 음악을 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루의 집을 떠나 공원에 앉아있던 루빈은 시계탑 소리가 귀에 거슬려 인공 장치를 제거한다. 루빈은 그토록 되찾고 싶던 소리를 스스로 떼어내며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인정할 때, 비로소 루빈은 조가 말한 빈 방의‘하나님의 나라’를 느끼며 영화는 끝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여 생을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용기만을 주는 영화가 아닌. 현실적 조언을 동반한 반성을, 처지를 받아들이는 숭고한 미학을, 그리고 처지를 발판 삼아 동병상련의 실천을 알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 속 출연자 중 자신의 처지를 끌어안을 뿐 아니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까지 끌어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다이앤 역할의 로런 리들로프 님이다. 그녀는 실제 청각 장애를 가진 배우로, 마동석 님과 안젤리나 졸리 님이 출연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마카리 역을 맡기도 했다. 청각 장애를 가진 그녀는 히어로 영화를 출연하며, 그녀의 두 아들이 청각장애인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커나갈 앞날을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