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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Jul 02. 2020

형사님을 만나 다행입니다.

3장의 손 편지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경찰이 되고 싶냐 물으면 나는 항상

“저를 경찰관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수많은 경찰관 중에 저를 만나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찰관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을 해.


내가 이런 경찰관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사건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2016년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어.


어려 보이는 여성 피해자 한 명이 쭈뼛쭈뼛 눈치를 보면서 사무실에 걸어 들어왔는데

당시 막내였던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무슨 일 때문에 오셨나요? 제 앞에 의자에 앉으세요.”라고 말을 하고 상담을 시작했어.


내 앞에 앉아 있는 왜소한 체격의 피해자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말하기 힘든 일인 것 같다고 느껴

커피를 한 잔 타다 주면서 언니라고 생각하고 말해달라고 얘기하고 기다렸어.


5분 정도 지났을까

망설이던 피해자는 마음을 열고 털어놓기 시작했어.


“형사님 텀블러에 제 얼굴 사진과 다른 사람의 알몸 사진을 합성한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저의 이름과 학교까지도 쓰여 있어요. 제가 아닌데 합성인데 다른 사람들은 저라고 믿을 텐데 어떡하죠. 도와주세요. 텀블러는 미국에서 운영해서 못 잡는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꼭 잡아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아니라고 밝힐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고 말한 피해자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어.


솔직히 창피하지만 나는 그때 당시 사이버수사팀 형사로 근무하면서 텀블러가 뭔지 알지 못했어.

물이나 음료를 담는 텀블러 밖에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텀블러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SNS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 당시에는 텀블러 상대로 수사협조를 구할 수 없어 피해자 말대로 수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어.

하지만 내 앞에서 울면서 힘들게 얘기하고 있는 피해자는

어쩌면 지금 나만 의지하고 나만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피해자에게 “죄송합니다. 이건 힘들어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어.

나는 어떻게 수사 진행할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피해자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라는 말로 피해자를 위로했어.


그리고 피해 사진 삭제와 재 유포 방지를 위해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바로 사건 접수 후 피해자 조사를 진행했고 피해자를 돌려보냈어.

피해자가 돌아간 후 선배님들은 “O형사~ 그 사건 어떻게 수사하려고~ 힘들 텐데...”라고

걱정 섞인 말씀을 해주셨고 사실 나도 너무 막막했어.


피해자에게 내가 도와주겠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내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 아프고 속상해서 피의자를 꼭 잡아주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사를 진행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

그 날부터 나는 텀블러 측에 메일을 보내서 계속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시도를 했어.

피의자를 검거하기까지 내 머릿속에서는 정말 단 한순간도 이 사건이 떠나지 않았고

항상 어떻게 하면 피의자를 잡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면서 열흘 정도 지난 것 같아.

그러던 나에게 새로운 수사기법이 생각나서 바로 수사서류를 작성했고

자료 회신이 올 때까지 매 순간마다 제발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


그리고 내 간절함이 통했던 건지 피의자를 특정해서 검거할 수 있었어.

그때 내가 피의자를 잡았다는 사실보다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의자 검거했습니다. 이제 마음 놓으시고 오늘 밤은 편히 주무세요. 내일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할 수 있었고, 피해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너무 행복했어.


그렇게 이 사건이 마무리되고 3일 정도 지나서 피해자가 다시 나를 찾아와

나에게 분홍색 편지 봉투를 건네면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사님. 형사님을 만나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어.


피해자가 돌아간 뒤 피해자로부터 받은 편지 봉투를 열어 보았는데 3장을 꽉 채운 손 편지가 들어 있었고,

그때 받은 3장의 손 편지는 아직도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초심을 잃거나 힘들 때마다 꺼내어 읽어보곤 해.

피해자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연락을 해오고 있는데

사건이 마무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피해로 인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을 호소하면서

힘들다는 연락이 많았는데 1년 반 정도 지나고 나서는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 등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해주고 있어.


피해자가 지금까지 나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 준 덕분에

내가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근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지금은 박사방, N번방 사건으로 사이버 성폭력사건(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높아졌지만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사건이었고 사이버 성폭력이라는 단어조차 통용되지 않고 있을 때여서

중한 사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사건이었거든.


이 사건이 내가 형사로서 처음 경험한 사이버 성폭력 사건이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지금까지도 사이버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로 근무하고 있어.


앞으로도 나는 그때 만난 피해자가 나에게 말해준 것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의자들까지도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경찰관이 되고 싶어. 


그리고 혹시 사이버 성폭력 피해를 당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의 잘못은 조금도 없습니다.

숨지 마세요. 피하지 마세요.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함께 이겨내요."




“이 세상에는 형사님처럼 타인의 꿈을 지켜주려는 사람도 많지만

그 꿈을 짓밟으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형사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또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형사님 수많은 경찰관님들 중에서 좋은 분을 만나 참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 또한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의 시간 동안 형사님이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주시는 형사님을 보며

하루하루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문득 저 말고도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사람들의 어두운 사연과

여러 이해관계를 들어감에 힘들어하실 형사님을 떠올렸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는 이 일 하나도 버거운데 형사님께서는 더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계실 테니까요.

형사님 두서없이 말하긴 했지만 형사님의 존재가 정말 제게 큰 힘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피해자로부터 받은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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