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밤

by 김소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배경음악도 없다. 그냥 새카맣거나 백지이거나. 그냥 그런 기분이다. 고요와 적막은 이렇구나. 처음 경험하였다. 그날의 밤은 내 마음만 시끄러웠다.


잠들기 직전, 우리의 밤은 아주 시끄럽다.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공평하게 두 권씩 들고 온다. 그날의 내 상태에 따라 권수는 늘 달라진다. 너무 힘이든 날에는 잔뜩 인상을 쓰고는 한 권만 들고 오라 으름장 놓기도 한다. 글밥이 많은 책을 가지고 온 아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영혼 없는 책 읽기가 끝이 난 다음 불을 끄고 눕는

다.

“엄마 목말라 물~”
“쉬하고 올게!”
“아 맞다?! 내 인형 어디 갔지?”
아이들은 눈을 감기직전 모든 말을 다 쏟아낸다. 어둠이 싫은 건지 잠을 자기 싫은 건지. 이 아이들한테는 잠이 드는 게 싫을 정도로 세상이 너무 즐겁고 신나는 일이 가득한가 보다. 나는 잠자는 시간이 제일 좋은데.
“이제 그만~!!”
다시 불을 끈다. 다음은 자장가가 나와야지. 잘 자라 우리 아가부터 시작해 섬집아기까지 내가 아는 모든 조용하고 느릿한 노래는 다 부른다. 양손으로 각자의 엉덩이 한쪽씩을 토닥토닥. 좀 잘 풀린다 싶으면 두 놈 중 한놈은 노래중반에 잠이 든다. 이것도 드문 일. 오늘도 역시 나의 레퍼토리가 다 끝나도 여전히 꿈틀거린다. 그럼 또다시 노래를 불러야지. 이럴 때 나의 전공을 살리게 된다. 이렇게 쓰라고 부모님이 공부시켜 주신 게 아닐 텐데. 씁쓸하다.


박자는 무조건 느리게.
처음시작은 메이저로 시작해 중간즈음부터 마이너로 넘어간다.
저음위주로 옥타브를 넘어가는 것 없이 제일 단조롭게 여덟 마디씩.
가사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로 부르되 너무 개그 욕심 내지 말 것. (지금은 잠잘 시간이니까)
중간부터 반복해서 부를 것. (지겨워 잠이 오도록)


웬만하면 이 정도 즈음에 잠이 든다. 이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날 활동이 너무 없었거나 아직 에너지가 남아돈다면 여전히 뒹굴거리고 말을 걸기 시작한다.
하지만 넘어가지 말자. 대꾸해주지 말자. 그래도 아직 한참이라면 이제는 정말 그때부터 도깨비 아저씨를 불러야 한다. 이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에게는 이게 정말 잘 통한다.


결국 승자는 나다. 나라고 믿고 싶다. 마치 아이들이 나를 위해 잠을 자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옆에 같이 누워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그제야 거실에 나가본다. 한 손에는 장난감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정리하며 나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어준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내가 수고한 것이 맞나? 결국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고 화를 낸 하루의 마지막장면에 꼭 남편은 고생했다며 내편을 들어준다. 민망하고 뜨끔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의 고요함은 내가 만들어 낸다. 정리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 발소리도 사치다. 늘 내가 만들어낸 고요함 속에서 지내다 어느 날 첫째가 할머니집에서 자보겠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누나 원피스까지 따라 입는 누나바라기 둘째는 뭔 지도 모르고 따라가겠 단다. 그렇게 얼떨결에 나 혼자가 되었다.

그렇게 원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남편도 늦게 온다 하니 정말 혼자다. 거실에는 아이들의 흔적이 가득 남아있다. 아이들이 잠깐 그리워지려 했지만 정신 차리자. 어떻게 얻은 나만의 시간인데 라며 나를 달래고 맥주캔을 따고 아이들 몰래 숨겨두었던 내 간식을 꺼냈다. 캬~아 이거지! 라며 소리 내어보니 순간 너무 푼수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이제부터 뭘 할까?
밀린 드라마를 볼까?
책은 정말 아니야.
그냥 나갈까? 나가면 누구를 만나지?
혼자 나가볼까? 혼자서 어딜 갈 건데?
나 도대체 뭐 하고 싶은 거지…?


그렇게 바라던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원하고 있었던 게 맞는 건지 모를 정도로 그리 기쁘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막막하고 원망스러워졌다. 그런 나를 처음에는 다독여도 보기 시작했다.


괜찮아. 무얼 해야 할지 몰라도 돼.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그냥 즐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 시간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즐기면 되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꾀 뚫고 있으면서 정작 나는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어떤 장소를 좋아하고 어떤 노래를 즐겨 듣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등 나에 대해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정확히 나는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았다. 물론 상황이 나보다는 아이에게 더 집중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없어지면서 까지는 아닌데 말이다. 그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나의 모든 마음과 시선이 쏠려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핑계로 나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내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스스로 깊은 고민을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마음이 아주 소란스러운 상태로 그날도 여전히 시끄러운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주 잘 잤다는 말에 안심도 되면서 언제 이렇게 컸나 새삼 느꼈고 다음에 또 할머니집에서 잠잘 거라는 말에 기특했다.

서로 떨어져 지낸 밤, 우린 그렇게 서로 한 뼘 자랐다.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나는 연습을 난생처음으로 해봤고, 엄마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잠들기 직전 우리만의 루틴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이건 오직 나 만을 위한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다 들을 동안 절대 엄마 찾지 않기.
같이 듣자 하지 않기.


오늘 밤의 배경음악은 에픽하이의 <Fl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