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헝가리인은 영원한 헝가리인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부다 왕궁에 위치한 헝가리 국립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이 오픈하는 시간인 오전 10시에 입장하자 미술관은 한적했다. 중세시대회화부터 현대회회까지 시대별 미술작품을 담고 있는 헝가리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헝가리 근대미술 전시관이다.
헝가리에서는 헝가리인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
한 번 헝가리 사람이 되면 영원한 헝가리 사람이다.
19세기 초 헝가리는 15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곧이어 합스부르크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가담한 헝가리는 패전국이 되어 영토의 절반을 잃으며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다. 1989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헝가리는 독립한다.
오랜 세월 동안 수 없이 많은 외세의 억압 속에 살아온 헝가리 민족은 어느 민족보다 자유와 평화에 대한 욕구가 간절했다. 19세기말 헝가리 인들의 내면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가 미할리 문카치이다.
그의 작품 <나무를 하는 소녀>에서 고된 노동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소녀의 얼굴에서 엄숙하지만 소중한 안식과 평화가 엿보인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하품하는 소년>에서 외세의 간섭이 없는 조국의 소중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소년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침대에서 일어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이 그의 얼굴과 침대보를 비추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흐드러진 옷과 맨발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인 실내화가 삶의 달콤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품을 하는 소년의 얼굴에는 어떠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일 없이 하루의 일상을 사는 모습은 평화롭고 정겹다. 소중한 일상을 너무나 오랫동안 가져 본 적이 없는 헝가리 사람들에게 소년의 꾸밈없는 얼굴과 모습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달한다.
1870년 파리 살롱전에서 격찬을 받으며 그는 순식간에 인기 화가가 된 그는 19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큰 족적을 남겼다.
문카치와 더불어 낭만적 사실주의 화가로서 헝가리의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을 그린 화가가 팔 진예지 메르제이다.
그의 대표작인 <양귀비 꽃이 핀 들판>은 같은 시기에 프랑스 퐁텐블로의 사실주의 화풍에 견줄 만큼 서정적인 농촌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열기구를 탄 사람>은 오랜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날고자 하는 헝가리 사람들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남자는 열기구를 타고 두둥실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그는 지상에 두고 온 소중한 인연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과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들은 희망을 상징한다.
메르제의 최고 작품은 <5월의 피크닉>이다.
이 작품은 5월 어느 날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이 소풍을 가서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나 옷을 세밀하게 그리지는 않고 있지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언덕에 비치는 한 아름의 따스한 빛이 보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계속해서 고향의 자연 풍경과 자신의 내면적 환상 세계가 뒤섞여 오묘한 분위기의 사실주의 화풍을 보여주는 20세기 초의 헝가리 회가인 카롤리 페렌치의 <오르페우스>를 감상하자.
오르페우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인 아폴론으로부터 하프를 배운 그가 하프를 연주하면 야수들과 초목마저 매료되어 황홀해하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었을 때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하여 저승길까지 쫓아가서 저승의 왕 하데스 앞에서 리라를 연주하여 죽은 아내를 되살렸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몸매와 섬세한 손 끝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연주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우리들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설교하는 예수>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그들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이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신을 만날 것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보여주는 작품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눈에 띄는 것은 작품 속 배경이나 사람들의 옷이 성경 속 시대가 아니라 헝가리의 자연과 헝가리의 전통 복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를 초월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작가는 시적인 정서로 우리에게 위로와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리플 노나이의 <새장을 들고 있는 여인>을 감상하자.
새장을 들고 있는 영묘한 숙녀는 장식적인 선이 들어간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녀 뒤로 곡선의 팔걸이가 있는 소파의 어렴풋한 윤곽과 나무 의자의 옅은 윤곽이 유일하게 실내를 표시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과 대조적으로 내부에서 생긴 빛이 평면적인 여인의 얼굴과 새장을 받치고 있는 손에 떨어지고 있다.
작품에서 리플 노나아는 극도로 색채 사용을 절제하며 어둡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한 줄기 빛으로 강조된 신비로운 여인의 모습에서 그녀의 조용하고 소박한 기쁨을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의 일상과 빛이 담긴 미술작품들을 지나 미술관이 자랑하는 테라스에 오르자 부다페스트의 황홀한 전경이 눈앞으로 펼쳐진다.
늘 그렇듯이 평화로운 일상은 여행자의 마음과 눈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