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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Dec 10. 2020

카이로 여행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도시

이집트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거대한 신전 그리고 미라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이집트는 세계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639년 이슬람 왕조가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건설된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시내 곳곳에서 수많은 이슬람 사원을 볼 수 있다.


특히 나일강을 중심으로 카이로 동부에 위치한 이슬람 카이로 지역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이슬람 사원들이 몰려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인 이븐 틀룬 모스크를 감상하자.



639년 이집트를 점령한 이슬람 국가는 처음에는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들이 다스렸으나 750년에 아바스 왕조가 우미이야 왕조를 몰아내고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긴 후 이슬람 국가의 칼리프가 되었다. 이때 서른세 살의 바그다드 출신의 이븐 툴룬 장군을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지위를 알리기 위해 카이로에 호화로운 궁전과 거대한 모스크를 지었다. 이 모스크가 그의 이름을 딴 이븐 툴룬 모스크이다.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이븐 툴룬 모스크는 아치형 기둥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안뜰과 나선형 계단의 첨탑으로 유명하다. 실내로 들어가면 메카를 가리키는 미흐랍과 중앙의 설교단인 민바르가 나란히 있다. 특히 나무로 만든 민바르는 1296년 술탄 라진이 적군을 피해 이곳에서 목숨을 건진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었다. 당시 그는 사원의 첨탑인 미나레트 역시 나선형으로 지었는데 그 일화가 재미있다.


신전 증축 회의 중에 라진은 논의되던 문제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멍하니 손가락에 종이를 둘둘 말고 있었다. 그때 신하가 신전의 첨탑인 미나레트의 디자인에 개해 묻자 그는 황급히 자신이 말고 있었던 종이를 보여주며 이렇게 미나레트를 설계하라고 답했다.



이집트의 화폐에 나오는 모스크의 첨탑에 오르며 카이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다음은 카이로에서 가장 유명한 살라딘의 성채로 이동하자.



중세 십자군을 격파한 영웅 살라딘이 12세기에 건설한 성채 안으로 들어가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카이로 시내가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술탄 살라딘은 십자군 전쟁을 승리하며 당시 예루살렘을 되찾아 무슬림의 명예를 회복했던 왕이다. 그가 착공한 이 시타델은 약 700년 간 최고 권력자가 살았던 이집트 권력의 중심지였다. 피라미드가 고대 파라오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라면 살라딘의 시타델은 이슬람 시대 권력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살라딘의 성채 안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는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2개의 높은 첨탑과 거대한 돔으로 장식한 웅장한 외형을 가졌다. 사원 안으로 입장하면 많은 등과 샹들리에가 달린 화려한 실내가 여행자를 압도한다.



특히 형형색색의 돔과 돔을 둘러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설교단이 여행자의 마음을 경건하면서 황홀하게 한다.


성채 안에 모스크를 건설한 무하마드 알리는 이집트 근대화의 아버지로 근대식 국영공장을 세웠으며 전국에 면화 재배를 명령해 이집트에 막대한 국부를 창출한 인물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집트인들에게 사랑받는 지도자로 그의 무덤 역시 화려한 모스크 안에 있다.



모스크의 안뜰에 보이는 푸른색의 대형 시계탑은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를 선물하고 그에 대한 답례품으로 받은 것이다. 당시 이집트가 선물한 오벨리스크는 현재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다.


다음은 카이로 최대의 전통시장인 칼릴리 시장으로 이동하자.



카이로에서 가장 큰 시장이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칼릴리 시장은 1382년 당시 오스만 터키 시절의 총독이었던 에밀 자칼 엘 칼릴리에 의해 세워졌다. 예전 동서무역의 중심지였던 엘 칼릴리 시장은 동양에서 건너온 대상들과 그들과 거래하려는 이집트의 상인 및 수공업자들로 늘 북적거렸다. 현재는 1,500여 곳이 넘는 상점에서 주로 청동 제품과 향수 그리고 골동품 및 금 은 제품 등을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여행자들이 지나가면 <무조건 1달러>라고 외치는 상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제부터 카이로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점령되기 전의 기독교 시대의 유물을 감상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나라가 이집트이다. 이집트라는 나라의 공식 명칭도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 <애굽>에서 나왔다.


먼저 올드 카이로로 이동하여 이집트가 기독교 국가 당시 최고의 교회였던 성 세르기우스 교회를 방문하자.  



성 세르기우스 교회는 세르기우스와 바쿠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로 이들은 시리아 출신으로 로마군 수비 대장으로 있으면서 제우스 신전에 숭배하는 것을 거절하여 처형당한 순교자들이다. 성 세르기우 교회는 9세기부터 11세기까지 카이로 주 교회로 많은 총대주교들과 주교들이 이곳에서 선출되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지하 경당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지하 경당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 온 성가족이 머물렀던 동굴로 당시의 바닥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경당 입구에서 성 가족이 물을 길어다 마셨던 우물을 볼 수 있다.


로마제국의 명령에 의해 유대의 왕이었던 해롯은 지금  태어나는 아기가 세상의 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유대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을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린다. 이때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건너온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가 머물렀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3년 후 헤롯왕이 사망하자 성가족은 유대로 돌아갔다.


올드 카이로에서 이집트의 기독교인 콥트교의 과거를 만났다면 이제부터는 콥트교의 현재를 만나기 위해 콥트교인들의 밀집 거주 지역이자 일명 쓰레기 마을로 불리는 모카탐으로 이동하자.



모카탐 마을의 성 시몬 동굴 교회는 중동 최대의 기독교 교회로 7세기경 기독교 신자인 시몬이 이곳에서 기적을 행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주민들은 거대한 사암 절벽을 깎은 동굴에 기도할 곳을 만들고 절벽에는 성경의 장면들을 새겨나갔다. 핍박받는 콥트교도들과 쓰레기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교회가 입소문을 타자 정부는 관광상품으로써의 가능성에 높은 가치를 두어서 세계은행 등의 지원을 받아 1991년에 400명 수용 규모의 노천 예배당이 만들어졌다.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2만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노천 예배당의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성화가 있고 그 앞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실도 보인다.


노천 예배당 입구로 나오면 교회 입구에 시몬과 모카탐의 지명과 관련된 성화가 보인다.



이슬람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절정이었던 979년에 이슬람의 수장인 칼리프는 기독교를 말살시키기 위해 당시 콥틱 교회의 수장인 아브라함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에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산이 옮겨질 것이란 말씀이 있다. 너희들은 이 말씀에 따라 믿음을 가지고 일주일 안에 저 건너편에 있는 바위산을 옮겨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겠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으로 돌아와 도움을 청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사흘 후 아브라함은 기도 중에 지금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음성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큰 물병을 지고 다니며 노인 그리고 과부들에게 물을 주고 있는 시몬이라는 구두수선공을 만난다. 아브라함은 시몬에게 도움을 청하였지만 시몬은 자신은 평범한 기독교인일 뿐이라며 몇 번이고 그의 청을 거절하였지만 아브라함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시몬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칼리프는 군인들과 함께 아브라함에게로 왔다. 당시 아브라함은 시몬을 비롯한 모든 기독교인들과 함께 산을 움직여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바위산이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으로 움직이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에 놀란 칼리프는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산이 뚜벅뚜벅 걷는 모습의 의성어인 까땀 이란 말이 지금의 모카탐의 어원이 되었다.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간 이집트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노천 예배당 옆으로 가면 시몬 동굴 교회가 보인다.



이집트에서는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허용하면서도 기독교로의 개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집트의 콥트 교인들은 130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아이의 이마나 손목에 십자가 문신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차별과 박해 속에서 그들의 믿음을 지켜왔다.



시몬 동굴 교회의 벽은 시몬이 베드로와 함께 동이 틀 때까지 산을 움직여 달라는 기도를 하는 모습과 물을 길어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 등이 담긴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벽화에는 구두 수선공이었던 시몬에게 한 여인이 구두 수선을 위해 찾아왔는데 시몬이 여인의 허벅지를 보고 욕정을 느끼자 그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한 눈을 멀게 하였다는 장면이 담겨 있다. 벽화 위에는 다음의 내용이 적혀 있다.


만약 너의 오른쪽 눈이 죄를 짓게 한다면 
그것을 찔러 멀리 던지라.
죄를 짓는 것보다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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