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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nQ Sep 04. 2021

예술로 현실 도피하기

Seoul Mediacity Biennale_Li Liao(李燎)



작년 한 해 동안 함께했던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가 오는 9월 7일부터 11월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됩니다.


대중 미디어에 나타나는 현실 도피의 다양한 양상을 다룬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올해 21주년을 맞이하였는데요. 원래대로 작년 9월에 개최되었다면 20주년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로 1년 연기되었죠.. 저는 올해 런치토크로 함께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토크에서 다룰 주제 '예술로 현실 도피(개입)하기'를 프리뷰 형식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주제를 위와 같이 잡은 배경에 대해 짧게 짚고 넘어가자면, 근무 당시 저는 중화권 베이스 작가님들의 엔트리(소개글)를 담당하였습니다. 그중 오늘 함께 살펴볼 리랴오(b. 1982)는 제가 가장 관심 있게 리서치했었던 작가이기도 하고, 아래 작성한 것과 같이 토크 주제와 가장 부합하는 작가란 점에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리랴오는 중국 선전 기반의 멀티미디어 예술가로, 일상 상황 속의 부조리와 관습이 충돌하는 순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한편, 많은 경우 자신의 몸, 가족, 개인적 경험을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작가는 영상과 설치는 물론 퍼포먼스와 행위를 통해 이상과 욕망, 지각과 현실, 공공과 개인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상에 가치를 매기는지를 실험하고 측정한다.
                                                                                                          ---작가 소개글 인용



A Slap in Wuhan, 2010, performance documentation, video, 5 min. 9 sec. Courtesy of the artist



이번 비엔날레 <원 데이 앳 어 타임>은 도피주의를 매개로 사회정치적 화두(인종, 젠더, 계급, 정체성, 젠트리피케이션, 폭력 등)에 개입하거나 대항하는 대중 미디어의 흐름과 관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피주의라는 단어는 종종 부정적인 뜻으로 인식되어 왔음에도,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도피주의를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반전의 도구로 바라볼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죠.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아래 리랴오의 작품 또한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분류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미시적으로 개입하기


예술은 빈 껍데기이다 <Art is Vacuum>, 2013

Exhibition view of Art is Vacuum, White Space Beijing, 2013 © White Space Beijing


이 작품은 리랴오가 현재의 아내와 연애시절 중 어느 날,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찾아와 자신을 예술가라는 이유로 무참히 비난하고 교제를 반대한 것에서 출발하는데요. 여자 친구가 떠난 후, 자리에 남아 멍하니 고민하던 작가는 이 과정을 하나의 작업으로 담아보면 흥미로울 것 같은 생각에 다시 여자 친구 집으로 향하게 되고, 가족들과 언성을 높이며 나눈 대화를 녹음하게 됩니다. 전 대화 중 "넌 그저 텅 빈 존재일 뿐이야, 우리는 모두 속물이고"라는 한 마디가 인상 깊었는데요. 이 문장에 내포된 자신(예술가)의 사회적 신분, 그리고 작업의 '결과물'이 가져다줄 '경제적 효과'에 대한 예비 장인을 비롯한 사회적 여론이 자신을 향한 의문을 포착하게 되죠.  


이후 이를 리얼다큐로 작업해 2013년 Hugo Boss Awards에 선정된 리랴오는 상금 4만 위안을 예비 장인에게 전달하며 사건이 일단락되는듯하지만, 이후 결혼과 딸을 낳으며 이들의 관계는 극에 치닫게 되고, 최종적으로 태어난 딸이 첫마디로 "예술은 빈 껍데기다"를 내뱉으며 3년간 진행해온 일련의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습니다. 이러한 스토리를 듣고 나면 사진  작품명을 명시한 레터링과 작가 가족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당히 모순적임을 알 수 있는데요. 나아가 보이진 않지만 "예술은 껍데기다(艺术是真空)"라고 반복되는 딸의 오디오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로 탄생한 작업 결과물이자 희생된 딸의 인권과 윤리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음을 작가는 말합니다.





소비 <Consumption>, 2012


2012년, 아이폰 생산공장으로 알려진 Foxconn(폭스콘) 직원들의 자살문제가 ABC News를 포함한 각국 주요 언론들에게 줄줄이 보도되면서,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시급과 주 6일 근무제 및 미성년자 고용과 같은 해당 기업의 노동력 착취 문제가 많은 이들의 몰매를 맞던 시점이 있었죠. 하지만 이때 리랴오는 그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마침 중국 선전에 거주하고 있던 작가는 이른 아침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기나긴 대기줄을 기다리지만, 생각보다 면접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놀랬다고 하는데요. "신체적으로 큰 이상이 없는 이상 무조건 합격인 듯했다"는 그의 말처럼, 몇 가지 질문과 신체검사 후 리랴오는 A.O.I. 부서(용접 전 자동 광학 검사 구역)에 배치됩니다. 점심시간 2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씩 연속 근무를 총 45일간 경험한 그는, 일급을 한데 모아 16기가 용량의 아이패드 mini를 구입하고, 뒷면의 자신의 이름과 사원 번호를 각인해 그 노동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선보인 전시장의 벽면 한켠에는 공장 근무 당시 리랴오의 작업복 및 폭스콘 사원증 그리고 다른 한켠에는 자신의 노동 산물로 볼 수 있는 아이패드를 놓아두었는데요. 즉, 45일간의 업무와 한 생산품의 동등 가치를 말하는 동시에, 이것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 신분의 동등성이 과연 노동력 착취 문제가 세상에 탄로 난 후에도 여전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hibition view of ON | OFF: China's Young Artists in Concept and Practice, 2013 © UCCA


Inside Apple's iPhone Factory In China (Foxconn), 2021 ©VISION




2. 미시적으로 도피하기


앞서 살펴본 두 작품은 작가가 주목하고 있던 사회적 이슈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현실적인 사안에 대하여 미시적인 접근을 보인 작업이라면,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그와 완전히 상반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중국은 한국의 설날과 동일하게 Chunjie(春节)라는 명절을 보내는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랴오 또한 명절 기간을 맞아 맞벌이 생활로 인해 2년간 찾아가질 못했던 고향 우한을 오랜만에 방문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9년 설날 연휴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었죠. 또한 중국 우한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확진자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한때 '우한 바이러스'라는 워딩이 꼬리표로 따라붙게 됩니다. 애석하게도 리랴오와 그의 가족은 위험지역에 자진해서 들어간 격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곧 락다운이라는 공포스러운 봉쇄령으로 인해 집안에 그대로 갇히게 됩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후로 런던이나 다른 몇몇 유럽 국가에서도 간헐적 락다운을 시행하면서 이 단어가 비교적 익숙할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봉쇄령', '락다운', '우한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공포심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래 중국 매체의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 또한 초반에는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수치에 두려웠으나, 우선은 공신력 있는 보도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한은 1960-70년대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통행료를 발행받지 않고는 직장도, 학교도, 심지어 슈퍼에도 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와중에 어떻게든 외출 사유를 제출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시도했다고 해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리랴오는 예술가로서 기지를 발휘합니다. 바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담아낸 여러 작업들을 제작한 것이죠. 위 인터뷰 영상 썸네일에도 나와있듯이, 텅 빈 도로 위에서 마치 외줄 타기를 하듯 중앙선을 따라 긴 막대기로 봉지 옮기기,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한 장즈강에 발을 담그며 무의미한 스마트폰 웹 서핑하기, 비누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거품을 내며 손 씻기 등... 공포심이 분노로 전환되었다가 나중엔 걱정과 두려움을 거쳐 다시 평정심을 되찾게 될 때까지 작가의 전반적인 감정 기복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Fengshows 《名人面對面》에서 진행한 리랴오 인터뷰, 2020




참고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타 비엔날레와 달리, 설치, 영상, 퍼포먼스, 뉴미디어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는 점이 주요 특징입니다. 위의 매체들은 작품 자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회화나 조각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오늘 살펴본 것과 같이 그 안에 담겨있는 작가의 작품세계나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어떻게 작가와 내가 마주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 또 작품 시퀀스, 위치, 주변 환경면에서 전시장에 그렇게 디스플레이해두었는지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다채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다들 주말 잘 보내시고, 9월 7일부터 시작되는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팟캐스트 '한 점 하실래요? 로고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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