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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ul 13. 2021

돋보기와 엄마

감정 식탁/ 낯섦


얼마 전부터 신문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글씨를 보려면 가느다랗게 실눈을

떠야 글씨가 보였다.

흐릿해진 눈에 인공 눈물도 넣어보고, 블루 라이터 차단하는 안경도 써 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시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눈이 말썽을 부릴 줄이야…… 당황되었다.

그래서 장 보러 가는 길에 단골 안경점에서 간단한 시력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노안이었다.

근시에 문제가 없어서 노안을 좀 늦게 찾아온 것 같다면서 돋보기를 써야 한다고 했다.  

노안이라는 결과에 놀라는 내 모습에 안경원 사장님은 한 마디 덫 붙여 말했다.

다들 노안이라고 하면 나와 같은 반응이라고...

마흔 살이 넘으면 노안의 시작되는 나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맘이 편할 거라고 했다.

오히려 평균 나이보다 늦게 온 거라 위로하셨다.  

내 눈에 맞는 돋보기를 써보니 작은 글자도 선명하게 보였다.

흐릿한 글자가 돋보기 덕분에 선명하게 보여서 좋기도 했지만 이제 이것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낯설고 씁쓸했다. 가방 한편에 돋보기 자리가 생겨 났다.


아침 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 속에 봄과 가을이 같이 느껴졌다.

오월의 바람 속에 스산하고 서늘한 공기가 몸에 닿았다. 그래서 스웨터를 걸쳐 입고., 목이 가라앉아 따듯한 물에 소금 한 꼬집을 넣어 입에 머금고 있다가 넘겼다. 한 컵을 다 비우고 나니 목이 가벼워지고 몸에 따뜻해졌다. 아침부터 따듯한 소금물을 마시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불과 몇 해 전까지 해도 아침에도 찬 물을 마셨는데 이제는 아침부터 찬물을 마시면 하루 종일 냉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돋보기, 흰머리, 따듯한 소금물을 찾는 나를 보면서 내 청춘이 이별의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나의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있고, 나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고, 나의 딸은 결혼해도 될 만한 아가씨가 되어 있다. 우리 집 여자들은 청춘의 싱그러움이 사라져 가고 있다.


돋보기를 쓰는 딸의 엄마는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하던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지키셨던 엄마는 약속도 잘 잊어버리신다. 틀니를 걸이었던 치아도 빠지셔서 틀니를 걸 수 없는 엄마의 앞니는 휑하게 비어 있다. 비어진 앞니 자리에 주름 진 입술이 잇몸과 닿아 말할 때마다 바람 세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삶이 분주해서 엄마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내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 있다.

이 시간의 간극이 당황된다.

나는 엄마에게 정정함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부탁해 보지만 모래성처럼 자꾸만 허물어진다. 이런 엄마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내 고민 속에 풍선이 떠오르듯이 기억이 떠 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빠의 사업 실패로 

엄마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가셨다.

일거리가 들어오면  하시는  같았다.

학습지 외판, 보험 설계사, 가사 도우미, 그릇 외판,

그때 엄마는   없이 일하셨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엄마가 전사가 되어 갔다. 하지만 엄마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라서 나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던 거 같았다. 그래서 엄마의 일터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엄마랑 출근하는 내 가방에는 동화책 한 권, 색연필, 종이 인형, 물통이 담겼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색칠공부를 하면서 엄마와 함께 있었다.

함께 일하는 아줌마들은 가끔씩 내 자리에 와서 간식거리를 두고 가시면서 내 등을 쓸어내리셨다.

나는 엄마가 일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방해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진진하게 일하는 엄마를 보면서 힘내라고 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퇴근할 때 엄마의 손을 잡으면 안심이 되었다. 낯선 곳에 혼자 있었던 긴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안도감을 엄마에게 돌려주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내가 엄마 손을 잡아야 할 시간이 왔다.

할머니가 된 엄마의 기억을 붙잡을 수가 있게 내 한 손을 비어 두어야 할 것 같다.







추천 레시피


손을 잡았을 때 흐르는 감정은 심장을 편안하게 한다.  따듯한 욕조 물에 몸이 녹아내리듯이 마음이 풀어진다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요리를 추천한다.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여야 할 때 낯설고 당황될 때 손을 잡아 주세요. "




함박스테이크와 스크램블

Steak haché Œufs brouillés


부드러운 소고기를  잘게 칼로 썰고 다진 양파를 갈색 빛이 나도록  볶아서 식힌다.  큰 볼에 고기와 다진

마늘, 볶은 양파, 계란, 빵가루를 넣고 잘 썩는다. 그리고 야구공만 한 크기로 고기 볼을 만들어 손바닥에

올려 공을 굴리듯 치댄다. 고기가 아기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처럼 찰진 소리가 나면 손바닥으로 눌러

평평하게 만든다. 달구어진 팬에 고기 양면 노릇하게 굽고 예열된 오븐에서 10분 정도 익혀 준다.

준비해 둔  접시에 함박스테이크를 올리고 따듯한 소스를 붓고 스테이크 위에 스크램블을 올린다.

스크램블은 육즙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입안에서 스테이크 풍미를 더해 준다.  

손을 잡은 것처럼 두 가지 요리를 한 접시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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