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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누 Jul 10. 2020

즐거운 우리집

"요미야, 이 집은 어때? 저번에 그 오피스텔은 너무 작았지? 거기는 25제곱미터야. 전용 면적 말이야. 그런데 여기는 말야. 64제곱미터야. 64제곱미터. 거진 3배 큰 거지. 예전에 그 오피스텔에서는 너 뜀박질도 못 했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종이공 축구도 못하고 그냥 캣폴에서 엎어져 자기 바빴잖아. 어휴, 요미 너도 기억나지? 좁다고 투덜대고, 밤마다 벽 긁고 그랬었는데. 그거 때문에 아빠 잠 못 자서 너 때찌하고 그랬잖아. 미안, 미안. 아빠도 화나서 그랬어. 그래도 더 큰 집으로 오니까 괜찮지? 이제 거실에서 뜀박질도 하고 카샤카샤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할 수 있어. 어? 여기서는 오래 살 거냐고? 음. 그래도 2년은 살 거야. 계약기간이 2년이거든. 에이, 그런 표정 짓지 마. 다음에 이사 가는 곳에서는 오래 살 거야. 정말이야. 곧 분양할 아파트인데, 작은 테라스도 있대. 상상만 해도 좋지? 아빠랑 엄마가 청약 잘 넣고 있으니까 기대해 봐. 그 아파트로 이사 가면 테라스에 촘촘하게 파티션 쳐서 우리 요미, 구미랑 안전하게 바깥 구경도 하고 바람도 쐴 수 있게 꾸밀 거야. 엄마랑 요새 그거 계획 짜느라 알콩달콩해. 너도 들은 기억나지?"


요미는 앞 발바닥을 그루밍하고 있었다. 바빠 보였다.


"요미야, 그 집에 가면 아빠 방도 따로 만들 거야. 근데 요미는 거기 들어오면 안 돼. 거기는 컴퓨터랑 전자기기 많아서 너 들어오면 전선 물어서 안돼. 아빠 화낼 거야. 그러니까 요미는 들어오면 안 돼. 지금처럼 방묘문도 설치할 거야. 구미도 못 들어와. 어, 근데 구미는 어디 있지? 작은 방에 있니? 얘는 요새 작은 방 화장대 위에서 자주 자더라. 거기서 그렇게 자면 떨어질까 봐 걱정되는데, 말을 들어야 말이지. 구미가 어디 아빠 하는 말 듣니? 요미 너도 안 듣긴 하지만, 구미는 지 이름 불러도 안 쳐다보잖아. 요미는 어렸을 때부터 이름 알아 들었는데. 그치이? 구미 찾아봐야겠다. 구미야, 어디 있니? 어유, 갑자기 말을 많이 했더니 입이 건조하네. 아빠 목쉬기 전에, 물부터 마셔야겠다."

[나도 간식 줘]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요미가 냉장고 옆 식탁 위로 쪼르르 올라온다. '냉장고'는 '간식'. 얘네 공식이다. 오늘 간식을 줬었나? 생각해보니 안 줬다. 콩알만 한 갈색빛 닭고기맛 건조 간식 10알을 꺼냈다. 그 소리가 컸는지 작은 방에서 구미가 쪼르르 달려와 식탁 위에 성큼 올라선다.


"그래, 그래. 온 김에 같이 먹어라. 너네 이따 밥 먹어야 하니까 많이는 안 줄 거야. 자, 여기 요미 5알... 야야, 구미야. 언니 거잖아. 아빠가 따로 줄게. 넌 이거 먹어. 아니이, 둘 다 먹지 말고. 언니도 먹어야지. 넌 쪼꼬만 게 욕심만 많아서는. 그러면 사회생활 못해. 봐라, 요미 언니도 너한테 하악질 하지. 엄마 올 시간 됐으니까 이따 엄마 오거든 모른 척 간식 달라 해. 그럼 엄마가 또 줄 거야."


구미가 주변을 킁킁거린다. 간식을 다 먹었는데도 킁킁거린다. 식탁까지 내려와 킁킁거린다. 요미도 구미 따라서 식탁에서 내려와 킁킁거린다. 어디 떨어진 간식 없나 찾고 있다. 이놈들, 참.

[분명 떨어뜨린 거 같은데]

"그래, 구미도 있으니까 이 참에 다시 말하자. 너네 발톱 간지럽다고 아무 데나 긁고 그러면 안 돼. 그럼 나중에 변상해야 돼. 우리집인데 왜 변상하냐고? 아, 음... 우리집인데 우리집이 아냐. 어, 2년만 우리집이야. 그러니까 2년 뒤에는 처음 왔을 때처럼 해놓고 가야 해. 그래서 너네가 발톱 간지럽다고 벽지 막 긁어놓으면 벽지 새로 해놓고 나가야 한단 말야. 그리고 밤에도 야옹, 야옹 울면 안 돼. 옆집에서 다 들어. 그럼 신고 들어오거든? 잘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어. 왜냐면, 우리 여기 들어올 때 너네 있다는 얘기 안 했거든. 그것도 2마리나. 음, 속인 건 아니고 임대인이 안 물어봐서 얘기 안 했을 뿐이야. 핑계 아니냐고? 킥킥, 물어보면 대답할라 그랬어. 임대인이 안된다 하면 다른 집 구해야 하는데. 요새 반려동물 있는 세입자 꺼려하거든. 아빠가 아침, 저녁으로 청소기 돌리고 열심히 쓱싹쓱싹 하니까 괜찮을 거야. 지금도 이사한 지 5개월이나 지났는데 새집 같잖아. 앞으로 1년 7개월만 더 이렇게 살면 문제없어. 그러니까 너네도 협조해. 안 그러면 우리 쫓겨날지도 몰라. 정말이야. 구미야, 너는 듣는 태도가 왜 그러니? 아빠가 말하는데 그렇게 똥구멍 핥으면 아빠 기분 나쁘잖아."


"정말 기분 나빠?"


하이고 깜짝이야. 와이프가 언제 들어왔는지 현관 발치서 보고 있다. "아니, 이렇게라도 말해 놓으면 조심하지 않을까 싶어서..." 와이프가 헛웃음을 켠다. 날씨가 덥다. 여름은 여름이다. 가슴속 설움을 공연히 게워냈는지 속이 허하다. 배고프다. 밥 먹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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