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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Dec 09. 2020

기자 피라미드

영원한 삶

이집트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146m의 높이의 피라미드 앞에 서면 저절로 압도당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를 완성하기 위해서 평균 2.5톤의 돌 230만 개가 쓰였으며 1년에 3개월씩 40년 동안 하루 10만 명이 투입되어 공사에 투입된 인원만 2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에  모래밖에 없는 사막에 이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운 것을 보면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사후 세계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다.


기자 피라미드의 매표소에 도착하여 티켓을 구입한 후 입장하면 저 멀리 피라미드 세 개가 장대하게 서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피라미드로 다가갈수록 여행자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세 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며 높이만 146m인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제일 먼저 여행자를 맞이한다. 여행자가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다가가면 갈수록 사각형의 피라미드가 경사면을 이루며 점점 높아지며 하늘 끝까지 뻗어간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남아 있는 마감재에 이르면 완공 당시 피라미드가 얼마나 세련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주었을지 짐작이 된다.


기자에 있는 세 피라미드의 주인공은 기원전 2,600년에 활동한 고왕국 4 왕조의 파라오인 쿠푸 할아버지와 카프레 아버지 그리고 멘카우레 아들이다.  그 나이순으로 피라미드의 크기가 줄며 나란히 서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피라미드 공사에 많은 민중들과 노예들을 강제 노역시켰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기록을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기록에 의하면 공사 인부 중 몸이 아프거나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작업에 빠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오히려 피라미드 공사는 농사일이 없어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세 피라미드 중 가장 작은 멘카우레 피라미드로 이동하여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간다.






파라미드로 들어가는 길은 처음에는 환하고 넓지만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길이 좁아지고 어두웠다. 그리고 왕의 무덤에 도착하기 전에 길이 막혀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이 길 끝에 있는 왕과 왕비의 무덤에 파라오의 영생과 부활을 기원하는 수많은 부장품과 파라오의 영혼이 깃들 수 있는 미라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연했다.



이곳에서 발견되어 현재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멘카우레 파라오 조각상>을 보면 중간에 멘카우레 왕이 서 있고 양 옆으로 하토르 여신과 상 이집트를 상징하는 여신이 보인다. 조각상에서 왼편에 보이는 미와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는 머리에 그녀의 상징인 소뿔을 달고 있다. 조각상 전체적으로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세부적인 근육까지 표현한 조각상은 부드러운 표면처리와 함께 돌로 만든 조각상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다음으로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 중인 <카프레 조각상>을 살펴보면 사실적인 얼굴 묘사와 굳게 다문 입과 표정은 예술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머리 뒤에 있는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는 파라오를 수호하는 신으로 상징적인 동시에 호루스의 카프레 조각의 약한 부문인 목을 지지하고 있어 실용성인 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카프레 피라미드 앞에는 장제전이 있다. 장제전은 왕이 사망을 한 후 왕을 기념하고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장제전으로 들어가면 돌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깎아 놓은 기둥들이 벽면과 정확한 직각을 이루며 격조 있으면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처럼 엄격하고 완벽한 고왕국의 이집트 예술은 이후 신왕국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장제전에서 스핑크스로 내려오면 카프레 왕의 계곡 신전이 나온다. 이곳에서 태양의 배가 발견되어 현재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쇠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만든 목선인 태양의 배는 길이가 40m가 넘는 거대한 규모이다. 이곳에 태양의 배가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나일강에서 이곳까지 운하를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태양의 배는 영혼이 저승으로 갈 때 타는 배로 실용성보다는 일종의 장례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제 스핑크스로 이동하자.



고대 이집트 왕족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인 스핑크스는 지금으로부터 4,600년 전에 만들어졌다. 높이가 20m이며 전체 길이가 50m인 스핑크스는 얼굴은 지혜를 상징하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몸은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스핑크스의 전체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26년 발굴조사 이후로 그 이전에는 사막에 얼굴만 드러내고 있었다.



고왕국 시대의 스핑크스를 발견한 사람은 스핑크스가 만들어지고 무려 1,000년이나 지난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인 투트모스 4세였다. 그는 스핑크스를 발견하고 스핑크스 발 사이에 자신의 꿈 이야기를 새긴 비석을 세웠다.


투트모스 4세가 왕자 시절에 사냥을 나갔다가 모래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스핑크스가 투트모세 4세에게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파라오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투트모스 4세는 자신이 잠든 곳의 모래를 파보았더니 스핑크스가 묻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기록에는 스핑크스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고 자신이 발굴한 것을 투트모스 4세는 <지평선의 호루스>라고 불렀다.


<지평선의 호루스>에 스핑크스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초기 그리스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찬란한 이집트 문화를 접하면서 이집트의 문명에 비해서 자신들의 문화가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 문화를 아프리카 문명으로 폄하하고 왜곡하였으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이름인 스핑크스를 피라미드 앞의 수호신에게 갖다 붙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사악한 여성 괴물로 상반신은 여자이며 하반신은 독수리 날개를 지닌 사자의 모습으로 그리스어로 목을 졸라 죽이는 교살자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욕정 때문에 미소년을 범했던 그리스의 테베 왕 라이오스를 벌하기 위해 헤라가 스핑크스를 이집트에서 테베로 보냈다. 테베에 도착한 스핑크스는 테베의 지나가는 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틀린 답을 말하거나 못 맞히는 사람은 족족 잡아먹었다. 당시 스핑크스는 <목소리는 같지만 발이 4개가 되기도 하고 2개가 되기도 하고 3개가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 자매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낳는데 둘은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었는데 갑자기 오이디푸스가 나타나 첫 번째 질문의 답으로 <사람>, 두 번째 질문의 답으로 <밤과 낮>이라고 정답을 맞히자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절벽에서 스스로 추락사했다고 한다.


기자 피라미드 감상의 마지막 지역으로 피라미드가 가장 잘 보이는 지역인 파노라마 포인트로 이동한다.



파노라마 포인트에서 바라보는 피라미드는 우리가 항상 상상해오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황량한 모래 벌판에 세 개의 피라미드가 세월을 잊은 듯 무심하게 서있다. 5천 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서 있는 피라미드를 한참을 보고 있다보면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영원한 삶을 갈구했으며 또한 현재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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