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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Mar 12. 2024

빛과 동화의 도시 코펜하겐

햄릿과 안데르센

왕자님과 같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인간의 영혼을 가질 수 없게 된 인어공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인어공주는 흐려진 눈으로 왕자님을 바라본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선택은 달라지지 않음을 안 인어공주는 슬픔에 목이 멘다. 가슴이 타 내려갈 것 같은 아픔을 안고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인어공주는 몸이 녹아내려 물거품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상인의 항구>라는 뜻을 지닌 코펜하겐의 중앙역을 나서면 바로 맞은편에 티볼리 공원이 있다. 1843년에 지은 티볼리 공원은 전 세계 놀이공원의 원조로 170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할머니와 자식 그리고 손자 등 3대에 걸쳐 덴마크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놀이 공원에 흥미가 있는 여행자라면 이곳으로 입장하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회전목마를 탈 수 있다. 또한 97년 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롤로코스트를 타며 스릴을 즐길 수 있다. 티볼리 공원의 설립자인 기오 카르스텐센은 생전에 안데르센의 오래된 친구였다고 한다.         



티볼리 공원을 지나서 조금 걸어가면 탁 트인 광장이 나오고 광장 중앙에는 코펜하겐 시청사가 우뚝 서 있다. 1903년에 세워진 후로 지금까지 코펜하겐의 랜드마크로 활약하고 있는 시청사로 들어서면 100m가 넘는 시계탑이 여행자를 막아선다. 205개의 시계탑 계단을 올라 정상에 서면 바다를 배경으로 신성한 빛을 내는 코펜하겐의 시내를 한눈에 담을 있다.     


시청사를 나와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펼치며 세련미를 뽐내는 오페라 하우스를 만난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바다 쪽으로 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인 블랙 다이아몬드가 나온다.



1996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99년 완공된 왕립 도서관은 검은색을 띠고 있으며 운하로 쏠려있는 마름모꼴 건물모양으로 <블랙다이아몬드>로 불린다. 7층짜리 신관 1층에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400석의 연주회장 등이 들어서 있으며 매 층마다 물결모양의 발코니가 뻥 뚫린 유리 천장을 향하여 용솟음치고 있다. 신관 2층으로 가서 구관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면 <해리포터> 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적인 양식의 열람실을 만난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이 통로를 통해 시간여행을 해보는 것이 도서관 관람의 하이라이트이다.      


도서관을 나와 운하를 지나면 크리스티안보리 궁전이 나온다. 1167년에 지어진 궁전은 대화재로 손실되었지만 1745년 크리스티안 6세에 의해 증축되면서 크리스티안보리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궁전으로 입장하면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여왕의 알현실이 나온다. 이곳으로 입장하면 여왕의 60주년 생일을 맞아 선물 받은, 역대 덴마크의 역사와 왕들의 모습이 담긴 대형 태피스트리트가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궁전을 나와 유럽에서 가장 긴 쇼핑 거리인 스트뢰에 거리를 걷다 보면 덴마크를 대표하는 레고 장난감과 로열 코펜하겐 도자기 그리고 판도라 귀금속 상점을 차례로 만난다. 흥미로운 눈요기 거리를 즐기면서 쇼핑을 마쳤다면 덴마크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뉘하운으로 갈 시간이다.        



<새로운 항구>라는 뜻을 지닌 뉘하운은 서민적 분위기의 운하이자 항구이다. 1637년에 이곳을 처음 항구로 만들었을 때, 어부들과 부두 노동자를 위한 선술집과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바다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만들어주는 요트와 선박들을 배경으로 색색의 집들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여행자는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민적이지만 동화 속 마을 같은 뉘하운에 살았던 안데르센은 집세를 내지 못해 한 때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뉘하운을 나와 현재 덴마크 왕실이 살고 있는 아말리엔 보르 궁전을 지나면 게피온 분수가 나온다. 황소 네 마리를 채찍질하고 있는 북유럽의 여신 게피온이 중심에 있는 분수를 지나면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인어 공주 청동상이 나타난다.



깊은 바닷속 왕에겐 6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중 막내는 육지에 대한 환상과 갈망이 가장 많았다. 15번째 생일날 마침내 바다로 올라간 공주는 배 위에서 16살을 맞이한 잘생긴 왕자를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갑자기 폭풍이 치면서 배가 난파되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왕자를 발견한 공주는 그를 구해주었다. 왕자는 무사했지만 왕자는 인어공주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용궁으로 돌아온 공주는 왕자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인간의 영혼을 준다는 마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녀를 찾아간다. 마녀는 공주에게 인간의 다리를 주는 조건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가기로 한다. 또한 왕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면 그녀는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리를 얻은 공주는 육지로 가서 왕자를 만난다. 공주의 미모에 반한 왕자는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가 함께 생활하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왕자의 마음속엔 그의 목숨을 구해준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해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 공주가 애태우고 있을 때 왕자는 타국의 공주를 만난다. 왕자는 타국의 공주를 예전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사람으로 착각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결혼식이 있던 날 마녀의 칼로 왕자를 찔러 죽이면 다시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마녀의 이야기를 듣지만 인어공주는 끝내 왕자를 찌르지 못하고 칼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이 된다.


1913년 양조업자 야콥슨이 인어공주 공연을 보고 감동받아서 조각가 에릭슨에게 부탁하여 완성된 인어공주 동상은 한 때 인어공주의 목과 팔이 잘리는 수난을 받기도 했다.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한 인어공주의 실제 모델은 안데르센이 존경했던 요하스 콜린의 막내딸 루이제였다. 안데르센은 루이제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 절망한 안데르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바위 위에 홀로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왕자를 기다리는 인어 공주 동상의 모습에서 안데르센의 슬픈 사랑이 묻어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루지애나 미술관과 크론보그 성을 방문한다.



루지애나 미술관은 세계적인 여행작가 패트리샤 슐츠의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0곳》(1000 Places to See Before You Die)에서도 소개한 곳이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한 1000곳 중 상위 10% 내에 드는 이곳의 매력은 미술관 정원에 있다. 미술관 정원으로 들어서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인간이 만든 조각품이 초록빛 정원에 드리워져 있다. 정원에 앉아 자연과 예술이 빚어내는 하모니를 즐기다 보면 행복한 감정이 저절로 생겨난다.



루지애나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크론보르 성은 1574년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2세 국왕에 의해 착공되어 1585년에 완성된 성으로 중간에 화재 및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24년에 재건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화려하면서 신비로운 크론보르 성으로 입장하면 대규모의 연회장과 금박으로 장식된 예배당 그리고 왕실 가족들이 거주하던 화려한 방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크론보그 성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햄릿>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아버지의 망령을 본 망루에 서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라고 고민했던 햄릿을 떠올리면 내 삶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외쳤던 르네상스의 시대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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