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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정 May 27. 2024

동창이 있는 방

산에 기댄 한 시절

어둠과 적요 속에는 양생의 에너지가 숨겨져 있음이 분명하다. 아무리 소진하였더라도 밤을 통과한 몸에는 새로운 힘이 다시 채워져 있다. 매일의 재생이다. 새벽 어스름에 주방으로 가서 물을 튼다. 조식으로 먹을 과일야채 등속을 씻고 계란을 삶는다. 흐르는 물소리, 끓는 물소리, “탈깍” 가스레인지 점화음에 귀가 깨어난다. 푸른 불빛에 바짝 정신이 든다. 잠들었던 빛과 소리가 현현顯現하는 시간이다.  


주방 뒤편에 나만의 서재, 오랜 꿈이었던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 동창이 있어 아침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이 방에서는 앞을 가린 건물들 사이로 드문드문 이어지는 산줄기와 멀리 청량산 봉우리가 보인다. 그 봉우리 너머에 ‘버팀’과 ‘굴욕’의 상징으로 역사가 기록한 남한산성 행궁이 있다.


중년의 한 사내가 거기 웅크려 있다. 내 마음속 행궁에는 400년 전 모습 그대로 추위와 눈과 적군에 둘러싸인 임금님이 여전히 살아 계신다.

 

병자년의 한겨울이었다. 닥쳐온 청의 군대를 피해 인조와 조정은 황급히 이곳으로 피난하였다. 충심은 하나였다지만 믿는 바가 달랐던 신하들은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그동안 백성은 헐벗고 얼고 굶주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임금님은 전전반측, 불면의 밤만 지샜다.


많은 이들이 인조를 일컬어 조선의 희망을 땅에 묻어버린 최악의 치욕적인 왕이라 하고, 어떤 이는 연속된 난관과 압도적 외세를 맞닥뜨려 나름 고군분투했던 인물이라 평한다. 한겨울 저항은 마침내 적장 앞까지 걸어가서 크게 엎드려 세 번 절하는 것으로 끝이 났으니, 누구는 항복의 비굴함에 방점을 찍고 누구는 항전의 버팀에 의미를 둔다.


동창 앞에 책상을 두고 일에 파묻혀 지내는 동안, 내 삶에도 혼자만의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떨치고 나가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열망과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계속 가족의 버팀목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만 하고 있었다.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 번 엎어쳐지고 메쳐졌다. 원인을 제공한 사건들, 상처와 고통을 준 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속에서 자주 포탄이 터졌다.


눈을 들어 청량산 봉우리를 바라볼 때 문득문득 행궁에 엎드린 인조의 모습이 떠오른다. 살아가는 일이란 밀려오는 어려움을 하나씩 도장 깨기하듯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배웠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증오와 분노로 얽히고 설킨 한가지 매듭을 어쩌지 못해 여러 계절을 옴쭉달싹 못하고 있었다. 선택장애에 걸려 세상에서 가장 우유부단한 임금님이 되었다.

 

그날 새벽에도 나는 주방에서 흐르는 물, 끓는 물, 푸른 불빛과 한참을 머무르다가 뒷방 서재 문을 열었다. 창문이 온통 막막한 회색이었다. 짙은 새벽안개에 산줄기도 봉우리도 가려져 있었다. 진회색에서 그냥 회색으로 다시 연회색으로 변해가는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차츰 안개가 물러갔다.

 

그때였다. 탈깍, 소리가 났다. 작지만 분명한 찰나의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대체 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가 바뀌었다.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무겁던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힘에 의해 스위치가 눌려 반대편으로 넘어간 것 같기도 했다.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 것은.


두 갈래 길 앞에 마냥 주저앉아 한 시절이 지나갔다. 이제 나는 몸을 돌려 세운다. 선택 자체를 포기하고 흐르는 상황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어느 날엔가는 저절로 이뤄지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두 갈래 길 앞에 머무르지 않기로 했다. 변하는 것은 없다. 있었던 일들과 벌어진 상처와 갈림길은 여전히, 어쩌면 내가 죽는 날까지 거기 있을 것이다.


다만, 나쁜 기억들을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기로 했다. 미지의 새 길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대처법을 배운 것일 수도 있고 또다른 형태의 회피일 수도 있겠다. 매듭을 풀 수 없어 매듭을 싹뚝 잘라버렸던 서역의 왕처럼, 짐을 모두 내려놓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처럼, 더 이상 전장에 머물지 않기로 했더니 전쟁의 소란이 귓전에서 멀어졌다.


우리 아파트 후문 앞으로 남한산성 옛길이 지나간다. 그 길을 따라가면 행궁에 이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맘먹고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앞을 가린 건물들이 사라지자 이제까지 드문드문 점선으로만 보았던 산줄기가 일순에 전모를 드러냈다.

 

“그동안 내가 저 산에 기대어 왔구나.” 문득 깨달았다. 쉬이 사람에게 걸지 못했던 마음을 저 산만은 받아주었던가 . 자신도 모르게 산에 의탁한 덕분에 나는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었던가. 그래서 마음 스위치를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태 산은 풍경일 뿐이었는데 정체가 드러나니 우뚝 버틴 거대한 원군이었다. 재생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었다.


웅크렸던 임금님의 마음도 다시 살아났을까. 무엇이 이긴 것이고 무엇이 진 것인지 답해 줄 수 없는 세월을 지나온 한 사람이 서서히 등을 펴며 일어선다. 저기 제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는 한 사람을 보라.



# 2024, <동서문학20호-그냥 가만히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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