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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23. 2023

'스포츠 인권'이라는 동어반복

야구대표팀 사례를 보며

스포츠를 잘 아는 사람도 스포츠란 단어가 어떤 뜻을 담는지 찾아본 이는 많지 않다. 이는 '일상의 함정'이다. 우리가 모국어로 자연스럽게 체득한 단어는 경험이 사전적 뜻을 대체한다. 이를테면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쓴 사람이 국어사전에서 '책'이나 '공책' 같은 단어를 찾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의 차이는 일상 소통 속에서 경험적으로 인식되어 책은 흔히 글자 가득한 읽을거리를 뜻하고 공책은 글자를 채워 넣어야 하는 공백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이것은 외국어를 배우며 '펜(pen)'과 '펜슬(pencil)'이 다르고 '북(book)'과 '노트북(notebook)'이 다르다는 것을 한국어로 된 뜻으로 아는 것과 판이하다. 모두 사회가 약속한 단어를 습득하는 것이지만 관념으로 인식하는 것과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다.


그러므로 스포츠라는 일상 경험의 단어와 인권이라는 또 다른 일상 개념어가 만나면 이것은 충돌하거나 한쪽으로 판단이 쏠린다. 누군가는 이 합성어에서 스포츠에 무게를 두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권에 더 힘을 실어 부엌의 저울처럼 두 단어는 결합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내려앉는다.


최근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불리는 야구에서 이런 장면이 재차 확인됐다. 지난달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앞서 야구대표팀은 '우완 에이스' 안우진을 제외했다. 국내에선 적수가 없다고 평가받는 젊은 에이스를 배제하면서 야구대표팀은 과거 그의 학교 폭력 전력을 제외 이유로 제시했다. 설상가상 야구대표팀은 일본이나 미국과 큰 격차를 체감하며 대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는 결과론적인 얘기에 흥미를 보이는 일각에 화두로 떠올랐고 마침내 "안우진이 있었다면?"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한 후일담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후일담은 다시금 학교 폭력이라는 인권 범죄를 저지른 스포츠 선수에게 어느 정도의 처벌과 제재가 합당하느냐는 논란으로 번졌다. 이는 대회에 앞서 추신수가 안우진 제외를 두고 "한국 문화는 용서가 쉽지 않다"고 비판했지만 박찬호는 "시대가 안우진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정반대 입장을 밝힌 것의 연장선이다.


사실 '스포츠'와 '인권'을 외국어 배우듯이 낯설게 곱씹는다면 이 문제는 안우진이라는 '스포츠'와 학교 폭력 피해자라는 '인권'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판단하느냐로 정리된다. 스포츠에 더 무게를 둔다면 저울은 안우진으로 쏠렸을 것인데 우리의 이번 결정은 인권에 무게를 실어 그는 결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사전에서 스포츠를 검색해 보면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이라고 나온다. 마찬가지로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라고 설명한다.

천천히 보면 스포츠의 뜻 중 '개인이나 단체'는 결국 '인간'이 구성한다. 그러므로 '스포츠 인권'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인권 스포츠'로 부르는 것이 더 큰 개념을 앞에 쓰는 관행처럼 타당할 수 있다.


스포츠도 결국 인권을 가진 인간이 하는 것이므로 스포츠와 인권을 묶어 부르는 지금의 언어는 이따금 '역전'을 '역전 앞'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동어반복과도 같다. 사전적으로 인권을 가진 인간이 개인이나 단체 자격으로 행하는 것이 스포츠이므로 결국 스포츠 안에는 인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야구대표팀 사례에서 스포츠와 인권을 두고 경험으로 모국어를 배우듯 그 무게감을 체득한 건 아닐까 한다. 나아가 스포츠 없는 시대에 인권은 존재해도 인권 없는 시대에 스포츠는 있을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깨달은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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