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글은 혼자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쓰는 것도 혼자, 읽는 것도 혼자. 개인적인 이야기와 내 치부가 담긴 내용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나만 보는 ‘비공개’ 글을 썼다. 재미있는 글은 혼자 웃으면 된 거고, 어두운 글은 더 깊은 어둠으로 가리려고 애썼다. 그렇게 몇 년간 남편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이야기를 남몰래 쓰고 깊숙한 곳에 숨겨놨다.
글쓰기를 잊은 적은 없으나 혼자 쓰는 글은 금방 지쳤다. 의지가 약한 나는 스스로 한 약속을 쉽게 어겼고, 글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재야의 고수처럼 실력을 갈고닦은 뒤 어느 날 ‘뿅’ 하고 나타나리라는 계획은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다. 혼자 보고 만족하는 글은 매번 고만고만했다. 모든 걸 다 쓸 것처럼 굴었지만 섬처럼 고립된 글에는 더 이상 이야기가 피지 않았다.
글에서 곰팡이가 생길 무렵 남편이 ‘브런치’를 알려줬다. 글쓰기 전문 플랫폼이고, 작가가 되려면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 그래?” 오랜만에 오기가 생겼다. 과연 브런치 작가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가 지을 집 이야기를 토대로 개요를 짜서 도전했다. 며칠 후 반가운 메일이 왔고, 나는 ‘아치’라는 필명으로 브런치 한편에 내 공간을 마련했다.
당시 우리는 신도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전세 재계약을 해서 2년 더 여기서 살지, 남편의 오랜 꿈이었던 마당 있는 집을 지을지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주택에 살아보기로 하고 경기도 양평에 자그마한 땅을 계약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공동주택에 사는 우리나라에서 단독주택을 짓는 게 흔한 일은 아니기에 기록용으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골방에서 혼자 글을 쓰고 읽다가 다른 사람에게 내 글을 보이려니 쑥스럽고, 긴장됐다. 악플이 달릴까 봐 걱정도 됐다. 첫 글을 올린 날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무서워서 브런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며칠 후 긴장하며 들어간 브런치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눌러준 하트가 있었다. 엉뚱한 걱정을 했구나 싶게 글로 연결된 세상은 따스했고, 조용했다.
구독자가 많지 않았지만 그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구독자가 적어도 좋은 글은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그걸 믿고 계속 썼다. 그랬더니 조회수가 기록적으로 높은 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브런치와 포털 메인에 올라간 덕이었다.
2020년부터 쓰기 시작한 집 짓기 이야기는 2022년에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글을 올린 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간 제의였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에 쓴 글을 바탕으로 2023년 <마당 있는 집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첫 책을 내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2년 뒤 나왔다. 제목은 <난생처음 운전>이다. 이 책 역시 브런치에 쓴 글을 바탕으로 냈다. 당시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운전이었다. 운전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왕왕왕 초보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운전은 미지의 세계였다. “초보운전 분투기를 써보자!” 마음먹고, 브런치의 ‘연재’ 기능을 활용했다. 의지는 약하나 책임감은 강한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기능이었다.
내가 정한 연재일은 ‘금요일’이었다. 글쓰기가 매번 즐거울 순 없으니 어느 때는 꾸역꾸역 쓰기도 하고, 한 주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용케 12주 동안 글을 올렸고, 이렇게 쓴 글을 바탕으로 출판사에 투고했다. 운 좋게도 결이 맞는 곳을 만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첫 책도 두 번째 책도, 모두 브런치가 있어 가능했다. 브런치에서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혼자 글을 썼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글을 내보이는 건 부끄럽다. 내 속살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브런치에서는 할 수 있다.
여기는 안전한 내 공간이니까, 우리는 글로 만나는 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