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명이 작동하는 방식

2013.01.27

by 강이정

지금까지의 생애 전체는 벗어나고 싶은 정체된 상태였다.

맴맴도는 듯한 나선형의 반복형 진전은

내가 선택한

인간을, 삶을, 영혼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는 이 자리에서

이번 삶의 운명이 작동한 방식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얻는다.


고립되고 정체된 한 영혼은

어떤 식으로 감옥 속에서 빛을 찾아내고 길을 만들어냈는가.


마음의 감옥에 갇혀버렸던 열일곱 살엔 자주 산에 올랐다.

새벽산, 무녀들의 징과 꽹과리 염불소리가 요란했고,

바다 건너 해안을 따라 길게 펼쳐진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복적으로 <열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본시 한없이 가볍고 명랑했던 내 영혼에게 주어진 이 모든 형벌은 "추"라는 것.

우주로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영혼을 지상에 묶어두기 위한 장치라는 것.

지구별의 삶에서 스스로 열쇠를 찾아

스스로의 힘으로 미로감옥을 열고 나가야 한다는 것.

"열쇠는 무엇일까" 수없이 중얼거렸다.


오후 늦게 산에 올라 저녁 어스름에 길을 잃고 헤매다

신학대학 건축예정지까지 흘러들어 간 어느 날,

붉은 황톳길에 서서

멀리 산 중턱 산사가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을 우두커니 정처 없이 ,

오래 바라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마음에 박혀 여전히 가끔 되살아나곤 한다.

길 위의 삶, 그 등 시림과 서러움을 깊게 예감하던 시간..


하루의 절반 이상 잠을 자고 깨어 있을 땐 멍하니 꿈을 반추하는 생활 속에서,

꿈은 현실보다 또렷하고 현실은 몽롱하고 나른했던 나날들...

그 침잠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고선 모를 끔찍함.

공기대신 검은 흑단나무가 공간을 메운 지옥 속에 굴을 내며 기어가는 꿈을 꾸었다.

소리도 전달되지 않는 땅속에서 공포와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빛나야 할 나이에 응달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던 열일곱 살의 나는

두 번째 봄비 지나면 잎사귀가 돋고 꽃잎이 피어나는 이치,

슬픈 눈을 가진 개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다.

내 방 앞 감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의 내게 사소한 모든 사건과 변화는 상징이었고 은유였으며 암시였다.

서점에서 문득 펼친 책 속 페이지에서

골몰하던 의문의 단서가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인간의 눈은 세상의 수많은 기호와 표지판 중에서 오로지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알아차린다.

그 기호와 표지판을 따라가면 자신만의 길이 생기고 지도가 그려진다.

귀는 우주의 온갖 소음 중에서 자기에게 맞는 소리만을 찾아내 엮어서

음악을 만들어 낸다.


세상을 배워가던 고등학생 시절에 굳게 마음먹은 한 가지가 있다.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고 맨몸으로 부딪혀 세상을 배워가겠다.

온전히 내 것인 지도와 그림을 그려내겠다."

어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길 위의 사람이 되겠다"

그때의 결심들이 이후의 내 삶에 원칙이 되었다.


서른셋이 되었을 때, 이제는 집을 가지고 싶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등을 켜고 오래 나를 기다린 산속 어딘가의 집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마흔넷, 길 하나가 갑자기 다가왔다. 어쩌면 남은 평생 가게 될지도 모를 길이었다.

길거리벽보에 붙은 문구 한 줄에 이끌려 운명을 뒤바꿀 분야에 접어 들었다.

아파트 게시판의 작은 정보 한 줄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길을 제시해 준 것이었다.

줄탁동시의 힘이 저절로 인도해서,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존재를 둘러싸고 있던 뿌연 막을 스스로 찢고 나와 다리를 건너고

다시 허공을 걷는 사람이 되기까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든 것은 꿈같고 기적 같은 일이다.


이제 내가 살아온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때가 되었고, 감옥을 벗어날 것이다.

구깃구깃하게 속에서만 자라난 날개를 펼쳐 삶을 누릴 것이다.

그럴만하다, 충분히 그럴만했다"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

이렇게 될 것을 예측해 본 적 없다.

진실로 절망하면서 안타까운 믿음 하나를 동아줄로 부여잡고 헤쳐온 어떤 지옥.

매 순간, 자신과 운명에 짜증 내고 성질내면서

그래도 계속 살아있기를 지속해 온 방식.


우주는 어떤 식으로 한 인간의 운명을 작동시켰는가.

나는 열쇠를 얻었는가.

이젠 멀리 있는 스승과 제대로 얘기 나눠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문을 열고 나가 버릴지, 다음 코스로 넘어가 볼 것인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도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