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시간과의 작별
엄마, 아내로 살면서 잃어가는 나를 찾고 싶어서 떠 나온 뉴욕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온전한
나를 만났다. 가슴속 실타래처럼 뭉쳐 있던 아프고, 지치고, 좌절했던 감정들이 풀어지고 있었다.
맨해튼 거리가 익숙해지고, 일상이 가능해지면 혼자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삶에 선택 권 하나가 더 부여된 거 같았다.
할 수 없어서 선택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나에게 뉴욕이라는 곳은 지나온 시간과 다른 출발을 시작할 수 있는 선물 주었다.
90일 예정하고 온 뉴욕을 40일로 마무리하고 한국 행 티켓을 예매했다.
내 친구와 셰어 하우스 친구들과 한식을 차려 작별 파티를 했다. 지내는 동안 도와준 그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잡채, 불고기, 김치볶음밥, 계란말이 평범한 한식 메뉴로 차렸다. 차려진 식탁에 반응은 다양했다.
친구는 한국에 맛을 추억할 수 있어서 눈물 난다고 하고, 에레나는 진짜 한국 사람이 차려주는 원조 한식을 먹는다고 좋아했다. 한식에 여러 번 도전했는데 별로였다는데 원조 한국 아줌마에 식탁에서 한식 매력을 찾았다고 좋아했다. 그녀는 김치볶음밥 같은 매운맛도 주저하지 않고 먹었다.
한국사람들은 음식을 맛있다, 없다는 두 가지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뉴요커 들은 새로움을 수용하는 말을 들었다
“I’ll try.”
이런 생각들이 다양한 민족이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거 같았다.
시도한다는 말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 수용력을 뉴욕에서 배웠다.
뉴욕에 일요일 오후 JFK 공항에 친구와 도착했다. 비행기표를 발권하고, 짐을 부쳤다.
그리고 그녀와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녀도 한국이 그리운지 떠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뉴욕에서 유학생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려면 한국을 오는 시간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기에 그녀에 그리움이 무언지 알 거 같았다. 아이를 떼어 놓고 가는 엄마처럼 눈물이 났다.
그녀는 주책맞다 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녀도 울었다. 그녀에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입국 심사를 경험한 나는 막힘 없이 여유롭게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뉴욕에 어두움이
내려앉아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뉴욕 하늘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국 말이 들려왔다. 한국 승무원들과 기장들이 게이트로 줄지어 들어갔다.
게이트가 열리고 한국 승무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들이 내 친척인 듯 반가웠다.
일요일 저녁 비행기라서 한산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완전히 어두워진 뉴욕이 보였다. 개선장군에 전장에서 이기고 돌아가는 뿌듯함이 있었다. 두려움과 작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비행기는 활주로 달리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맨해튼 야경이 보였다. 불 빛이 반짝이는 보석 같았다. 뭉클함과 뿌듯함 여러 감정이 섞여 날아가는 풍선 이 된 거 같았다.
안녕, 뉴욕!
이별과 어울리는 음식, 이별할 때 아련함을 담을 수 있는 요리를 생각해 보았다. 이별의 크기
상관없이 우울하다. 배 부지 않으면서 가라앉은 기분을 올리는 매운맛을 낸 레시피를 추천한다.
이별 뒤에 찾아오는 새로움을 기대하길 바란다.
해감을 시킨 조개를 버터, 저민 마늘을 넣고 볶다가 화이트 와인을 넣고 페페로치노를 넣고
매운맛을 입힌다. 조개에서 나오는 육수에 매운맛이 우러나오면 페레로 치노는 건져 낸다.
삶아 놓은 파스타 면은 넣고 졸인다. 후추, 소금을 갈아서 토핑하고 오일을 뿌려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