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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정 Sep 19. 2024

물을 건너는 法

   1.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 아버지가 현관 앞에서 해사한 웃음으로 맞아주신다. 아버지를 만날 때면 당신의 현재시간이 궁금해진다. 아버지가 바라보는 것은 지금의 나일까, 과거 어디쯤의 나일까.


몇 년 전 봄날, 그 일이 일어났다. <지금, 여기, 나>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낯선 길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건이었다. 몇 년간 막냇동생 집에 머무르며 어린 손녀들을 돌보던 엄마가 이제 곧 본가로 돌아오려는 참이었다. 하루하루가 기쁘고 설레는 날들이었다. 한껏 부푼 마음들이 덧없이 주저앉고 엄마는 잠시의 휴식도 누리지 못한 채, 일생에 걸쳐 이어져 온 돌봄의 노고를, 다시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 머릿속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억이란 놈이, 또렷이 새겨지며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그만두고, 맨 위에 얹힌 새것부터 한 장씩 날개를 달고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천천히 진행되어 왔을 터였으나, 각자의 삶에 분주하느라 가족들 누구도 눈치를 못 챘던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날부터  며칠밤낮을 엎드려 울었다. 어쩌면 기억이야말로 삶의 전부일 수 있는데... 이제 그것들이 사라져 갈 것이었다. 한동안 앓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봤다.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은 딸이었다.      


해사한 아버지 미소 속 마알간 눈빛이 희로애락 지워진 초겨울 아침의 물 같다. 서늘하게 투명한 눈빛에 비추어, 35년 전 그날의 아버지를 본다.


부두 끝자락에 엄마와 우리 삼 남매가 있고 대형 화물선 갑판 위에는 정장과 구두차림으로 코트까지 갖춰 입은 아버지가 홀로 서 있다.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더 젊은, 청신(靑新)한 시절의 아버지다. 화물선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서 엄마와 우리 삼 남매는 고개를 꺾어 한참을 우러러야 했다.


배가 아주 느리게 움직이자 꼿꼿하게 선 자세 그대로 아버지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외부인 출입금지구역인 부두에는 우리 가족뿐이었다. 근무복차림으로 갑판 아래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엄중한 출항의 시간, 가족만의 송별식을 위해 아버지는 이러저러한 수고로움을 미리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이 어색한 세리모니가 어쩌면 나 때문일 거란 것도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내색 없이 감내하고 혼자 해결하는 게 익숙한 나는 맏이였다. 새벽마다 한두 시간 통증이 찾아왔지만 스스로 견뎌내기를 몇 달, 몸과 마음이 무너진 시점에야 문제가 불거졌다. 병명을 찾아 병원을 전전하며 회복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나, 그리고 사춘기의 두 아들, 삼 남매를 오롯이 아내 몫으로 맡기고 떠나야 하는 당신. 그날의 의식(儀式)은 또한 아버지 자신의 두려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본시 허약한 체질에 섬세한 성정을 지닌 아버지는 책과 펜이 딱 어울리는  모습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나는 세상의 온갖 얘기를 들으며 자라났다. 윗대 어른들의 고난, 조선 왕과 왕비들의 비사, 6.25의 기억, 해방 이후 역사와 당대 영웅들의 비극적 운명들을.


아버지가 공무원직을 버리고 선박통신사가 된 후에는, 배를 타며 겪는 흥미진진한 사람과 사건들 얘기가 더해졌다. 내리 십 년 동안 대일무역선(對日貿易船)을 탔기에 한밤중 현해탄을 건너는 스토리가 단골 주제였다. 풍랑으로 요란하게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바라보는 깊고 검은 물에 대한 생생한 표현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세상에서 물이 가장 무서웠다는 아버지였다. 물난리 속에 이웃들이 죽어나가는 소싯적 경험을 기억에 각인한 아버지에겐 5,6일의 항해도 매번 고역이지만 며칠의 항해 후엔 하루 이틀은 자식들과 아내가 있는 집, 따뜻한 아랫목에서 하루 이틀의 휴식이 허락되었고 그것으로 아버지는 매번 다시 힘을 낸다고 했다.      


삼 남매 모두가 중,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이마저도 더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던가. 삶은 무거운 몸뚱이로 아버지를 마구 을러대서 이 장도(長途)의 지점까지 밀어붙여 온 듯 보였다.


배가 수평선을 넘어갔을 때, 가족을 위해 아버지가 자신의 가장 큰 두려움 위를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에겐 세상 모든 바다가 깊고 캄캄한 두려움 –현해탄(玄海灘)이리라. 컨테이너들이 비워진 부두가 황량한 벌판처럼 느껴졌다. 물이 아버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퍼뜩 무서워졌을 때는 울지 않으려 입술을 앙다물었다. 잠시 몸이 떨렸다.


걱정이 기우로 끝나고, 세상을 돌고 돈 물은 1년 후 바로 그 자리에 무사히 아버지를 돌려주었다. 하얗게 은발로 세어버린 머리칼과 구릿빛 얼굴, 동굴 속 수도자가 된 듯 깊고 투명한 눈빛이 난생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아버지는 항해의 빈 시간을 모두 기도로 채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간절한 기도에는 잔인한 응답이 예비되어 있었으니, 당신의 딸이 병명 없는 투병자가 되어 세상에 대한 끈을 놓으려 하고 있었다. 난파의 시작이었다.




    2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물을 건너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얕은 물은 저벅저벅 밟으며 건너면 된다.  영법을 익힌 사람은 제법 깊은 물도 자력(自力)으로 건널 수 있다. 땅과 땅 사이가 가까우면 고마운 다리가 놓이기도 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큰 물을 만나면 배를 타야 한다. 잘 지어진 큰 배는 물을 건너는 사람에게 안전한 여정을 보장한다. 세상의 모든 바다를 돌아보는 풍족한 유람을 누리는 운 좋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가끔 누군가는 작은 나룻배만으로 큰 물을 건너는 운을 만나게도 된다.     

 

열일곱 살에 내가 만난 운이 그러했던 듯하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는 거칠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구명정 하나로 건너야 할 시간이 앞에 있었다. 밀고 밀리며 파도는 순서대로 다가오는 법. 생각을 비우고 어떻게든 물의 끝까지 가보기만 하자, 정해두었다. 비우고 비워 가장 가벼운 몸으로라야 어느 기슭이든 닿을 수 있다는 명(命). 살다 보면 뜻하지 않았으나 그런 명을 받아 들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비바람에 숨 막히는 날들이 있었다. 천둥번개에 까무러칠 때, 폭풍은 자세를 바꾸어 더 낮은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엎드려 비천한 등을 보여주면 되는 일. 입술 깨무는 치욕도 두려워할 것 없다. 옛이야기 속에는 발등을 관통해 땅속까지 칼을 꽂아 폭풍에서 자신을 지켜낸 무사도 있지 않던가. 견뎌낸 시간 끝에는 이윽고 물 위에 비친 내가 보이는 날도 온다. 깎이고 바래고 허물처럼 벗겨진 상처 위로 세월이 쌓이면 언젠가는 그 흉터가 제법 그럴듯하게 멋진 무늬로 보이는 날도 온다.     

 

20대와 30대의 삶이 그렇게 흘러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만 공부하고 일했다. 꿈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통증과 비참과 비굴을 삶의 주제로 삼아도 사람은 배울 수 있다. 「이 속을 관통해 낼 수 있다면, 끝까지 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내 기도는 오직 그것이었다. 왜 하필 내가 이 바다에 던져져야 했는가, 따져 묻다가 미로에 빠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하늘에 대고 따지기를 그만둔 것이. 몸에 지닌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물에게 내어 주기 시작했다. 깊숙한 곳에서 넣어둔, 가장 무겁고 소중한 뜻까지 버렸을 때는 팔 하나를 내어주듯 서러웠다. 모든 것을 포기하되 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망연(茫然) 한 시간이 흘렀다.


오래 물을 들여다보았다. 물속에 하늘이 있었다. 무리지은 새들과 혼자인 새들, 그들이 허공에 그리는 길들이 보였다. 또 내가 물에 비쳐 보였다. 그것들 하나하나를 읽어내며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알아보았다. 물에 던져진, 판자 하나에 간신히 매달린, 익사 직전의 사람들. 점점의 섬처럼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사람들.


나의 불운은 고유한 나의 것인 줄만 알았으나 알고 보니 사람들은 각자의 바다에 각각의 이유로 던져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을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생각했다. 이제껏 사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믿어본 적은 없었으나 길을 찾는 이에게 등대, 지도, 나침반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울고 싶은 사람이 기댈 작은 벽이라도 되면 좋을 것 같았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불혹(不惑)이라 불리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 끝에 새롭고 낯선 노(櫓) 하나를 손에 쥐게 되었다.


한때는 광폭하였고 지금은 잦아든 나의 바다에 여전히 크고 작은 파도는 다가오고 태풍의 시절도 피할 수 없다. 다행히도 노를 장착한 배는 제멋대로 이리저리 방향을 틀거나 제자리 맴맴 도는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버티며 뻣뻣하던 몸에서 힘을 빼고 흔들림에 나를 맡겨 보라. 흔들림과 하나가 되면 더 이상 그것은 흔들림이 아니더라.





     3

어쩌면 애초에 아버지가 그 배를 타지 않았어도 우리 가족은 그럭저럭 괜찮았을지 모른다. 무거운 짐을 당신 홀로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어도 삼 남매는 어떻게든 각자의 길에서 미래를 꾸려나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젊은 날 흉중에 품었던 어여쁜 뜻 따위 딱 접어버리고 아버지가 배에 오른 것은, 두려움에 자신을 내어주고 뒤돌아보는 법 없이 실려 흘러간 것은, 아비 됨을 받아들이는 당신의 가장 낮은 자세였는지 모른다. 덕분에 아버지의 바다가 순리(順理)로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바다는 순하게 세월을 견딘 아버지를 평온한 기슭에 내려 주었다.     


편안한 자세로 뭍에서 볕을 쬐는 아버지는 바라보기에 참 좋았는데, 그 평화가 아주 오래가길 기도했는데, 이제는 시간의 강물에 기억을 접어 하나씩 띄워 보내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오래 쌓아온 탑은 맨 꼭대기부터 서서히 허물어지고 머릿속 삶의 흔적은 새것부터 지워진다.


어제 본 뉴스와 요즘 드라마 얘기는 더 이상 아버지와 나누기 힘들다. 새로운 기쁨, 새로운 슬픔은 이제 오롯이 나만의 몫이다. 대신 나는 아버지가 어린 내게 들려주었던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새 소식처럼 나누며 아버지와 나는 깔깔 웃는다. 아직 아버지와 마음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다행이다.  

    

한 사람 생애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는 건, 다음번 항해를 위한 준비라고 여기기로 했다. 새로운 항해를 위해서는 배를 비워야 하므로. 그렇게 맘먹고 난 후, 아버지의 노쇠와 망각을 조금 덜 슬퍼하게 되었다. 수많았던 표정들이 하나씩 지워져 갈수록 아버지 눈빛은 말갛게, 순하게 투명해진다. 잠잠하게 파도가 가라앉은 물을 바라보는 듯하다.   

   

50을 넘긴 내게 하늘이 묻는다. 「너는 지천명(知天命)하였는가」 나는 나의 명을 알았을까. 답을 궁리하며 물끄러미 물을 바라본다. 「내가 떠돌았던 그 바다가 온전히 내 몫이었다는 것을 알아요, 이제 물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버지...」 눈을 들어 내가 노 저어 가는 배가 닿을 기슭이 어디쯤 일지 가늠해 본다. 그리고 다시 나의 물을 본다.



#나의 첫 수필

#2020 제15회 동서문학상 수필부문 수상작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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