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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로 Mar 30. 2023

서울에서 대구까지

신입사원/좋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회사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메일 보내고 일정 짜고 샘플 만들고 배송스케줄에 맞게 쿠리어를 보내는 업무다. 출근해서 보니 1층에 타이틀이 어머님이란 분께서 출근을 항상 하셨고 9시에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하신다. 주로 하시는 업무는 샘플을 빠르게 완성하고 배송상태까지 만들어 주시는 것. 그런데 청소도 해주시고 커피도 한 잔씩 (꼭 믹스만 드신다) 드시고 인상도 좋으신데 근속이 회사만큼 오래되셨다 했다. 더 놀라운 건 근처 건물주시라고.


출근하면 창고나 또는 거래처에서 온 원단 롤을 어머님에게 드린다. 그리고 이걸 다시 자르고 패킹해서 봉제공장 또는 샘플실로 올린다. 그리고 완성품을 받아서 매일 6시 마감인 쿠리어를 통해 보내는 게 내 주요 업무였다.


정말 어려울 것은 없지만 거래처가 문제였다. 국내 거래처는 안산과 시흥에 있었고 봉제업체는 종로나 강동에 있었다. 그리고 이 완성품을 받는 해외 바이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데 시차가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때문에 오전에 출근하면서 안산과 시흥에 자재 업체에 가서 봉제업체로 가는 코스가 이어질 때가 많았으며, 16시간의 시차를 넘어 해외 바이어의 연락을 대응하는 것이 가장 곤욕이었다. 그들은 그들 시간 오전 7시에 출근하는에 한국에 밤 11시였고, 점심시간 직후인 오후 3시, 한국시간으로 오전 7시에 연락이 가장 많았다. 한마디로 24시간 근무제. 온전히 메일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전화도 대응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시간에 맞춰서.


그러던 어느 날 해외 바이어가 매우 중요한 기획전을 위해 오더를 크게 주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영업부 전 직원이 대구로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첫날 밥 먹는데 눈치를 준 그 남자 사원선배는


"운전은 막내가 해야지"


아 그렇다, 그 선배는 나보다 한 살 적고, 들어온 지는 1년 더 되었다고 한다. '일찍도 취직했네'라고 생각하면서 '늦게 들어온 게 죄지'라고 넘기며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스타렉스를 몰아본 적이 없다. 거래처를 다녀올 때다 아반떼를 탔었고 스타렉스는 초행이었다. 그래도 차는 다 비슷하겠지 했는데 기어 위치나 핸들, 방향 전환이나 크기가 전혀 다른 차였다. 하지만 그는 운전을 하라고 했고, 난생처음 초장거리 운전인 경부고속도로 서울에서 대구까지를 그렇게 시작했다.


스타렉스라고 해도 아반떼와 크게 차이 없다 생각했다. 엑셀 밟고 운전대 잡고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되리라. 하지만 장거리 운행을 처음 한 사람은 똑같은 길을 계속 가는,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7시에 집합해서 대구를 가는데 정신력이 부족했나 보다. 운전하다가 졸음 때문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사고는 안 났지만 아찔한 운전이 계속되었고, 절반쯤 지났을까? 휴게소에서 모 대리가 교대를 해줬다. 알고 보니 그 선배사원은 운전면허도 없단다.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뻗어서 잔 것 같았다. 점심시간 즈음 공장에 도착했고 한 곳을 방문하고 상담한 뒤,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으면서 그 선배는 또 한마디 거들었다.


"아주 잘자더라"


본인은 오는 내내 잔걸 난 보았다. 오히려 또 다른 사원선배는 아무 소리도 않고 그저 조용히 따라오기만 했다. 여자 선배였던 그 사람은 영어 하나를 잘한다고 해서 다니는 것 같았다. 잘한다라... 기준은 모두 다르니까. 나보다 6개월 정도 먼저 들어왔고, 혼자 거래처 하나를 대응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2인 1조인데 혼자라니, 뭔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활발한 것 같으면서도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었고, 크게 튀지 않았다. 단 화나면 엄청 무서웠다. 그리고 조금 안면이 트고 친해졌을 때 했던 첫마디가 기억난다.


"여긴 아니야 도망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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