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부부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치 Jun 05. 2024

<부부문집>을 시작하며

몇 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삼일장. 북적이고 소란스럽고, 가끔 고요했던 며칠이 지났다. 화장이 끝난 뒤 재가 되어 나온 아버지를 마주한 남편의 심경은 복잡해 보였다. 사람이 죽으면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을, 왜,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례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한참을 가라앉은 기분으로 지냈다.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침잠하는 남편에게 같이 글을 써보자고 했다. 당시의 힘듦을 털어내려는 의도였다. 글로 쓰면 마음이 정리되던 내 경험에 비추어 한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부부문집이 시작됐다. 하나의 큰 주제를 정한 뒤 각자 글을 썼다. '나무'에 관한 글에서 나는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은행나무에 대해 썼고, 남편은 어릴 적 키우던 감나무에 관해 썼다. 아빠가 몰던 '딸딸이'라 부르던 개조한 차, 3대가 복작거리며 살던 집,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적었다. 상대의 글을 읽으며 키득거리고, 생각이 다른 부분을 발견하기도 했다. 글로 만난 남편은 가끔 낯설었는데 나는 그것이 반갑고 새로웠다. 연애를 11년 하고 결혼한 터라 상대방을 다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몇 편의 글을 쓴 뒤 부부문집은 잠정 보류됐다. 다른 일을 하느라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렸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남편의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이유도 있다. 그 뒤 우리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 주택을 지어 이사 왔다. 남편은 여러 부침을 겪으며 일하는 중이고, 나는 작년에 첫 책을 냈다.      


책에는 어릴 적 살던 집을 회상하는 것부터 시작해문호리 집을 짓는 과정, 집이 완공된 뒤 주택에 사는 모습을 썼다. 건축가인 남편이 직접 설계한 집을 짓는 부분은 남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문적인 내용은 남편이 직접 원고를 쓰기도 했다. 매번 긍정적인 점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남편은 잔소리가 많다) 내 글에 대해 여러 논평을 하고, 책에 들어갈 사진도 제공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글로써 협업하다 보니 부부문집이 생각났다.      


그래서 여운처럼 남아 있던 부부문집을 다시 끄집어냈다. 못다한 말들이 생각났다. 몇 년이 흐른 지금, 잠시 쓰다 멈췄던 글을 이어가려고 한다.                




사진: Unsplash의Dương Hữ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