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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Jul 21. 2020

오래된 미싱기

추억도 함께 수리하다.

퇴직하신 지 한참 된 우리 어머니는 취미 겸 소일거리로 미싱을 돌린다. 3주 전 경주에 갔더니 미싱을 수리해 달라고 하셨다.  지인에게서 얻은 미싱이라던데 만들어진 지 30 년 넘어 보이는 공업용 미싱이다. 새로 사기보다 예전 게 좋다며 대구 미싱 골목에 가서 작동만 되도록 꼭 수리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 아파트에서 낑낑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공업용이라 그런지 무게가 장난 아니다. 차 뒤에 보관해놓고 한참을 잊어버렸다. 오늘 내 차를 수리하는 김에 뒷자리에 있던 미싱을 수리하기로 마음먹고  달성공원 근처 미싱 골목을 찾아갔다.

요즘도 미싱을 수리해 쓰는 사람이 있을까 했지만 생각보다 미싱 가게가 제법 많다. 하지만 두 집 건너 한 집은 공사가 진행 중이고 골목길을 다니는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거 섬유산업의 메카였던 대구인지라 그 흔적이 제법 남아 있지만 동시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허물어져가는 골목의 모습을 동시에 보는 것 같다. 허름한 골목길에서 미싱 가게 주인들은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덜 허름해 보이는 가게 앞에 차를 세우니 제법 나이가 드신 가게 주인이 나온다. 오래된 미싱을 수리하러 왔다고 하니 매우 기뻐하신다. 미싱 수리만 60년을 하셨다는 가게 주인에게 30년 넘은 공업용 미싱기가 본인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리는 일일 것이다. 연신 드라이버로 풀고 조이는 작업을 반복하지만 내 눈에는 그 미세한 작업이 기계에 어떤 의미와 생명을 불어넣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대기업 가정제품 서비스센터 기사들의  수리과정과 다른다는 건 알겠다. 대기업 수리기사들이 보통 매뉴얼에 따라 부품을 통째로 갈아 끼운다면 칠순은 되었을 미싱 가게 주인은 구멍 하나, 볼트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그는 같은 장소에 몇 번씩 부품을 끼웠다 빼면서 섬세한 차이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절대 수리  매뉴얼로는 배울 수 없고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자신만의 기술을 나에게 보여주시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고작 3만 원짜리 수리이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는지도 이야기해 주신다.  그리고 가게 주인 옆에 놓인 50살은 넘어 보이는 오래된 미싱기를 보며 어머니가 어릴 때 집에서 미싱 돌리던 일을 떠 올린다.
  아무튼 오늘 처음 하는 경험이면서 오래된 추억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이다. 가게 주인은 이제 미싱기가 완벽하게 작동될 거라며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내일 미싱기 갖다 드리러 경주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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