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합격한 중소기업은 홍대입구역과 매우 가까웠지만 집에서는 멀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첫차를 타고 홍대입구로 향했다. 어떻게 보면 알바나 과외를 제외하곤 처음 사회생활이니, 아무리 중소기업이라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떤 환경이고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아니 한 명 있었는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한 명은 앞으로 내 사수가 될 신과장님이었다. 신과장님은 처음 나를 봤을 때 존댓말을 하면서 어려워했고, 첫날은 가벼운 신상정도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업무를 하러 30분 만에 짧은 첫 만남은 끝났다.
그리고 사장님과의 첫 대면 시간, 호탕한 사람이었다. 나이는 50대 중후반? 체구는 작지만 자신감이 넘처보이는 표정과 다부진 체격이 특징이었다. 여하튼 면접을 본 그 회의실로 가서 사장님과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면담도.. 짧았다. 30분 정도 어떤 사람이고 무얼 했고 어떤 걸 할 줄 아는지. 아, 이렇게 신상을 가볍게 훑는 것이 사회생활의 첫 단추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찌어찌 모두 인사를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고, 역시 홍대입구인 만큼 핫한 공간이었고, 첫 식사는 국밥을 먹었다. 회사에서 나와 쭉 이어진 골목의 양쪽에는 단독주택과 카페, 그리고 각종 음식점이 많았다. 처음 시작하는 직장생활과 사람들이 낯설어서 뭐가 무엇인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젓가락을 배치 안 하고 물 안 따랐다고 혼내던 사원 2명 중 높은 사원? 여하튼 첫 만남이라고 부장님이 점심을 사주셨다. 본인들의 전통이라고 하나? 전통을 한 턱 얻어먹고 커피도 한 턱 얻어먹었다. 하지만 커피는 가위바위보라고... 커피 값이 밥 값보다 비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들은 말은,
"내일부터는 본인 돈으로 사 먹어야지"
점심시간이 끝나고는 사수인 신과장님이 나를 데리고 회사를 전체적으로 구경시켜 줬다. 전사원은 전체 20명 내외, 1층로비로 이어진 2층까지는 영업팀이 사용한다.
1층 영업팀은 새로 들어온 나를 포함해서 부장 1명, 과장 1명, 대리 2명, 사원 3명, 총 7명이 있었다. 중앙에 계단이 2층까지 나 있었다. 그 사이 1.5층이 있었는데 소파 2개와 책 스무 권 정도가 꽂혀있고 싸구려 커피머신이 있는 탕비실이고 2층은 희의 실과 사장실, 사장실은 회의실 옆에 항상 잠겨있는 불투명 유리문이었다.
3층은 경영지원본부라 보면 될 것 같았다. 2층의 뒷문은 밖이랑 연결돼서 3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3층에는 경영지원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으나 사실상 인사총무기타 영업 외의 모든 일을 하는 팀이 있었다. 직원은 5명 정도 있었고, 부장 1명, 과장 1명, 대리 1명, 사원 2명, 총 5명이 있었다. 아직도 사원 2명 중 1명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과장은 사장님과 혈연관계라고 했다.
4층에는 샘플실이 있었고 부사장님과 형님들과 이모님들이 계셨다. 샘플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나중에 알았지만 부사장님은 사장님과 혈연관계라고...(또?)
이렇게 4층으로 이루어진 단독 건물을 쓰는 회사였고, 지하는 주차장과 창고였다. 주차장에는 빨간 포르셰 1대와 스타렉스 1대, 그리고 나의 발이 되어줄 자주색 구형 아반떼가 있었다. 1대를 제외하고는 법인차량 같았다. (나중에 3대 모두 법인차량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창고에는 하나도 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당시에는 못 들어갔다. 먼지가 자욱하고 쓰다만 원단과 부자재가 가득한 공간,
'아 여기부터 내가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게 되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내려가고 첫날이니 빠른 퇴근을 오후 7시에 말씀해 주셔서 준비했다. 하지만 적어도 첫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2시간의 출퇴근 거리는 부담스러웠고, 이전에 찾아본 고시원을 빠르게 둘러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