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관계와 애정결핍 | 사심 史心 인문학 13화
결핍(缺乏, Deficiency)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을 말해요. 간혹 있었는데 다 써서 없어진 상태도 포함돼요. 과학에서 말하는 결핍은 특정한 원소의 부족을 결핍이라고 해서, 의학적으로 결핍증이라는 용어도 있죠. 의학적으로 말하는 결핍증은 특정 영양소나 호르몬 등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병이죠. 몸에 꼭 필요한 것이 부족할 때 일어나는 병. 비타민 결핍증이나 무기염류 결핍증 등은 음식물 섭취 결함이 원인이고, 호르몬 결핍증은 몸에서 내분비성 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죠. 태어날 때부터 면역 결핍이 있는 경우를 CIDS(Conngential Immunodeficiency Disorders Syndrome)라고 하는 희귀병이 있고, 후천성으로 면역이 결핍되는 경우는 우리가 잘 아는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가 있죠.
다만 나는 역사학자이고 인문학자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말하는 결핍은 정서적인 내용을 많이 다룰 거예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정서적으로 결핍 된 것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 결핍 된 것에 따라서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구요. 그 것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그 경험으로 인해 정서 상태가 불안할 수 있어요. 물론 이 결핍의 강도에 따라 생활에 지장이 된다면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사람에게 있어서 결핍을 많이 언급하는 요소로는 애정결핍(愛情缺乏, Lack of Love)이 대표적이에요. 유년기와 아동기, 그리고 청소년기에 부모 등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주변의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험이 쌓이면서 정서 상태가 불안정할 때 흔히 애정결핍이라는 표현을 하죠.
다만 공식적인 의학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많이 쓰여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당 사회적 관계에서 용인 되는 사회적 통념 그 이상의 애정과 관심을 요구하거나, 반대로 마땅히 받아야 할 애정조차도 과분하다고 여겨 불편해 하거나 거부하는 행동 양상을 말해요.
예를 들자면,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에 있는데 둘 중 한 사람이 가족 수준의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현상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드라마 <로망스>(2002)나 영화 <몽정기>(2002)에서 나오는 선생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가 이런 경우죠. 다만 나는 지독하게도 긴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게 되는 관심이나 애정이 그 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것들이라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었거든요.
물론 애정결핍이 일상에서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적어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선호도에 반영되거나 성격의 차이 정도로 나타나는 거죠. 그 선호도에 따라서 가끔 만나는 친구, 가까이 하는 친구, 애인 등의 관계를 정립하는 거겠죠.
다만 이 증상이 심해지면, 어렸을 때 충분히 받지 못한 애정을 성인이 되어서 추구하다 보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거나, 자신의 말이 옳다고 봐 주길 바랄 수 있어요. 이런 성향을 숨기는 사람도 있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죠.
아니면, 애정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는 관심과 애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힘들어 할 수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이 적은 것이 오히려 더 평온할 수도 있어요. 자연스럽지 않을 정도로 예기치 못한 관심이나 애정을 접하게 되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두려워하거나 거부하기도 하며 납득조차 하지 못해 의심하기도 해요. 내가 이런 경우에 속했죠.
애정결핍이라는 개념에는 수많은 여러 가지 정신건강질환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애정결핍이 일상 생활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칠 정도가 되면 성격장애나 다른 질병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있어요.
경계선 성격장애 : 애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하여 공격적으로 변함
의존성 성격장애 : 애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져 질리도록 매달림
연극성 성격장애 : 애정을 받기 위해 한껏 꾸미고 과다하게 감정을 표현
자기애성 성격장애 : 애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자길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무시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로 대표 되는 가족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에 냉대를 당한 경험 때문에 피해의식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 결핍을 해소하고 싶어하는 보상심리를 갖고 있기도 해요. 좋지 않게 표출되면 가족으로부터 받았어야 할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적절하지 못하게 요구하기도 해요.
보통 성인이 될 때 전후(청소년기?)에 성격이 굳어져 애정결핍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때로는 아동기에 발현되기도 해요. 물론,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도 많죠. 다만 이런 경우에도 시대착오적으로 알지 못하는 내용이 있기도 하고, 양육 경험이 적거나 부모의 교육 수준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부모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그밖에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 등으로 인해 그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애정결핍이 생길 수도 있어요.
부모가 충분히 사랑을 해 줬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녀가 정서적으로 고통을 받아 성격이 뒤틀릴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의 특성을 잘 이해하거나 자신의 양육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결핍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 물질적 수단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부모들도 어린 시절에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부모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뉠 수 있어요. 상담 등을 통해 개선하지 못할 경우 대대로 피해자가 피해자를 낳는 것이고, 좋은 방법으로 치유를 했을 때는 최소 자신의 자녀는 자신처럼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게 해줄 수도 있어요. 자녀를 건강하게 낳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잘 키우는 것 만으로는 지금 시대를 살아갈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부족하죠. 그래서 우리는 연애나 결혼을 하기 전에 충분히 공부를 해야 하고, 자녀를 갖기 전에 부부가 충분히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다른 경우로 가정에선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학교나 사회에 나가 보니 그러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괴리감에서 애정결핍이 생겨요. 상급 과정의 학교로 진학하면서 가정보다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그런 곳에서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자기부정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어요. 이러한 과정에서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 피해 등을 당하게 될 경우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를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어요(히키코모리 등의 예).
사실 받지 못했던 애정을 계속 갈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상대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상대의 관심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도는 흔한 경향이라 애정결핍이라 부르진 않아요.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심한 정도가 되면 의처증, 의부증 등 배우자에 대한 의심을 끊지 못하기도 해요. 이런 사람들은 때나 사정을 가지리 않고 어떻게든 연락을 통해 상대를 확인하려고 하죠. 마음 기저에 보상심리가 깔려 있어서 상대방의 이해와 헌신을 은연중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강요하는 거죠.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기의 제안이 거절 당하는 것을 ‘아, 그렇구나’ 정도로 넘어가지만, 그들은 심하게 상처를 받고 분노를 표출하거나 심한 우울감을 느껴요.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피해망상이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어요.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 크게 데이면, 그 피해자도 깊은 상처 때문에 강한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어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위험도 있어요. 다행히 나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진 않았네요.
아니면 사랑 받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이 스스로에게 정상적으로 인식되어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이나 애정을 받는 상황이 생겨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어색해 하고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사실 나도 할머니의 장례 과정 중에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어요. 친할머니 때는 치매로 몇 년 요양 과정 끝에 보내서 그러려니 할 수도 있고, 외할머니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떠나 보내게 되어 엄마는 충격이 컸는데 나는 그저 마음이 지쳤던 정도였어요. 사실 사촌누나 부부를 자살로 잃었을 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는데, 그 소식을 듣기 직전에 머리가 심하게 아팠던 정도였으니까요. 뭐 약물 치료를 하고 나서 마음의 강박을 조금 풀게 되었는데, 이후엔 때때로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를 때가 있어요.
설사 자신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베푸는 연인을 만나 연애를 하더라도 애정결핍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연애를 통해 치유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흔히 관계 애착 유형 중에서 불안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시험하면서 그 사랑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을 터뜨리고 화를 내기도 해요. 연인이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것에 질투를 느끼기도 하구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기도 해요. 관계가 나빠지면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 이어가기 힘들고, 그 대상을 바꿔가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어요(애착 유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공포회피형이에요.).
애정결핍으로 인하여 아주 극소수는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해요.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하는 애정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심한 성격이에요. 자기혐오, 자학, 열등감 등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거죠. 자신이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해서 자존감이 낮고,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해요.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거나 학교 폭력, 성폭력 등 트라우마가 남았을 경우 성장하면서 극심한 자기방어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폭력성을 행사하기도 해요. 모든 스트레스를 자기 자신에게 몰아버리는 경우가 많아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지는 편이죠. 이들은 어떻게든 애정이나 관심을 받고 싶거나 자기애가 바닥이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반복하는 거죠. 다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내던지는 것에 가까워요.
이들이 심할 경우 조울증이나 우울증 증세를 나타내기도 하고,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일단 이들의 이야기를 꾸준하게 잘 들어주다가 천천히 정신건강의학과와 관련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이 그나마 최선이긴 해요.
애정결핍으로 인하여 짝사랑에 빠질 경우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아름답겠지만) 왜곡되면 위험할 수 있어요. 스토킹 범죄를 저지르는 등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요. 매력은 없는데 연애에 대한 욕구가 큰 ‘모태솔로’의 경우 이런 경우가 가끔 있는데, 연애를 하기 힘들어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거절 당하고 연애에 대한 갈망도 매우 큰 상태에서 자신을 거절한 이성이나 그 상황을 야기한 제3자에 대해 분노가 나타나는 거죠.
사실 애정결핍을 야기하는 상황은 왜곡된 짝사랑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런 날 있잖아요. 길거리에 유독 커플들이 많이 보이면 손이 허전하고 옆구리가 시리고 서러워지는 거. 그러면서 주눅이 드는 것 정도는 다들 충분히 공감 된다고 봐요. 이것이 점점 결핍으로 발전하면 세상에 예쁜 이성들이 이미 다들 임자가 있고, 나 자신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심리가 생기면서 연애에 대한 빈부격차까지 느끼게 되는 거죠(이 부분 쓰면서 왜 내가 외로운 거냐구요. 뿌에엥... ㅠㅠ).
물론 애정결핍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표현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까지 끼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전문 상담사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을 찾아 상의하는 것을 추천해요. 다른 여러 가지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꼭 찾아보길 바라요. 뭐,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아 약물을 통하여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는 이른바 조용한 ADHD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ADHD가 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서적으로 취약할 수 있어요.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위험이 있고, 나만 해도 학교 폭력 피해자로 살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지금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나마 요즘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트러블을 일으키진 않는 게 다행. 사실 이는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전개를 하는 방어적인 성격이라서 그런 것도 있어요. 일반적인 친교의 관계도 이렇게 조심조심 접근하는데, 하물며 연애는 어떻겠어요. 나도 20대에는 이런 애정결핍이 좋지 않게 노출되는 것으로 인해 고생이 심했구요.
그러다 20대 후반에 사촌누나 부부의 자살을 겪게 되면서 1년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사랑을 더 갈망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내 커리어에 치명적인 타격을 미치게 된 사건들이 좀 있었고, 졸업 후 사회에서 넓혀가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좁아진 계기가 되었어요.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내가 살기 위해 청년 사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 5년 정도는 모임을 찾아 다니는 빈도가 크게 줄었어요. 혼자 교양 인문학 강연은 많이 들으러 다녔는데, 그 시절에 판교에 얽힌 기억이 많아요. 판교역 1번출구에서 북쪽으로 있는 길거리를 거쳐야 할 일이 많았는데, 특히 가을 밤에 선선한 바람이 불면 그렇게 술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 시절에 혼술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이 시절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가족으로 채우지 못한 정서적 결핍이나 학교 폭력 후유증으로 인한 관계의 결핍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죠.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 맺은 다른 관계들이 좋으면 어느 정도는 괜찮아지겠지만, 그 관계로 얻는 정서적 안정이 똑같지는 않잖아요. 이 깨달음 이후로 난 굳이 소개팅까지 바쁘게 잡으면서 급하게 연애를 해야 한다는 욕심은 사라지게 됐어요. ADHD에다가 고3 시절부터 겹친 만성적인 우울을 안고 살아서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이런 부분에서는 많이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나한테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호감을 갖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막지는 않는데, 워낙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눈에 띄는 것부터 힘들어서 이 부분은 시간이 좀 더 걸릴 듯 해요.
다만, 내가 겪었던 애정결핍의 상처를 언젠가 태어날 미래의 내 자녀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겠지만, 그 순간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겠죠. 첫 인상만 보면 알지 못하는 내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어딘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근데 이제 좀 나타나 줄 때도 됐잖아. 뿌에엥... ㅠㅠ).
애정결핍의 행동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난 단 음식을 그렇게 많이 찾더라구요. 예전에 어떤 여사친이 나한테 “승훈아, 너 왜 그렇게 단 걸 많이 찾아? 애정결핍이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이후로 애정결핍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졌던 것 같아요. 물론 이 질문을 받기 전부터 단 음식은 엄청나게 좋아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