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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Jul 02. 2020

안전빵 인생

조카 하엘이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하엘아 너 세 번째 문제 틀렸어. 땡이야~ 이모가 알려줄까?"

"싫어요. 이모! 실패는 끝난 게 아니에요. 다시 하라는 거예요. 내가 다시 할 거예요."


하엘이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안전빵 인생을 살아온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경찰이 되기 위해 태권도를 시작한 나는 운동신경이 좋아

관장님의 권유로 중학교 때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었다.


그리고 2002년 봄, 충북 진천에서 나의 첫 번째 태권도 시합이 있었다.

 

"민재야 하던 대로만 해. 너의 점프 뒤차기면 우승도 문제없어. 잘해보자."


관장님의 말뿐만 아니라 눈빛까지도 나의 우승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도 자신 있었다.


'삐이이이익'


경기를 알리는 부저음과 함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고

긴장한 탓인지 갑자기 내 다리가 매트 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1점, 2점, 3점, 4점... 상대 선수의 점수는 계속 올라갔고

나는 많은 선수들과 관장님, 감독님들이 보는 앞에서 계속 맞기만 했다.


"민재야!!! 뭐 하는 거야. 기다렸다 받아. 받으란 말이야!"


코트 밖에 계시던 관장님은 의자에서 일어나 계속 소리를 지르셨다.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았다.

그렇게 상대 점수는 어느새 11점이 되었고 11대 0이라는 엄청난 점수로 나는 RSC 패를 당했다.


RSC 패는 심판이 경기 시간이 남았어도 더 이상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경기를 중단하는 것으로

선수에게는 굉장히 모욕적인 패배가 아닐 수 없다.


발차기 한 번 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샌드백처럼 맞기만 하다가

패배를 경험한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첫 실패를 경험하였다.




3개월 후, 청주에서 충북 소년체전이 개최되었고 나는 두 번째 시합에 출전하게 되었다.


"민재야 이번에도 라이트급으로 나가자."

"관장님 저 이번에 감량해서 페더급으로 나가면 안 되겠습니까?

키도 그렇고 체급 낮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체급을 낮추겠다는 나의 제안에 관장님은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흔쾌히 허락하셨다.


나는 첫 시합에서 나에게 RSC 패배를 안겨준 선수와 다시 겨루기 싫어서

또다시 패배할까 두려워 그 선수가 없는 체급으로 옮기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년체전에 페더급으로 출전해서 첫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나는 첫 실패를 경험했을 때 느낀 모욕감과 좌절감,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나에게 실망했을 관장님을 생각하니

도망가고 싶었고 다시는 도복을 입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실패하지 않는 안전빵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태권도 시합을 앞두고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선수가 출전하는 체급은 어떻게든 피해서 출전을 했고

적은 인원이 출전하는 체급으로 출전해서 우승할 수 있는 확률을 높였다.

그 덕분에 나는 다양한 체급에서 우승을 한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선수생활을 그만두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었어서 내 성적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여야 했다.


안전빵 인생을 살기로 한 나는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하향 지원해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진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대학교를 수시전형으로 들어갔는데 내 성적으로 당연히 합격할 수 있는 곳만 골라

5곳의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하였고 안전빵으로 지원한 덕분에

나는 5곳의 대학교로부터 모두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태권도 동아리에 들어가서 다시 도복을 입게 되었다.


2008년 11월 7일부터 9일까지 강원도 삼척에서 전국 대학교 태권도 대회가 개최되기로 확정되었고

나는 중학교 때 이후로 다시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결과는 우승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사람이 바로 내가 되었다.


"민재야 진짜 대단하다. 정말 잘했어."

"민재야 내년에도 우승하자."

"민재야 네가 우리 학교 전설이다."


선배들 동기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2학년이 되어 첫 후배들을 받았고

후배들 사이에서도 '금메달을 딴 선배'라는 타이틀이 계속 돌았다.


2009년에도 어김없이 11월 6일부터 8일까지 부산에서 전국 대학교 태권도 대회가 개최되었고

나는 많은 선후배 동기들의 응원을 받으며 2008년에 출전한 체급과 동일하게 출전 신청을 하였다.


대회 1주일 전 대진표가 나왔다.


"하..."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작년과 별 다를 바 없을 거라 생각하고 대진표를 열어 보았지만

나의 첫 상대는 작년에 다른 체급에서 우승했던 선수였던 것이다.


나는 그 선수와 겨루어 본 적 조차 없어 누가 이길지 몰랐지만

다른 체급에서 우승했던 선수라는 사실 하나로 피하고 싶었다.


만약 내가 지게 된다면 작년에 '금메달을 딴 민재'는 잊히고

'예선 탈락한 민재'만 사람들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너무 끔찍했다.


결국 나는 대회 3일 전 부장님께 말씀드렸다.

"부장님 저 발목이 많이 아파서 시합 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전문 선수가 아니었고 동아리 선수였기 때문에

아파서 시합 뛰기 힘들겠다는 나에게 "안돼. 시합 뛰어야 돼."라며 강요하는 선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부산 시합에 출전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금메달 딴 민재'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다.




패배 없는 인생, 불합격 없는 인생, 안전빵 인생... 그게 바로 나의 인생이었다.


내가 그토록 실패하기 싫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 아닌, 실패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수 없이 도망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실패했을 때 나를 비난하고 조롱하지는 않을까,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피해 열심히 도망 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가장 큰 착각이었다.

내가 실패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나를 응원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성공을 쫓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하기 싫어서 성공을 도망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금메달 딴 민재'라는 타이틀과 함께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어느덧 6년 차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지만 이제는 달라지려고 한다.


조카 하엘이의 말처럼 실패는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하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열 번의 실패가 두려워 열 번을 도망치는 내가 아니라

열 번의 실패를 할지라도 목표를 위해 열 번 도전하는 나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본다.

열 번 도전해서 열 번 실패한다고 해도 열 번의 경험이 쌓여 나는 더욱 성장해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이제 안전빵 인생은 그만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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