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4 ★:5/5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4.5/5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3 하반기부터 2024 상반기는 최근 몇 년 간 좋은 영화가 가장 많았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2019년 이후 코로나로 마비된 영화계가 재활을 마치고 원래 폼을 되찾아 다시 발전하고 있는 와중, 가장 좋았던 두 작품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이다. 두 작품 모두 자극적인 장면으로 관객을 현혹시켰기보다 각자의 주제의식을 면밀하고 품위 있게 다루었다. 영화 연출적인 측면이나 촬영방식, 편집, 배우들의 연기 등 어느 하나도 영화를 집성하는데 어긋남이 없었다.
두 작품은 모두 '악'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최근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마치 한나 아렌트가 집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유태인 수용소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처절한 비명과 총성에도 낙원을 꿈꾸는 회스 일가를 보여준다. 이들을 보면 악이란 것은 어쩌면 평범한 사람도 특수한 상황에선 감지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현실 속 회스 일가를 비롯한 당대의 나치 잔당들은 패전 후 자신들이 어쩔 수 없었다, 위에서 시킨 일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화에선 열화상 카메라로 담은 장면으로 수용소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숨겨주는 소녀가 존재하는데, 그 시절에도 악의 기준을 시대와 상황에 두지 않고 개인의 양심적 판단에 두어 옳은 일을 했던 사람이 있었단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앞서 말한 나치들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 것이 되며 그저 현실 외면에 그친다. 실화를 영화화함으로써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악이 가진 본래 성격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악을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지 말한다.
영화 후반 계단을 내려가는 회스가 구역질하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킬링 오브 액트>를 떠올렸다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회스의 구역질은 액트 오브 킬링 속 안와르 콩고의 구역질과 비교해, 연출이 관객들에게서 이끌고자 한 도덕적 모멸이 덜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과거를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 정도라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아우슈비츠를 청소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사람들처럼, 현재와 미래에 더욱 경계하자는 영화 메시지를 느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에게 올해 최고의 영화였다.
감상 후 집에 와서도 분명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았는데, 이동진 평론가님이 최근에 업로드한 관련 해설 영상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설에 따르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 앞 엔 세 가지 단어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고 했다(자세한 설명은 영상을). 영화를 처음 본 나는 오직 < '애초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만 내용을 이해했었다. 하지만 '애초에' 외에도 '아직은', '이제는'도 함께 있어야 영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영화를 보자면 악이란 인간이 만든 도덕 기준의 반쪽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롱테이크로 물과 사슴과 동물과 인간을 보여준다. 식물은 물의 포식자이고, 사슴은 물과 식물의 포식자이고, 인간은 사슴과 식물과 물의 포식자이다. 인간의 포식자는?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인간이다. 영화 속 포식자가 피식자를 대하는 장면은 자극적이거나 잔인하게 연출되지 않았고, 오히려 힐링 영상처럼 차분하고 소박하게 연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마지막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했다.
포식자의 피식자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반대로 피식자의 저항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식물은 가시로 저항을 하고 동물은 뿔로 저항한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다. 선도 악도 아닌 것이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인간과 양자 소통, 타협을 진행하지만, 영화 후반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행해질 때면 피식자 인간은 결국 포식자 인간을 공격함으로 저항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무리해서 시골에 글램핑장을 만들려는 타카하시 회사도 악이 아닌 것이고 타카하시를 목 조르는 타쿠미도 악이 아닌 것이다. 영화는 결국 자연의 섭리대로 그대로 두라는 말을 하고 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