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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Apr 03. 2023

교토에서 본 독일 미술관, 서울에서 다시보다

서울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혹은 교토의 <루트비히 미술관전>

루트비히 컬렉션 in 서울&교토



-실은 루트비히 컬렉션은 지난 가을 즈음에 교토에서 한번 봤던 전시다.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은 아마도 교세라 미술관이겠지만 그 맞은편에 더 작고 덜 유명한 국립근대미술관이 있고 나는 그날 굳이 거길 갈 계획은 없었는데, 지나가다 옆에 있던 도서관 건물이랑 홍보용으로 커다랗게 걸린 그림 하나가 인상깊어서 들어섰었다. 교토 일정 마지막 날이니까라는 생각도 있었으리.

일본어 가타카나와 함께 <루드비히 미술관전>이라 써있다.


https://goo.gl/maps/XvWWKMFvrj66wTodA

https://goo.gl/maps/1sz8BSCJhiy95nn17


-옆에 훨씬 유명한 교세라 미술관 덕분일까, 주말임에도 사람이 그닥 많진 않았고 꽤나 쾌적하게 봤었다. 교세라는 밖에도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던데. 한적한 분위기에서 사진도 전혀 찍지 않고 봤다. 애초에 거기서 사진이 허용되었는지도 잘 모르겠긴 하다. 주변에 누구도 폰카를 들지 않길래 나도 모르게 그러지 않았었을까 한다. 다보고 나니 이건 한국에도 조만간 오겠거니 싶었는데 진짜 머잖아 올 봄에 옴. 언제쯤 어디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선 내가 교토 전시서 뭘봤더라 떠올려봤는데 이상하게 몇달전 분명히 본 컬렉션인데도 기억이 잘 안나더라. 사진을 안 찍어서인가... 그래서 걍 함 더보러가지 뭐 해서 또 보러감.


-교토 전시의 제목은 <루트비히 미술관전>이었고 서울에서의 이번 전시는 <피카소와 20세기의 거장들>을 타이틀로 삼았는데 다른 마케팅 포인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개인적으로 재밌었다. 전시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것은 아무래도 전자겠으나 홍보는 한국이 낫지 않나. 미술하면 피카소 아니냐! 그냥 '루트비히 어쩌고~'라고만 하면 인상에 남는 사람들의 폭이 확 줄긴 할테니.


-들어서서 작품들의 면면을 보니까 그제서야 내가 교토서 봤었던 기억이 돌아오더라. 작품 리스트가 조금 더 줄어서 온건 맞는데 굵직한 것들로 잘 추려져서 온지라 그닥 공백이 많이 느껴지진 않았다. 장소의 협소함도 이유이리라. 그래도 피카소는 빠진거없이 그대로 다 온듯?

강남 한복판에 미술을 상설전시할만한 장소를 마련하기는 어려우리라. 빌딩 건물 지하에 위치한 마이아트뮤지엄은 분명히 접근성이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장점이 있겠으나 땅값과 여러 여건으로 인한 협소함이라는 결점을 극복하기 쉽진 않아보인다. 교토 국립근대미술관 갔을 땐 관람 중간에 쉴 공간도 널찍이 있어 좋았었다.

난 어떤 면에선 전시보다도 이 광경이 인상깊었다. 가을이고 단풍지고 날씨도 좋은데 저 공간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과 더불어 광활한 공간이 아늑했다.


-난 마이아트뮤지엄을 이번에 처음 방문했다. 여기 개관할 즈음에 열었던 알퐁스 무하 전시를 눈여겨 봤었긴 하다. 그때 가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몇년 전에 이미 예술의 전당에서 무하전을 봤었으므로. 개관 초기작으로 할 정도로 무하가 호불호가 거의 안 타긴 하지.


-도슨트가 있다. 한시간 남짓 진행되는데 재밌었다. 나는 미술 전시를 종종 가는 편인데 도슨트를 일일히 들으려 따라다닐 정도로 부지런한 인간이 못된다. 게으른 내가 거의 몇년만에 다들었을정도면 머...


다만 시간의 한정과 전달의 용이함 때문이겠으나 중간에 히틀러가 미대생이었던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가 미술계에서 좌절을 맛보고 입대하는 일이 없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난 거의 그리 생각하진 않는 편이다. 히틀러 한 명 없다고 독일의 궤적이 극적으로 바뀌었을 것인가. 여기서 길게 얘기할건 아니겠으나, 오늘날 히틀러가 무시무시한 악의 화신으로 그려지는건 그를 광기에 휩싸인 살육자로 그려낼수록 독일인들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죄책도 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1차대전이 끝나면서 배후중상설 등으로 독일인으로서 참전했던 이들도 많던 유대인들을 이유없이 비난하기 시작할때부터 분명히 독일사회는 맛이 가고 있었다. 내가 아는한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파쇼정치는 없다. 좀 더 추가하자면 연합국을 위시한 1차대전의 부실한 전후처리도 한 몫 했다.


-루트비히 미술관은 독일에 있다. 마케팅 차원에서 많이 다뤄진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독일의 현대추상미술작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리스트도 빠방하다. 작품 설명을 보기전부터도 이건 독일작이야...가 되뇌어지는 것도 많은데 대부분 색이 칙칙하다. 죄다 무채색 계열. 도대체 독일녀석들은 미술을 어케하고 있는 것인가! 대체. 관람후 카페에서 나는 게르만놈들!이라며 일행에게 열을 올려 그들의 미감에 대해 개드립을 치면서 성토하였다.

카페에서 탁자를 두드리면서 개드립을 치며 낄낄거리며 노는 즐거움이란-


-관람하면서 이전에 본 영화 한 편이 단박에 떠올랐다. <작가미상>. 3시간이 넘는 영화다. 역사나 미술 좋아하면 더욱 즐겨볼수있다. 여기 깔린 음악이 너무 인상깊어서 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서 막스 리히터를 빼지 못했다. 전시에 요셉 보이스의 작들이 몇가지 있는데 <작가미상>에도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그가 등장한다. 도슨트가 그의 작품을 다루며 소개했던, 전쟁 중 동부전선에서 공군으로 복무하다 추락당해 화상을 크게 입었을 때 타타르인에게서 구조받아 장기간 치료받으며 그곳에 머물렀던 경험이 영화에서도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 이번 루트비히 컬렉션으로 온 작품들 몇 개도 제작중인 모습으로 영화상에 등장한다. 물론 그 작가들도 나오고.

난 <작가미상>이 미적으로 멋진 영화라 생각한다. 물론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하고 산뜻하고 그런 미감은 아니다. 생각해보니 여기에다도 독일, 게르만놈들! 드립을 쳐도 되겠군.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대단히 매혹적이다. 저 포스터의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나에겐 미술이나 미술작가를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오래 마음에 남아온 영화다.


-흔히 회화 전시로만 알고 오겠지만, 의외로 좋은 조소 작들 많다 느끼게 될 것이다.



-루비히 컬렉션에는 나치와 2차대전을 거친 사람들의 어떤 층위에서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패전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도시에서 루트비히를 위시로 한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시민미술관이라 해도 된다. 미술관이 위치한 쾰른은 공습 후 대성당 등을 제외하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었다.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개발을 거치고 들어선 70년대가 문화적 유산과 예술사 기억의 복원이라는 흐름으로도 이어진건 아닐까. 76년 즈음에 만들어진 미술관으로 안다.

그리고 그 미술관 컬렉션의 많은 작품들은 나치 시절에는 '퇴폐미술'로 낙인찍히던 현대 추상미술에서 이어지는 흐름으로 분류될 작이다. 많은 작품은 2차대전 이후의 작품이라 시대적으로는 당연히 틀린말이겠으나, 메타포라는 차원에서는 나치 시대 국가권력의 마수와 전쟁의 참화로부터 개인소장하던 시민들이 지켜낸 작들처럼도 느껴진다. 미술사의 조류란 차원에선 틀린말이 아니다. 그 시대가 가고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퇴폐미술"은 미술관 복원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작들은 루트비히 컬렉션을 통해 한데 모여 이제 당당히 미술사의 중심에 선 걸작들로 기억되고 있다. 이 컬렉션은 '퇴폐미술'과 그걸 소장하던 시민들이 과거 그런 조류의 초기 맨 앞에 있던 미술작들을 낙인찍으며 탄압하던 지난날의 파시스트들에게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기념비처럼도 보인다. 


-전후 독일의 복원이란 기실 '유럽의 복원'이라는 것과도 겹쳐있다. 하지만 우리도 잘 알다시피 그게 양차대전 이전의 유럽과 결코 같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론 이 흐름의 정점에 EU가 있겠지만 지난세기 후반 발칸의 인종학살을 거쳐 이젠 또다시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은 전쟁 중이기도 하다. 유럽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여러 생각이 겹친다.


-내가 꼽은 이번 전시 대표작. 교토 전시에선 메인으로 걸렸던 앤디 워홀의 <페터 루트비히 초상화>다.

이 컬렉션을 만들어낸 페터 루트비히의 그림. 독일의 재건, 유럽의 복원, 더 나아가 세계의 재생에 대한 훌륭한 메타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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