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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과 콜린스 Jun 23. 2024

왜 <그래비티>를 추천하는가.

우리가 느끼는 삶의 무게에 대하여

<그래비티> 2024 ★:5/5


<그래비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추천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좋았던 영화 위주로 추천한다면, 영화를 본 후 상대방의 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할 수도 있다. 반대로 추천하는 사람이 상대의 취향을 아무리 고려한다 해도 다른 사람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렵고 설령 정확하게 파악했다 해도 나의 평가와 어긋나는 영화를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추천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그래비티>를 추천하곤 한다. 그 이유는 두 작품 모두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 시각과 청각을 지배하는 힘을 가졌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명확한 주제의식을 담은 스토리가 있어 스토리 이해가 쉬우면서도 다시 곱씹을 때면 해당 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롭게 깨닫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들은 영화 세계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영화광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비티의 시각, 청각적 자극은 놀라운 수준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우주 세계에 배우의 흠잡을 곳 없는 연기가 더해진 결과는, 기자회견장에서 "어떻게 우주에서 촬영을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그래비티>는 적절한 음악, 음향을 배경으로 삽입하는 것을 넘어서 '고요함'을 음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영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고요함은 매개가 없는 우주의 경건하고도 음산한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영화 내용은 아주 짧게 요약 가능하다.


'우주 미아가 된 라이언 스톤이 지구로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


하지만 이 짧은 요약으로 정리 가능한 영화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과 답을 남긴다.


질문:

상처 입은 우리는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답:

오로지 삶에 대한 강한 의지


우주에 오기 전 주인공 라이언은 사고로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라이언은 운전 중이었고, 그 후로 일을 마친 라이언은 퇴근 후 곧장 집에 가지 못하고 라디오를 틀어둔 채 정처 없이 운전을 했다고 한다. 어떤 라디오를 들었냐는 질문에 라이언은 "아무거나, 멘트 없는 방송"을 들었다고 답한다. 라이언은 딸을 앗아간 세상, 혐오스러운 세상을 떠나 우주에서 조용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자신들의 위성 하나를 폭파하면서 발생한 파편들이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떠돌기 시작한다. 라이언과 맷이 수리 중이던 허블 망원경은 파편 폭풍에 부딪쳐 박살이 나고 설상가상 라이언은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간다. 맷은 다행히 포류 하는 라이언을 구출하고, 두 사람은 우주복만 입은 채 우주 정거장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는 파편 폭풍이 주인공들을 덮치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영화가 포류 하는 라이언을 보여줄 때 라이언은 캐릭터의 스토리적 재 탄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 전반 주인공의 멘토 역할이자 구원자인 맷과 우주 정거장을 나아갈 때를 보면 두 사람을 연결한 끈은 마치 탯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이언은 잉태된 단계다.


탯줄은 언제 끊어지는가? 아이가 탄생하며 끊어진다.

영화 속에서도 맷이 자신을 희생하며 라이언을 살려내고, 그 덕에 안전하게 우주정거장에 들어와 숨을 고르는 라이언은 탄생할 양수 속 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만다.

맷의 의지를 이어받은 라이언은 우주정거장의 소유즈를 타고 중국 유인 우주선인 신주(神州)로 이동 후 그곳에 있을 귀환선을 이용해 지구로 귀환하려 한다.


그녀는 또다시 자신을 덮치는 파편 폭풍을 피해 소유즈를 출발시켰지만, 소유즈는 얼마가지 않아 동력을 잃게 된다. 그 이유가 다소 어이없을 수 있는데 바로 원료 부족이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문제이지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이유에 라이언은 평정심을 잃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우리를 가로막는 삶에 많은 문제들도 소유즈의 '원료 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도무지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평정심을 잃고 화를 내고 좌절한다.


좌절에 빠진 사람 중 일부는 현실 도피를 시도한다. 라이언의 경우 세상을 떠난 딸을 찾겠다는 명목으로 자비 없는 환경에서의 생존을 포기하고 사후세계로 도피하려 한다. 이때 그 유명한 '아닝강' 시퀀스가 등장하는데, 운 좋게 라이언은 지구 어딘가의 사람과(아마도 에스키모) 통신이 닿는다. '아닝강' 통신은 사실상 라이언에게 아무런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없지만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라이언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아닝강'통신은 마치 종교 혹은 그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과 연결되기 직전 카메라는 예수님으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짧게 비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무한하게 의지할 곳의 존재 여부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의지가 현실을 잊게 할 정도라면 문제가 될 것이다. 라이언은 '아닝강'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잠시 현실을 잊는다. 스스로 산소 공급 장치를 내리고 죽음을 천천히 숭고하게 딸이 있는 사후세계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맷이 소유즈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소유즈의 문이 열리는 순간 '아닝강' 통신은 고요한 우주에 잡아 먹힌다.

맷은 다시 문을 닫고 곧장 모든 장치를 정상으로 바꾼다. 그러면서 라이언에게 '착륙도 발사와 같은 것이니 드라이브를 즐기자.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야지 않겠냐'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라이언의 환상이었다. 환상으로 나타난 맷 덕분에 다시 정신 차린 라이언은 연착륙 방법을 기록한 노트를 꺼내고 맷에게 기도한다. 당신이 갈 그곳에 있을 내 딸을 잘 부탁한다고, 나는 계속해서 살겠다고.


다시 삶에 의지를 가진 라이언은 지구를 향해 추락하며 불이 붙은 신주로 향하고 그곳의 귀환선에 들어가 연락두절 된 본부에 두 가지 예상 결과를 말한다. "멀쩡한 상태로 내려가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거나, 앞으로 10분 안에 죽게 되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역경을 이긴 영웅담, 신화 같은 실화 인물, 전쟁 영웅, 독립운동가, 민주화 투사 모두 라이언의 예상과 같은 현실을 겪었을 것이다.


무사히 지구로 진입해 강에 착륙한 라이언은 오랜만에 느끼는 지구 중력에 처음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물속을 빠져나오기 버거워한다. 하지만 우주복을 벗어던지고 마치 물에서 육지로 터전을 옮기는 태고시절 생명체처럼 이내 뭍으로 기어 나와 중력을 느끼며 두 발로 우뚝 서는 그녀를 보면 관객들의 마음속에 저마다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 자신을 억누르는 힘, 하지만 그 무게에, 그 힘에 저항하는 자신만의 의지가 불타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래비티>를 보면서 니체의 저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많이 떠올랐다. 주인공 이름이 라이언인 것도, 맷과 헤어지고 홀로 생존해 나가야 하는 시점에 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마는 것도, 추측이긴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종교, 사후세계에 대한 입장도 모두 그 이유였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그래비티>는 그 물음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답을 준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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