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않은 것의 색
우리 집은 밭이었던 땅을 대지로 직접 전환해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집이 처음부터 갖춰야 할 편의 시설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쓰레기차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하나씩 해결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면사무소에 전화해 쓰레기차가 집 앞을 지나갈 수 있도록 신청했다. 면사무소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전화번호 하나만 알려주었고, 나는 또다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집 앞으로 일반 쓰레기차와 재활용 쓰레기차가 다니도록 신청해야 했다.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도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에 담아 버릴 수는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밖에 수거차가 오지 않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길가에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으면 동네 길고양이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싱크대에서 갈아서 바로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음식물 처리기를 사용했다.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기계와 물이 결합되다 보니 고장이 잦았다. 다섯 번쯤 고장이 나고, 두 번이나 새로 교체한 뒤에야 우리는 그 기계를 떼어냈다. 인내심이 바닥났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 중에는 밭에다 쓰레기를 그냥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검색해 보니 외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우리 집만의 간단한 장치를 만들었다.
철물점에서 가장 큰 플라스틱 화분 두 개를 사 와 바닥에 구멍을 여러 개 뚫고, 땅을 파 묻은 뒤 뚜껑을 덮었다. 한 화분에는 일 년 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차곡차곡 넣는다. 첫 여름을 지날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식물을 버리고 며칠 뒤 열어 보니, 벌레들이 거의 다 먹어 치워 버린 것이다. 화분이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버리는 족족 음식물 쓰레기가 사라졌다.
겨울이 되어 화분이 가득 차면 그 화분은 덮어 두고, 옆의 다른 화분을 사용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덮어 두었던 화분을 열어 보면 놀랍게도 싱그러운 흙냄새가 나는 좋은 거름이 되어 있었다. 새까만 흙 속에는 지렁이도 가득했고, 나는 그 퇴비를 삽으로 퍼 나무 밑에 주고 화분을 다시 비웠다. 이렇게 십 년을 살았다.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것 같지 않아 마음도 편했다.
올가을이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아이와 함께 퇴비를 비우고 있었다. 아이에게 음식물 쓰레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평소 음식물 쓰레기 냄새는 질색하며 싫어하던 아이가 변해 있는 퇴비를 놀란 눈으로 보며 삽질을 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여기 뭐 있어.”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삽 끝으로 가리킨 곳에 밝은 노란색 물체가 박혀 있었다. 새까만 퇴비 속에서 그 노란색은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아이는 그걸 꺼내 들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엄마, 이건 왜 그대로야?”
그 노란색의 정체는 플라스틱 물병의 거름망이었다. 아마 설거지하다가 음식물 쓰레기에 섞여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는 알록달록한 음식물 사이에 섞여 알아채지 못했을 테지만, 일 년이 지나 흙이 되고 나니 플라스틱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 손에 들린 플라스틱을 보며, 나는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벌레의 먹이가 되어 흙으로 돌아갔는데, 플라스틱은 색 하나 바래지 않은 채 끝까지 자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외면해 온 진실을 아이가 먼저 발견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흙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을 아이와 함께 바라보는 순간, 그 말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아이의 질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자연은 우리가 버린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지만, 모두를 같은 방식으로 품어 주지는 않는다. 썩어야 할 것은 사라졌고, 사라지지 말았어야 할 것은 끝내 남았다. 아이와 함께 흙을 뒤집다 만난 그 노란 흔적 앞에서,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