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과 콜린스 Jun 02. 2024

영화 <아티스트>를 보았다

예술은 얼터너티브

<아티스트>_2011__★: 4.5/5


영화 <아티스트>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때는 무성영화의 시대.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을 이으며 최고의 팬덤을 가진 할리우드 스타 조지. 한 영화 시사회 날 조지는 자신을 보러 온 패피라는 여성팬과 부딪치는데 패피는 이를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한다. 조지는 패피의 배우 생활을 도우며 둘 사이엔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시간이 흘러 조지는 여러 영화 관계자와 함께 영상에 소리를 담는 기술을 목격한다. 영화 관계자들은 유성영화의 가능성에 흥분했지만, 조지는 저딴 것은 예술이 아니라 치부한다. 그 뒤로 조지와 영화계는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 영화계는 공장처럼 유성영화를 찍어냈고 반면 조지는 사비까지 털어 지조 있게 무성영화를 만든다. 결과는 조지의 완패. 관객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했고 조지는 돈과 명예를 모두 잃으며 과거의 잔재로 전락한다. 무일푼이 된 조지는 자신의 물건을 경매에 내놓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어느 날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던 조지는 분노에 휩싸여 지금껏 자기가 출연한 영화 필름들을 불에 태운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영리한 조지의 강아지가 사람을 불러와 조지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다. 조지의 소식을 들은 패피는 그가 자신의 집에서 요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력을 차린 조지는 패피의 집을 거닐다 어떤 방에 들어가는데, 방에 과거 자신이 경매에 내놓은 물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충격에 휩싸인 채 자기 집으로 돌아와 자살을 시도한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패피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조지를 뜯어말린다.

조지와 패피는 영화 제작사에 찾아가 자신들의 탭댄스 실력을 선보인다. 가능성을 느낀 제작자는 조지, 패피 주연의 뮤지컬 영화를 제작한다.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우리 또래는 영화계 황금시대에 자란 사람들이다.

미취학아동을 지나 처음 영화관에서 관람한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었고, 이어서 <해리포터>  시리즈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이 개봉했다. 초등학교 시절 기말고사를 모두 치르면 담임 선생님은 방학 전까지 영화를 틀어주시곤 했는데 그렇게 봤던 게 무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고 <쥬라기 공원>이었다. 청소년기부터 대학생 때까지는 다달이 개봉하는 마블영화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개인의 취향 때문이기도 했지만,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에 진입하는 영화계가 눈을 황홀하게 하는 영화를 쏟아부어 준 것도 한 몫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티스트>를 보면 무성영화만 보다가 유성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티스트>는 1920년대 무성영화 문법을 따라 만들어진 영화다. 배우들의 말과 동작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고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텍스트 화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한다. 무성영화를 본 경험이 일절 없었기에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으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지루하긴커녕 관람 10분도 채 안돼 무성영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무성영화의 매력은 '유추'에 있다. 배우들이 뻐끔뻐끔 입을 움직여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자막을 보여주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화면에 자막이 나오고 내용이 내가 생각한 것과 맞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좋고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나오면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지? 하면서 영화에 더 몰입하는 것이다.


이것 만으로 <아티스트>에 4.5점을 준 것은 아니다. 진짜 영화는 30분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유성영화의 시작을 알리며 조지가 테이블에 컵을 놓는 소리를 들려주는데 그 소리는 내가 지금껏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어떤 것보다 자극적인 소리로 느껴졌다. 평생 유성영화만 보았던 나도 고작 30분 간 무성영화를 보았을 뿐인데 컵 두는 소리에 이토록 자극을 느꼈다면, 과거 평생 무성영화만 보았던 사람들이 처음 유성영화를 보았을 때 흥분은 어느 정도였을까? 비슷한 시기를 다룬 영화 <바빌론>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미차 축구 경기장 관객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환호한다. 결국 소리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소리가 없는 영화 보다 소리가 있는 영화에 더욱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성영화의 매력, 무성에서 유성으로 전환될 때의 짜릿함은 <아티스트>의 큰 장점이었다.

예술과 얼터너티브

영화는 단순히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사이 세대교체만을 다루지 않는다. 앞서 말한 <바빌론>은 세대교체에서 몰락한 사람들을 다루지만, <아티스트>는 조지를 통해 몰락 속 탈출구를 찾아내는 '예술가'를 다룬다. 조지가 유성영화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그는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구시대 유물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로 조지 본인이 유성영화를 진정한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신념과 지조를 가진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급급한 자들을 상업적이다 생각하고 그 흐름 속에 만들어지는 산물은 예술품이 아닌 공산품이라 여긴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산물을 새로운 예술이라 생각한다. 대중들은 새로운 예술가들을 환영하고 옛 시대의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잊힌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힌 사람들을 기다리는 가장 큰 형벌은 '예술가'로서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기억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음악계에 베토벤, 비틀스, 너바나가 그랬고 미술계엔 고흐, 피카소, 뒤샹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지와 패피는 서로를 가까워지게 만든 춤으로 유성영화판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은 비록 구색이 화려하진 않지만, 현재의 뮤지컬 영화 같기도 하다. 그제야 우리는 무성영화 스타에서 유성영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재 탄생한 조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영화 초반 예술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허물과 부족함이 있던 조지가 패피와 함께 진정한 예술가, 진정한 자아로 성장하는 과정은 <아티스트>를 좋은 영화라는 이유로 삼기 충분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