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샌프란시스코 ② 자전거로 금문교를 건너다
아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에서 한 가지를 해결한 대단히 뜻깊은 날이었다. 사실 이 버킷리스트는 대단히 멋진 일이라서, 시작과 동시에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즉시 추가되었다. 그리고 당일 해결되었다. 아마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기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바로 골든게이트브릿지, 금문교를 ‘자전거를 타고’ 직접 건너는 일이다. 3박의 일정 중 하루를 써야 하는 일이라 아마 아내도 조금 망설였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함께이므로 가능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케이블카를 타고 망설임 없이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다. 전날 저녁 케이블카를 탔던 곳 근처의 대여점이었는데, 생각보다 대여 절차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놀랐다. 특히나 우리는 배터리가 딸려 있는 전기 자전거를 빌렸는데, 안전에 대한 직원의 교육은 더 꼼꼼하게 이루어졌다. 충분히 숙지하기 전엔 자전거에 오르지 못하게 할 것처럼 보였다. 교육을 마친 우리는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서 금문교로 향했다. 자전거를 많이 타 보지 못했다는 아내 뒤를 따라 해안길을 천천히 달렸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금문교 덕분에 따로 지도가 필요하지 않았고, 자전거 도로라든지 안내 표지판 역시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길을 헤매거나 하지는 않았다. 햇살은 햇살 대로 좋았고, 얼굴에 불어오는 짠내 머금은 바다 바람도 좋았다.
해안 길 끝에서 언덕을 조금 오르면 금문교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걸어온 사람, 자전거 타고 온 사람, 차 타고 지나가던 사람.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서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우리 자전거는 드디어 금문교 위로 올라섰다. 금문교, 골든게이트브릿지는 말 그대로 ‘Golden Gate’ 로 통하는 해협을 이어 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골든 게이트 해협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절경인데, 이 석양에 물든 다리가 황금빛으로 밝게 빛나 그 이름에 의미를 더한다고 했다. 실제는 붉은빛, 짙은 오렌지색의 현수교인데, 수면에서 70m에 가깝고, 타워 높이는 200m가 넘어가는 위용을 자랑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위엄이 느껴진다. 이 아래로 못 지나가는 배가 없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다리로 들어서자, 옆의 왕복 6차선 도로로 택시며 트럭이며 차들이 빠르게 달린다. 높기도 높았거니와, 강풍이 불어대는데, 아내가 살짝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전기 자전거는 축전지 덕분에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큰 힘을 내고, 오르막길도 가뿐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따금씩 비틀거리거나, 핸들을 놓치고 자전거를 넘어뜨리기도 했는데, 배터리라든지 딸린 부품이 많다 보니 차체가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자전거라는 게 천천히 갈수록 직선으로 가기가 어렵지 않은가. 다리의 길 폭도 좁고 무서운 마음에 천천히 가야 했으니, 아내는 더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잠깐 망설였을 뿐이다. 아내는 금세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나도 물론 그 뒤를 따랐다. 용기를 내서 직진하는 모습이, 내 자식도 아닌데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며 응원하는 나까지 꽤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조금 흔들거리긴 했지만, 차근차근 천천히 아내는 자전거에 적응해 갔다. 다리 중간쯤 가면 시내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다. 우리도 그 근방에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앞에 적은 것처럼 금문교는 해협을 잇는 다리라서, 부근에 안개가 자주 끼고 멀리까지 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날은 안개가 거의 없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교각을 제외하곤 어떤 장애물도 없이 바다 위에 서 있기 때문이었을까. 전날 알카트라즈에서 보았던 시내는 또 다른 느낌으로, 시원한 바닷바람과 공중에 아슬하게 떠 있는 듯한 스릴로 채색된 듯했다. 조금 더 힘을 내면 3km 가까이 되는 금문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서 소살리토라는 동네를 들러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것을 그 날 일정으로 했는데, 사실 다리만 건너면 바로 그 동네가 나올 줄 알았다. 양평동에서 양화대교를 건너면 바로 합정동이 나오듯 말이다. 하지만 다리를 모두 건넌 후에 소살리토까지는 꽤나 긴 언덕을 내려가야 하는 난관이 한 번 더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클 자전거를 탄 이들은 구불구불한 다운힐을 알파인 스키 타듯 빠른 속도로 내리질렀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안타깝게도,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멈칫멈칫 내려간다. 내리막이 굽이굽이 있다 보니, 이번엔 내가 앞장서 가게 되었는데, 조금 가다가 뒤돌아 보면 아내가 없다. 어디에 넘어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기다렸다가 만나고, 다시 가다가 뒤돌아 보면 아내가 안 보이는 것이 반복됐다. 그만큼 경사가 높은 언덕이었고, 더구나 무거운 자전거가 아내에게 큰 짐이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을 치러 가며 언덕을 한참 내려가니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바다에 부서지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해안가 언덕에 자리 잡은 2,3층 정도 되는 집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드디어 소살리토 초입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소살리토는 '작은 버드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작지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금문교 건너의 시내와는 또 다른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예쁜 상점과 음식점들이 있고,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산다고 한다. 이 곳에 들어서면 자전거 주차장이 따로 있는 점이 인상적인데, 자전거를 타고 이 곳을 찾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일 듯하다. 자전거를 맡겨두고 점심 식사할 곳을 찾았다. 작은 도로 옆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깥에 자리를 잡고 늦은 점심과 함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화창한 하늘 아래 평화로운 마을, 부둣가에 떠 있는 요트가 보기 좋은 곳이었다. 이 식당에서 '앵커스팀(Anchor Steam)'이라는 맥주를 한 잔 마셨던 게 기억이 나는데,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어지는 이 맥주는 사실 달짝지근하거나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쌉싸름한 그 맛이, 언제 어디서 먹었던 맥주보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아마도 고된 페달 밟기의 끝에 마시는 맥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테라스에 앉아 한가함을 즐기다 보니, 아내가 점점 팔이 화끈거린다고 했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반팔만 입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그대로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다 맞으며 자전거를 한참 탔으니, 팔에 화상을 입고 만 것이다. 우리는 팔이 익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자전거를 타서 그 해협을 건넜던 것이다.
식사를 마쳤을 즈음에는 이미 오후 네 시를 넘어가는 무렵이었다. 시내로 돌아가는 페리 티켓을 끊었다. 자전거를 다시 타고 금문교로 건너는 일은 고민의 대상 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것도 가능이야 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이유는 없었다. 행복하고 값진 경험인 만큼 고된 일이었기 때문이고, 팔이 다 익어버리는 부상(?)을 당한 아내 때문에라도 배를 타고 편하게 돌아가는 편이 맞았던 것이다. 배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부둣가 벤치에 앉아 남은 시간을 마저 즐기던 중 형님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늘 반갑지만, 지안이 재인이가 유독 반가웠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영상통화였음에도, 같은 대륙에서 시차 없이 통화한 덕분이었을까. 전보다는 가까이 있다는 마음에 반가움이 배가 되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곧 도착한, 소살리토를 떠나는 배는 우리처럼 자전거를 싣고 오후를 마무리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배는 금방 시내 부둣가에 도착했다. 자전거 대여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제 아내에게 전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앞장서 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금문교를 건널 때처럼 다시 한번 자랑스러웠다. 그 새 성장한 것이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하루를 마쳐가며, 자전거를 반납하고 보니, 시기적으로 세그웨이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라 이걸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근처에 대여점까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세그웨이 대여를 해서 시내를 꼭 한 번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아내는 따가운 팔을 안고-, 숙소로 돌아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바로 근처에 있는 하이드 앤 비치 역으로 갔다. 마침 전날 저녁 하루를 마치며 아내와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던 부에나비스타 펍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이라 더 반갑다. 그런데 이 곳은 케이블카의 종점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케이블카가 한 대 도착할 때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 야하니, 차체를 반대로 돌려야 하는데 이걸 아직도 인력으로 하고 있다. 원판 위에 깔린 선로에 케이블카가 서면 작업자들이 이 원판을 돌려서 방향을 바꿔주는 것이다.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들 텐데 이런 클래식한 장면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둥글게 둘러싼 난간에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대어 조용히 구경하고 있는, 해 질 무렵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마침 정거장 한 켠에서 거리 가수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하늘에 점잖게 울려 퍼졌다. 실바람에 실린 전자기타 소리는 여유로운 시내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이 장면을 다행히 영상으로 남겨둔 덕분에 생각날 때마다 돌려 보는데, 그 노래가 바로 스캇 매킨지의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다. 공간과 분위기와 그 날 기분에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노래였다. 한국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들었던 그 노래를 현지에서 라이브로 들으니 얼마나 반갑고 또 새로웠던지. 지금 돌이켜 보아도 그 설렘은 가시지가 않는다.
바빴던 하루 끝에 케이블카에 올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천천히 해가 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 한숨 돌리고 문을 닫은 페리 빌딩을 아쉬워하고, 베이브릿지의 야경을 보며 산책하는 것으로 우리의 짧고 아쉬운 여행은 마지막 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귀국 비행기는 오전이었기 때문에.
내게 샌프란시스코는 스캇 매킨지의 노래 속 그 모습 그대로다. 거짓이 없다. 이 도시가 우리의 삶의 터전이 되어 살아야 하는 곳이라면 또 다른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될 테지만, 적어도 며칠 여행을 위해 방문한 내게 이 노래 가사에는 거짓이 없었다.
다정한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달고 반겨주는, 거리마다 사랑이 가득한 곳. 설렘이 넘치고 활기가 가득한 자유로운 곳. 그래서 나도 그 사랑과 자유에 동참해 보고 싶어 지는 곳. 더구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더욱더 이 도시의 사랑과 자유를 가슴에 한 아름 끌어안고 즐길 수 있었던 곳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모든 여행은 아내와 함께일 때 더 즐겁다. 앞으로도 모든 여행의 동반자로 함께 해 주었으면 좋겠다. 3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와야 했지만, 새벽에 인천공항에 나가 오매불망 체크인을 기다렸던 것부터 자전거를 타고 금문교를 건너고, 태어나 처음 가 본 낯선 땅에서 마주 보고 밥 먹고 이야기하며 웃고 감탄했던,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은 아마 남은 평생 내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그 기억을 만들어 준 아내에게, 어떤 방법이든 부족하지만, 이 책으로 또 한 번 무한한 고마운 마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