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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unQ Oct 09. 2021

좋아하는 일에 대한 뚝심

84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건네는 말




넌 연봉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오랜만에 친구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예상치 못한 질문이 던져졌다. 처음엔 그저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꺼낸 말이겠거니 했지만, 술을 한두 잔 걸친 우리는 이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포즈를 취해 진지하게 답을 이어갔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 유치원 교사가 하고 싶었던 컨설턴트 친구부터, 게임회사 기획자로 재직 중인 친구는 통통 튀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다며 돌연 패션 MD를 꼽았다.


음 글쎄. 난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할 것 같은데? 살짝 오른 취기에 별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나를 바라본 친구들의 눈빛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분위기에 휩쓸려 기억이 왜곡된 거 일수도 있겠지만 분명 동경의 눈빛이었을 터. 이후 현재 직업에 만족해하는 내가 부럽다며 띄워주는 말에 어깨가 한껏 으쓱해진 나는 집으로 향한 택시에서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 말이 진심이었을까 하면서.




잘난 척이란 동기부여


예전 유퀴즈 겨울방학 특집을 보던 중에 한 인문학 교수가 자신의 지식에 감탄하는 조셉을 보고 인문학자들은 다 잘난 척하는 맛에 살아요라며 겸손을 보인적이 있는데. 이 말은 당시 꼬일 대로 꼬인 석사논문으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다시 수면 위로 건져내 준 소중한 한마디였다. 그 외에도 여럿 공감되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나를 포함한 인문학자 선생님들은 대부분 척척 석박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연봉과 명예로 연결시키긴 참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 우리는 소위 '잘난 척'을 동기부여 삼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관심분야를 공유하고, 이들의 공감으로부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며, 집에 돌아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묵묵히 각자의 학업/연구/프로젝트를 지속해왔다. 엉덩이 무겁게 공부하는 게 정답인 것 마냥.


특히 필자가 종사하는 예술계는 정말 세상의 모든 고학력자들이 모인 총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단적인 예로 인턴(또는 계약직) 채용 지원자격에 석사 졸업이 필수인 분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람들이 이 같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에 매료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찰나에 한 영화 포스터에 시선이 멈추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할아버지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그를 담은 <호크니>




어디를 가든 이젤과 함께


1937년 요크셔에서 출생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낙찰가를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그전부터 그를 눈여겨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호크니의 오랜 친구이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큐레이터였던 헨리는 막 성인이 된 호크니를 찾아가 러브콜을 보내며 관계를 유지해간다. 이렇게 미술관과 갤러리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그는 그리는 족족 판매가 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작품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 고뇌의 흔적들은 초기작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화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David Hockney, 1972



더 큰 물보라 A Bigger Splash, David Hockney, 1967, Tate


추상화 열풍이 불었던 1960년대, 호크니를 제외한 동료 화가들의 캔버스에서는 구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뚝심 있게 구상화를 고집하던 그는, 동료 작가들의 조롱에도 꿋꿋이 자신의 화풍을 이어갔다. 이는 추후 자신의 지인을 담은 초상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익히 알려진 부모님의 초상화부터, 친구 그리고 쓰라린 이별을 겪은 연인 피터를 담은 수영장 시리즈는 그의 작업 절정기에 달하는 결정적인 시리즈로 각인된다. 여담으로 그는 친구들과 작업할 때 매다 항상 흑백 사진기로 그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이를 보던 클락 부부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어차피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배경과 색으로 채색할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색감에 구애받지 않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그의 세심함은 각 수영장 시리즈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수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밝은 파란 빛깔의 수영장에 누가 금방이라도 뛰어든 것 같은 <더 큰 물보라>(1967)에서는 튀어 오른 물을 하얗게 표현한 것을 제외하고는 단색으로 처리하였고,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1971), 그리고 <화가의 초상>(1972)에서는 햇빛 아래 일렁이는 수면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작가의 말에 의하면, 햇빛이 강했던 캘리포니아를 표현하기 위해 날이 좋을 때는 흰 선 대신 노란색으로 채색을 했다고.




팔순에 아이패드를 들다



Keep calm and carry on drawing



2020년 런던의 길 한복판에 익살스러운 문구가 담긴 광고는 2020년 영국 Tate Britain에서 선보였던 호크니의 80세 기념전 광고이다. 해당 전시에서는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 시리즈를 대거 새롭게 선보이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전까지 붓, 연필, 사진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와 도구를 사용해온 그는, 2009년부터 아이패드를 이용한 드로잉 작업을 선보이는데. 사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길 어려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 반면, 여든이 다 된 할아버지가 아이패드로 작업한다니! 사실 호크니는 이를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단 작업도구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노년에 고향 요크셔에서 작업 중이던 그는, 아침에는 이젤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 붓으로 작업하고, 밤에는 집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패드로 그리며 색다른 재미를 발견한다. 심지어 작업 초기에는 매일같이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꽃 드로잉을 보냈는 걸 보면, 신문물에 대한 흥미가 상당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캔버스와 달리 무한 수정이 가능하고, 또한 작업 기록을 동영상으로 바로 훑어볼 수 있는 점은 매번 붓칠로 수정을 반복해오던 그에게 있어 정말 매력적인 기기가 아닐까 싶다.


전반적으로 호크니를 보고 있음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작업에 대한 열정은 막 RA 재학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일뿐더러, 동그란 뿔테 안경과 여전히 장꾸미 넘치는 그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 알록달록한 패션은 이제 호크니 하면 떠올리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처럼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예술가들을 보면, 큐레이터는 자연스레 이들을 발굴하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컬렉터는 작품을 소장하면서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먼발치에서 응원하게 되는 수밖에.




오늘은 러블리한 워커홀릭 할아버지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 각자의 삶에 있어 어떤 요소들이 동기 부여되는지에 대해 나눠보았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다음 에피소드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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