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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Oct 29. 2020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미국 맥시멀리스트들 사이에서 정신줄 부여잡기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동네 오픈하우스에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집을 사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얻고 보는 눈을 키우는 목적으로 가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미국 집들과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이웃이나 친구네 집에 방문하기도 힘들게 되어 오픈하우스를 통해 미국 사람들의 생활과 삶을 엿보며 관찰하고 있다.


이곳의 집들은 우선 면적이 정말 넓다. 우리 동네에서 학령기 자녀들을 키우는 평범한 가정들이 사는 평형대가 2,500~3,500 제곱피트(70~98평) 정도이다. 마당과 지하 공간을 제외한 실내 면적이 4,000 제곱피트(112평) 이상인 집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아파트나 평수가 아주 작은 타운하우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집들은 구조가 비슷하다. 보통 접견실(formal living room) 또는 서재(office), 거실(family room), 부엌, 다이닝룸(formal dining room), 침실 3~5개, 화장실 2.5~4.5개(세면대와 변기만 있는 화장실은 0.5개로 친다) 정도로 구성된다. 지하 공간에는 가족의 놀이 공간(playroom)이나 헬스장, 여분의 침실과 화장실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공간이 워낙 넓고 그 공간이 칸칸이 나뉘어 있다 보니 자연히 그 공간을 채울 물건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접견실에는 보통 소파나 안락의자, 탁자를 두고, 거실에도 TV와 소파, 탁자를 둔다. 지하에 놀이 공간이 있는 경우 더 큰 TV와 더 큰 소파를 두는 경우가 많으니 소파 세트만 해도 3개씩은 갖고 있게 된다. 식사 공간도 2~3군데가 있으니 식탁만 2개, 의자도 10개 이상 필요하고, 아일랜드가 있는 부엌에는 스툴도 필요하다. 화장실도 보통 서너 개씩 되다 보니 공간마다 손비누, 바디워시, 샴푸/린스, 타월, 쓰레기통이 필요하다. 공간에 채워 넣는 ‘기본적인’ 물건만 따져봐도 정말 많다.


우리 옆집은 1층 서재에 아저씨 스포츠 관람용 TV가 있고, 거실에는 가족이 함께 보는 TV가 있고, 딸 방에는 저녁에 혼자 볼 수 있는 TV가 있고, 할머니 방에는 한국 방송이 나오는 TV가 따로 있다고 한다. 한 집에 TV만 네 대가 있는 것이다. 닌텐도 사랑이 남다른 이웃집에는 아들 둘이 닌텐도 스위치를 각자 하나씩 갖고 있고, 아빠도 스위치를 따로 갖고 있으며, 들락거리며 사는 외삼촌도 본인의 스위치를 늘 들고 다닌다고 한다. 한 집에 똑같은 오락기가 네 대 있는 것이다. 앞집에 사는 4인 가족은 스포츠 패밀리인데, 차고에 자전거 4대에 러닝머신, 실내 사이클, 역기봉, 거꾸리, 요가매트와 요가볼 등으로 미니 헬스장을 차려 놓았다. 차고 안에 차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차 두 대 모두 집 앞 드라이브웨이에 주차한다. 실내면적이 70평이 넘어도 운동기구들을 둘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오픈하우스를 가보면 더 가관이다. 집을 내놓기 전 이미 쓸데없는 물건들은 팔아 없애거나 기부하거나 버렸을 텐데도 창고나 지하실 저장 공간을 열어보면 여행용 트렁크만 20개 이상 있고, 옷, 신발(얼마나 많은지 신발장에 다 넣지 못하고 신발 박스 그대로 옷장 안에 쌓아둔다), 가구, 가전, 주방용품, 운동기구 등 모든 물건이 입이 떡 벌어지게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물건에 치여 발 디딜 틈 없는 집들을 한 번씩 보긴 했지만, 그 정도면 미국에서는 아주 귀여운 축에 든다. 기본적인 사이즈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쟁여놓고 사는 살림 규모 자체가 다르다.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집집마다 집안은 물론 집 바깥 장식에 열을 올린다. 온 집에 거미줄을 둘러놓고 어른 머리 사이즈보다 큰 거미들, 호박 조각한 것들, 해골 모형, 하얀 소복 입은 고스트들을 데려다 놓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더 화려하게 하는데, 크리스마스트리는 보통 사람 키보다 더 큰 것을 장식해 둔다. 천정이 높은 집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장식해야 할 만큼 존재감 있는 트리를 놓기도 한다. 시카고 서버브에는 집 전체를 반짝반짝하게 라이팅 하고, 앞마당에 산타 할아버지, 썰매, 루돌프, 눈사람은 물론이고 호두까기 인형들까지 무더기로 데려다 놓은 집들도 많았었다. 이런 시즌 상품들을 어마어마하게 사 모으고, 1년 내내 어딘가에 짱박아 두었다가 꺼내서 장식을 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은 재미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미국집들 (Photo by dreamersonya)


미국 사람들은 선물도 엄청나게 주고받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는 사돈의 팔촌은 물론 이웃집 아이들의 선물도 챙겨주는 경우가 많다. 담임선생님은 물론 음악/운동 레슨 선생님들 선물도 일일이 챙기고, 자주 보는 우체부, 택배기사, 정원 관리하는 분들까지 챙긴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에는 반 전체 아이들에게 밸런타인 카드와 함께 작은 캔디나 학용품을 나눠준다. 지난 밸런타인데이에 큰아이 학교에서 파티를 한다고 친구들 선물을 나눠주고 싶으면 가져와도 된다고 이메일이 왔었는데, 옵션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보냈다가 내 아이 혼자만 빈 손으로 가서 너무 민망했다고 했다. 워낙 마음이 가난하고 정신없었던 시절이긴 했지만 그게 뭐라고, 조그만 스티커라도 하나씩 챙겨 보낼걸, 후회가 되었다.


우리 집 우편함에는 매주 전단지가 한 뭉치씩 와 있다. 이사 오자마자는 가구점들마다 귀신같이 알고 할인 쿠폰을 보내오더니, 우리 집 주소를 적고 회원 가입한 모든 브랜드에서 계절 바뀔 때마다 카탈로그를 보내고, 동네 식당, 슈퍼, 가게들에서도 할인 쿠폰이나 이벤트를 알리는 전단지를 열정적으로 보낸다. 받는 즉시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해 처리하지 않으면 한쪽 공간에 무서운 속도로 쌓이기 시작한다.


이메일 계정에도 매일같이 브랜드 세일 정보가 쌓여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이메일을 확인하면 오늘만 50% 세일한다는 옷, 신발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아웃렛에 가면 많은 브랜드들이 50% 세일 중이지 않나, 공휴일을 앞두고는 더 큰 폭으로 할인을 해주질 않나, 티셔츠 쪼가리 하나 사서 나오는데 다음 달까지만 적용되는 할인 쿠폰을 또 쥐어주질 않나. 블랙 프라이데이, 사이버 먼데이, 박싱데이, 아마존 프라임 데이, 얼리 블랙 프라이데이... 무슨 ‘데이'가 이렇게나 많고 공격적으로 소비를 부추기는지, 정신 차리고 살기가 힘들 정도다.


한국에서는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우리 아이들이 뭘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이곳에 오고 동네 아이들을 사귀다 보니 이것저것 사달라는 게 많아졌다. 옆집 아이는 동물 인형 모으는 취미가 있어 인형이 350개 넘게 있다고 하는데, 매주 한두 개씩 컬렉션이 늘어난다. 만들기 재료를 파는 Michael's라는 가게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가서 뭔가를 사 와서 만들기도 한다. 이웃집 형제는 비디오 게임이 출시되는 즉시 사 모으며 자랑을 한다. 동네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난감도, 게임도 별로 없는 우리 큰아이가 어느 날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줄 알고 사는 것보다는 약간 가난한 줄 알고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내가 아이들을 너무 궁핍하게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어려서부터 결핍을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까,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아이의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아 하루 동안 고민하다가 다음날 저녁 아이를 앉혀 놓고 이야기했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다고.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서 며칠 갖고 놀지도 않고 결국 쓰레기가 되는 장난감들은 아빠가 정말 수고해서 번 돈으로 사는 거라고. 물건이 쌓이면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도 정말 힘들어지고, 내년이면 아마도 이사를 해야 할 텐데 이삿짐이 늘어나는 만큼 모두가 고생할 거라고. 물건 사는 재미가 뭔지 엄마도 잘 알아서 아무것도 사주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 미국 아이들처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습관을 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잘 받아들였고, 이웃집 아이들처럼 원하는 걸 전부 사달라는 말은 아니었다고 했다.  


은행 계좌에 500불이 없어 급한 일이 생기면 소액대출을 받아야 하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했다가도 그 자리에서 해고당할 수 있는 벼랑 끝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저축을 하지 않으니, 코로나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월세나 모기지는 물론 유틸리티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면 수도와 가스, 전기가 끊기고 퇴거를 당하거나 어렵게 보유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버리는 안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미국인들 걱정을 하면서도 막상 난 이번 주말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 의상과 캔디에 얼마를 쓴 건지. 작년에 즐기지 못한 블랙 프라이데이 핫딜을 놓치지 않으리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은 또 얼마나 우스운지. 정신줄을 꼭 붙들지 않으면 미국의 소비지상주의에 동조하는 은근한 맥시멀리스트가 되어 예쁜 쓰레기를 사 모으는 나를 볼 게다. 조심, 또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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