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과 콜린스 Jul 09. 2024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삶 곳곳에 숨은 환희

<퍼펙트 데이즈> 2024 ★:5/5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간(人间)이라는 단어는 사람 사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루에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는 인스타그램 셀럽도, 유명 연예인도, 맛집 사장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할 때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반대로 허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삶에 찾아오는 많은 고통과 슬픔은 나의 의지에 반하는 타인에게서 나온다.

인생이란 이 모든 과정의 축적일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러한 인생의 표정을 관객들에게 담백한 방식으로 선보였다.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벅찬 감동을 주는 영화다.


<퍼펙트 데이즈>엔 메인 스토리가 없다. 주 된 갈등도, 주 된 해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입체적인 생활 소음, 자연을 담는 영상미, 베테랑 배우의 무결점 연기, 향수를 자극하는 배경 음악 선곡과 아날로그 소품들이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도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충족시킬 순 없다. 때문에 감독은 관객에게 한 가지 임무를 맡긴 듯하다. 그것은 '과연 주인공에겐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를 추론하는 것이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공중 화장실 청소부이다. 그의 하루하루는, 또 매 주는, 반복된 루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빠짐없이 루틴을 반복하는 모습과 일에 대해 보이는 성실한 태도는 어느 누구라도 그를 호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히라야마는 부인도 자녀도 없이 작은 방에서 홀로 지낸다. 고독해 보이기도,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삶엔 무수한 타인의 개입이 존재한다. 매일 아침 빗자루질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도와주는 할머니, 책임감 없이 일하며 히라야마에게 민폐만 끼치는 타카시, 불쑥 찾아온 조카, 매일 화장실에 빙고 낙서를 숨기고 가는 이름 모를 사람까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히라야마의 루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루틴을 방해하고, 어떤 이는 루틴에 동참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루틴을 만든다.

특히 히라야마의 루틴에 가장 깊게 관여한 조카는 관객에게 히라야마가 어떠한 사람인지 조금 더 알 수 있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정확한 내용은 영화 속 주인공만 알겠지만, 주어진 정보만으로 추론을 하자면 그는 과거 인간관계에 있어 크나큰 슬픔 내지는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말에 지조 신사를 방문하는 모습(지조보살은 어린이의 보호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안녕과 보호를 기원하며 신사를 방문한다.)과  빛을 받지 못하고 죽어버릴 거목 밑에 자란 새싹을 소중히 집으로 가져가는 모습, 기사까지 대동해 오랜만에 찾아온 여동생과 나눈 눈물의 포옹, 단골 술집 사장의 전남편이 투병 중인 자신을 대신해 전부 인을 잘 부탁한다는 대화 장면은, 만약 주인공에게 부인이나 자식이 있었다면, 그는 그들과 어떻게 헤어졌는지, 어떤 아픔이 있었길래 남아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거들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주인공에게 느껴졌을지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고 히라야마의 일상이 괴로운가? 그렇지 않다. 그는 출근하려 집을 나설 때마다 감동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그는 과묵하지만 늘 타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영화관을 찾은 관객에게까지 전해진다.


마지막 출근길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런 연기는 아시아계 배우 중 해피투게더(1997년) 양조위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해당 표정 연기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 표정은 히라야마가 말 그대로의 '지금'과 '지금'을 조성한 일련의 과거를 회상하며 생긴 감정이 드러난 것이라 느껴졌다.

그의 얼굴엔 기쁨도 슬픔도 섞여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삶에 대한 환희로 보였다. 일터로 향하며 시작하는 아침,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한 환희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왜 <그래비티>를 추천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