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식테이너 김승훈 Aug 05. 2024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 아픈 거래요

속 편하게 쉬지 못하는 세상 | 사심 史心 인문학 18화

우리는 쉰다고 할 때 보통 휴식(休息)이라는 표현을 제일 많이 쓰죠. 물론 한자라서... 나는 가급적 우리말이 있으면 우리말로 바꿔 쓰고 싶은 사람이라서 이라고 하고 싶네요. 영어로는 쉰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잠깐 쉰다고 할 때는 Break(말에서 쓸 때는 take a break), 긴장을 풀 때는 Relax, 조금 길게 쉴 때는 Rest(말에서 쓸 때는 get some rest) 등으로 나눠 쓴다고. 대부분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을 쉰다고 하는데, 사실 INFP 인프피에게는 쉰다는 행동도 뭔가 하는 것으로 느껴지긴 해요. 예를 들자면,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뭔가 하고 있는지 확인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는 커피를 마시는 게 뭔가 안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생각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커피를 마신다는 게 '뭔가 하는 것'이죠(먹고 자는 것도 일과 중 하나).

혼자 카페에 가곤 하는데, 어떤 때는 쉬러 가는 거고 어떤 때는 쉬는 게 아니기도 하고 ⓒ 지식테이너 김승훈

쉰다는 것은 머리나 몸이 지쳤을 때 그 기운을 다시 채우는 시간이에요. 노동자, 학생, 스포츠 선수, 창작인 등 모든 사람들에게 쉬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죠. 몸은 그 자체로 재산이니까. 하루에도 일과 중 조금씩 비는 시간을 자투리 시간이라고 하는데, 이 자투리 시간을 잠깐이라도 잘 쉬는 것이 중요해요. 초등학교는 40분, 중학교는 45분, 고등학교는 50분 동안 수업을 하고 10분을 쉬죠. 이 10분 동안 꼭 해야 하는 것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화장실을 갖다 오는 것이 좋죠. 다음 수업을 하는 곳이 교실이 아닌 다른 곳일 경우 이동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그리고 밥 먹는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는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갔다 오는 시간이기도 하죠(어떤 사람에게는 매점에 갔다 오는 것이 가장 소중할 수도 있으니 그렇다 치고). 대학은 공식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을 정해 놓기는 하지만, 강의를 하는 교수나 강사의 진행 방법에 따라 2~3시간을 몰아서 다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이야기 흐름을 끊어 줄 때 적당하게 쉬는 경우도 있고, 시각을 보고 쉬는 경우도 있고 다양하니 쉬는 시간이 꼭 규칙적이지는 않아요. 대학에선 밥을 먹는 시간이라고 정해져 있지는 않아서, 개인 시간표에 따라 비는 시간에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아니면 그 날의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먹고, 그 날의 수업을 모두 끝낸 뒤 먹는 사람도 있고. 난 학부 시절에 통학 시간이 긴 편이라서 그 날의 수업을 모두 끝내고 느긋하게 먹는 일이 많았어요(메뉴를 빠르게 고르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해서).

사회에서는 학교처럼 똑같은 시간에 쉬진 않아요. 대개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각에 출근과 퇴근을 하는데, 중간에 밥을 먹는 시간이 정해진 회사가 대부분이죠. 그 밖의 쉬는 시간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 대부분은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시간이 쉬는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그런 쉬는 시간이 더 자주 있긴 하던데, 같이 피는 사람에 따라 쉬는 시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자판기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이 있기도 했죠. 요즘은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들고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서 비즈니스 타임에는 카페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곳도 있어요.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몸 속에서 음식을 소화 시키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피가 머리보다는 배로 많이 흐르게 돼요. 그래서 식사 직후 졸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고, 밥을 먹은 직후 어느 정도는 머리를 쉬어 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학교에서 보통 3교시나 4교시가 끝나면 밥을 먹기 때문에, 4교시나 5교시가 유독 졸린 시간이라 느껴지는 게 그 때문이기도 해요. 그나마 좋아하는 과목이거나 선생님의 수업 스타일이 좀 재밌으면 나은데, 지루한 수업이라면 그 시간은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꾸벅꾸벅 하거나 아예 고개를 숙이거나 코를 고는 경우가 많죠. 그나마 나는 수업 시간에 졸음이 오는 경우가 적은 편이었는데, 긴 시간 집중을 하기 힘든 ADHD의 특성 때문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수업 중 졸음이 많아지긴 했어요. 특히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집에서 학원을 보내는 강도를 더 올리는 바람에 쉴 시간이 더 없었고, 결국 2학년 여름에 몸에 탈이 나게 되었죠. 그 이후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쉽게 피로해지는 증상이 만성이 되어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사실 그 시절부터 약물 치료를 했으면 지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20년 가까이 ADHD에 대한 인지가 없었던 나로서는... 평생 약물 관리를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완치의 개념이 아니라,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먹는 거예요. ⓒ 지식테이너 김승훈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는 쉬고 있는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풍토인 것 같아요. 집에서 자녀들이 뭔가 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선생님으로 빙의해서 숙제 검사를 하려는 모습들이 흔하죠. 입시가 삶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린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학생이 쉰다고 하면 좋게 바라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는 더하죠. 취업이나 사업을 하지 않아 경제적인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냥 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도 그들을 마냥 좋게 바라보는 느낌의 보도는 아닌 것 같아요(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중에도 그냥 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뉴스 썸네일을 봐서 그런가, 더 예민한 건 기분 탓).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는 중이니 쉬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잖아요. ㅠㅠ


워낙 여러 가지 느낌이 예민한 나도 마음 편히 쉬어 본 기억은 없어요. 특히 나는 컨디션이 조금만 바뀌어도 몸에 영향이 커서 일일 생활 계획을 만들고 매일 똑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에너지가 충전됨을 느끼는 때는 혼자의 시간이 생겼을 때인데, 집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면 피로해지더군요. 그래서 그런가 집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잠드는 밤 시간 대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ㅠㅠ

쉰다는 것은 단순히 쉬는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몸이나 마음이 평상시 과업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해요. 몸이 쉬고 있어도 머리에서 계속 일 생각이 떠오르면 쉬는 게 쉬는 느낌이 들지 않겠죠? 이런 점에서 몸을 많이 쓰는 일의 경우는 쉬는 날에 적어도 몸을 쉴 수 있긴 하죠. 정신적인 일이나 감정적인 일일 경우 이게 쉽지 않아서,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 중에서는 신체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움직임이 적은 취미를 갖는 경우가 있고, 정신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취미로 갖는 경우도 있죠. 물론 케바케라서 이게 정답이라고 할 순 없어요.

머리를 쉬고 싶으면 내용 어려운 책은 피하는 게... ⓒ 지식테이너 김승훈

사실 나도 워낙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잠을 자는 것을 힘들어하는 편인데, 이 때문에 쉰다고 머리가 쉬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쉬어 본 느낌이 없는 것 같아요. 생각을 의도적으로 멈추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성인 ADHD가 있는 나는 잠깐의 순간에도 생각이 여러 차례 바뀌고, 뭔가 하고 있다가 갑자기 다른 것을 하기도 하는 등 편히 쉬는 것이 잘 안 되는 편이에요. ㅠㅠ

약을 먹으면서 몸 관리를 하긴 하는데, 콘서타만 먹는 것이 아니라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그리고 자기 전에는 수면제를 복합적으로 먹고 있어서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아요. 콘서타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약들은 먹으면 졸릴 수가 있어서 그렇긴 해요. 성인 ADHD의 증상 중 하나가 신경 에너지의 과도한 소모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피곤한 일이 많은데, 의자에 앉은 채로 눈이 감긴 적도 많아요.


잠을 자는 과정에서 우리 몸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는 과정에서 몸의 작용이 깨어 있을 때와는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기만 하는 것이 몸에 좋은 것이 아니에요. 몸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몸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면 돼요. 너무 힘들어서 마지못해 눈이 감긴다고 푹 자는 것이 아니라는 뜻.

이렇게 잠이 충분하지 못하면 사회적 시차증에 시달릴 수 있는데, 당뇨병, 심장질환, 우울증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물론 사회에서는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 최고라고 하지만, 사람이 모두 똑같은 시간에 잠드는 존재가 아닌 만큼 특정 시간 대에 잠을 무조건 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잘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컨디션이 괜찮으면 당장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하면 잠이 들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드는 것은 극한의 피로 상태라고 해요. ㅠㅠ

이 때 솔직히 자고 싶었는데...(여사친이 찍어 준 사진) ⓒ 지식테이너 김승훈

극심한 피로 상태에서 항우울제 등 잠을 유도하는 종류의 약을 먹을 경우 그 영향으로 잠드는 시간이 길어져서, 누가 깨우지 않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이런다면 거의 기절 수준인 거고, 사실 나도 약을 먹기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어요. 너무 피로한 상태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다가 잠을 들었는데, 약속이 있어 준비를 위해 깨어야 할 시각에 아무리 알람을 여러 개 걸어 놓아도 깨어나지 못한 적이 더러 있었어요. 성인 ADHD라는 요소를 감안하면, 자고 깨는 것에서도 집중력 문제가 작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생명을 영원히 쉴지도 몰라요. 그래서 ‘쉬지 않으면 쉬게 된다’는 말이 나왔죠.


그런 문제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는 혼자 지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 잠에 관련된 불안 때문에 스케줄을 제대로 미리 짤 수가 없을 수 있어서 그래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누군가 깨워 줘야 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의 경우 가족이나 룸메이트가 필요한 것이죠. 부모가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다만 앞으로의 미래를 감안하면 이러한 점을 도와 줄 사람으로는 부모보다는 배우자가 필요하겠죠. 코골이도 있는 것 같아서... 아마 각방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배우자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나처럼 계속 병원과 연결된 관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더욱...(뭐 각방 쓰더라도 금슬 좋은 부부는 사랑이 넘친다고 하니까)

혼자 왔는데, 메뉴를 하나만 고르지 못해서 2종류 사서 혼자 마셨던... ⓒ 지식테이너 김승훈

이러한 내 고충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배우자 찾는 것이 언제 쯤 이뤄질지 모르겠네요. 사람을 억지로 바꾸는 게 아니라,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성인 ADHD로 인하여 긴 시간 집중이 힘든 것도 있고, 최근 몇 년 동안 내 에너지가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라서, 연재가 꾸준하게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어요.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심리적 변화인 코로나 블루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너무 컸죠. 세상이 코로나19로 덮이기 직전에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도 있었고,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힘을 더 잃어 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그 누구보다 쉼이 더 필요한데, 푹 쉴 환경이 안 되는 거죠. ㅠㅠ

지난 번 글을 냈던 것이 작년 9월 25일이었네요. 그 이후 글 연재도 그렇고, 유튜브 채널 영상도 그렇고, 아프리카TV 생방송도 그렇고 뭔가 쉽게 손이 가질 않아서… 뭔가 하는 데 있어 이전보다 더 많은 힘이 들고, 손을 대더라도 마무리가 잘 안 되고 있는 요즘이네요. 거의 10달 동안 이런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데,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려고 했다면 이미 지친 몸이 더 망가질 걸 알고 있어서 그냥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글 쓰는 손맛도 좀 바꾸고 적응하는 중. 적당한 타격감은 나름 글 쓰는 맛이 조금은 나네요. ⓒ 지식테이너 김승훈

일단 뭔가 작업 할 손이라도 더 가게 해 보려고, 장비도 업그레이드 좀 해 봤어요. CPU, 그래픽카드, RAM, 조명, 키보드 등 이것저것 많이 바꿨네요. 폰도 7년 반 썼더니 수명이 거의 다 해서 바꿨고... 다만, 이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이나 영상들은 하드가 한 번 날아가서 의욕이 많이 오르진 않았다는 게 함정. 무려 17년 동안의 실록들이 사라졌어요. ㅠㅠ


※ 성인 ADHD와 관련해서는 20개월 정도 통원 치료를 하고 있고, 자살 유족으로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어요. 멘탈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나름 개인적으로 잘 받아 내고 있음을 참고 바라요.

작가의 이전글 나이만 많다고 모두가 어른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