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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누 Jul 03. 2020

고양이 합사는 현재 진행형

1년 반. 아니, 정확히는 1년 4개월. 요미 이후 구미를 만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요미를 들일 때 와이프와 협의했다. 고양이는 한 마리만 키우기로. 그런데 요미와 살가워질 즈음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 "둘째는 안 데려와요?" 에이, 둘째는 무슨. "첫째 들이면 둘째는 거저래." 고양이 용품도 있고 집사 노하우가 생겨 손이 덜 간다는 와이프 말이었다. 묵묵부답.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요미, 코 자는 모습]

요미 태어난 지 1년쯤 됐을까. 요미가 예전만큼 씩씩하지 않다. 성묘가 되면 으레 그렇다지만 잘 놀아주지 못해 그런가?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다. 피곤한 날이면 씻고 자기 바빠 더 그랬다. 와이프에게 말했다. "둘째 한번 생각해볼까?" 와이프가 웃었다. 좋은 티를 숨기지 않았다. 곧 이사 예정이라 이사하고서 고양이 분양 숍에 가기로 했다. 분양 숍 사장님께는 미리 말해뒀다. "이번에는 랙돌로 데려오려구요." 사장님은 걱정 말랬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랙돌요. 가정 분양묘인데, 아주 예뻐요." 실물로 본 구미는 예뻤다. 정말 예뻤다. 랙돌 이름 그대로 인형 같았다. 가냘픈 몸을 어떻게 안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그렇게 구미를 데려왔다.

[억울한 표정과 다르게 에너지 빵빵한 구미, 저 밥도 요미 밥이다.]

문제는 합사다. 예민 덩어리 요미가 구미를 달가워하지 않을 건 뻔했다. 합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되는대로 공부를 했다. 고양이 카페에서 검색하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었다. 집사들에게 유명한 그 책, [24시간 고양이 육아 대백과]에서는 합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집사 필수템, 24시간 고양이 육아 대백과 중 고양이 단계적 소개법]

합사 1~4단계는 체취를 나누는 기간이다. 좋아, 이대로 해보자. 요미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요미는 구미 체취가 묻은 양말을 1주일 이상 경계했다. 그래서 2주 넘게 체취 단계만 진행했다. 신중히 한 단계씩 진행했다.

[눈빛 교환 중]

어떻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요미와 구미는 서먹한 대면까지 끝냈다. 그리고 요미도 구미를 더 이상 위협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상황이 바뀌었다. 구미가 요미에게 달려들고 괴롭힌다. 주객이 전도됐다. 요미가 겁쟁이긴 해도 덩치가 배 이상 크다. 그런데도 구미가 달려들면 도망가기 바쁘다. 문득 김명철 수의사가 쓴 [미야옹철의 묘한 진료실]에서 고양이 합사 주의사항이 생각났다.


"그럼 가장 좋은 나이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첫째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새끼 고양이를 둘째로 들이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에너지 레벨이 비슷해서 서로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소모해 주기 때문에 둘 다에게 좋습니다. 첫째가 청-장년기인 다섯 살을 넘기지 않았다면 사회화 시기의 어린 고양이를 둘째로 들이는 것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특히 소심하고 예민한 고양이라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둘째를 들이면 지금보다 상태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에너지 레벨이 높은 천방지축 둘째가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자신의 영역 안을 휘젓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고양이 성격은 사람이 보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다른 고양이에게 쉽게 다가가는 고양이는 사실 사교적이고 친절한 고양이가 아니라 자신감이 있는 호전적인 성향의 고양이입니다. 쉽게 말해 무서울 것이 없으니 낯선 고양이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소심한 고양이는 낯선 고양이가 다가오면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악질을 하고 방어적인 공격을 계속합니다."

미야옹철의 묘한 진료실 中
[삐진 요미]

표면적인 합사는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남았다. 요미를 괴롭히는 구미 말이다. 고양이끼리 서열 정리하나 싶어 지켜보다가도 나도 모르게 한국적 유교 사상에 비춰 생각하고 만다. 구미가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한다. "언니한테 너무 까부는 거 아니니?" 인간적 논리로 고양이를 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구미가 요미를 괴롭히는 꼴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밤마다 우다다다 서로 뒤엉키기 바쁘다. 이게 노는 건지, 싸우는 건지. 고양이 언어와 행동을 공부하는데도 어렵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고양이에게 인간적 잣대를 묻지 말아야 한다. 머릿속이 북적북적하다. 


"우리 말이야..." 와이프가 슬그머니 팔짱을 낀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다. "셋째는 좀 ...그렇지?" 밖에서 까치가 깍깍하고 운다. 내 목은 어느새 자라목이 됐다. 이이익,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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