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크리스마스 2020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한 해가 코로나와 함께 끝나간다. 인구 600만의 메릴랜드주 확진자 수는 여전히 2,000명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메릴랜드 주지사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두고 꼭 필요한 여행 외에는 자제해달라면서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면 테스트와 자가격리를 권고했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못한 지 9개월이 되어가고, 그 말인즉슨 나 역시 집에서 아들 둘과 24시간 붙어 지낸 지 9개월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한국도 딱히 상황이 나아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했더니 대부분 다시 재택근무 중이고 자녀들은 온라인 수업 중이라는 답장이 온다. 연말연시인데 외출이나 모임은커녕 외식도 꺼려지는 마당이니 답답해 죽겠단다. 1년을 통째로 도둑맞은 것 같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다리만 건너면 주변에 코로나에 걸려 앓고 있거나 걸렸다가 회복되었다는 사람들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라오는 확진자 수로만 짐작할 뿐 이렇게 몸으로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말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서바이벌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조건 감사하고 또 조심하며 지낼 때인 것 같다.
우리는 메릴랜드에서 맞게 될 첫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함께 트리를 장식했다. 세트로 사다가 매단 장식도 많지만, 아이들이 비즈나 글라스데코를 이용해 만든 장식들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다. 베이킹을 좋아하는 둘째와 함께 쿠키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디너 후에 먹을 케익도 구웠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엔 햄을 먹는다고들 하길래, 너무 크지 않은 것 한 덩어리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사이드는 추수감사절 때 한 번씩 만들어 보았으니 큰 걱정이 없다.
올해는 정말 오랜만에 손글씨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보냈다. ‘2020’이 찍힌 크리스마스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쏙쏙 집어넣으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날로그 감성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크리스마스 카드에 정성 들여 한 자 한 자 빼곡히 적어 벗들에게 전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났다.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메일이란 걸 처음으로 보내며 그 획기적인 편리함에 놀랐던 기억도 났다. 이제는 이메일도 잘 읽어보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 카톡이나 SNS 계정을 통해 짧은 인사를 전하게 된다. 마음에 여유란 게 없던 일개미 시절에는 짤막한 크리스마스 인사를 복사해 단톡방 여기저기에 붙이고 끝내거나, 이모티콘으로 보내온 지인들의 인사에 영혼 없이 화답하기도 했다. 시간차 없이 바로 주고받는 카톡과 SNS 포스팅 댓글들에 전 세계가 연결된 듯 편리해졌지만, 기다림이 주는 두근거림이 사라져 버렸다.
블랙프라이데이에 주문해둔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하나씩 배송되어 오면서 아이들 몰래 픽업해 숨겨놓느라 애를 썼다. 올해는 한국에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캐나다와 한국의 이모들, 시카고 숙모도 아이들 선물을 챙겨주셔서 더욱 풍성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겠다. 몇 년 전 시작했던 크리스마스 아침 보물 찾기를 올해 다시 해보려고 한다. 포장한 선물을 집안 곳곳에 숨겨놓고 간단한 보물지도를 그려 아이들이 직접 찾아오게 하려고 한다. 이제 둘째도 많이 컸으니 잠옷 바람으로 형아와 함께 선물을 찾으러 다니며 깔깔거리겠지,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사돈의 팔촌까지 선물을 챙기는 미국 크리스마스를 작년에 시카고에서 경험했는데, 여기도 그럴까 궁금했었다. 설마 했는데 며칠 전 현관문 앞에 커다란 상자들이 와 있었다. 내가 둘째 낮잠 재우는 사이 옆집 할머니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하시며 두고 가셨다는 것이다. 어제저녁에는 이웃집 아줌마와 누나가 아이들 선물과 직접 구운 쿠키 한 통을 주고 갔다. 나도 스타벅스 핫초코와 티 세트를 종이백에 담고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크리스마스 꽃다발과 함께 전해주고 왔다. 뭐하러 이웃집들과 불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며 애를 쓰나 싶었는데, 막상 주고받아보니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진다. 지난 1년 간 팬데믹 속에서 대면하여 만난 사람을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좋은 이웃들을 만나 서로 의지하며 외롭지 않게 지냈구나 생각에 감사가 넘친다.
지난 주중에는 미국 동부에 눈이 엄청나게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즐겼다.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눈 속에서 코로나도 잠시 잊은 채 이웃집 아이들과 눈싸움도 하고, 쌓인 눈 위에서 며칠을 즐겁게 보냈다. 주말에는 남편이 집 근처 공원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보자고 해서 갔었는데,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이런 언덕이라면 스키를 타도 되겠다며 남편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잠시 후 나타난 청춘남녀가 진짜로 스키와 보드를 가져와 타기 시작했다. 눈이 오는 날은 그 눈 속에서 온전히 누리고 즐길 줄 아는 이곳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우리도 그렇게, 매일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한다.
카톡으로 크리스마스 안부 인사를 나눈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가족과,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참 복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가지 못하고, 엄마, 아빠도 재택근무를 하고 출장을 가지 않게 되었으며, 출근을 하더라도 회식이나 모임을 자제하니 집에 일찍 오게 된다는 것이다. 각종 송년회, 연말 회식으로 정신없이 흘러 보내는 대신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보내게 된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온 워킹맘들은 늘 엄마가 고픈 자녀들과 많은 시간 붙어 있을 수 있어 감사했던 한 해였다고 고백했다.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힘든 시간을 지나가고 있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깊이 있는 기쁨을 많은 이들이 누리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거야말로 불행을 가장한 행복(blessing indisguise)이 아닐까.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