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집≫ 권 6. 소(疏)를 읽어보면, 퇴계 이황은 상소문에서 ‘왜국의 사신을 끊지 마소서’라고 썼다. 사람들이 “오랑캐는 짐승이다.”라고 말하지만, 오랑캐 역시 사람일 뿐이라고 적었다.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나라의 위치로 볼 때 이웃과 잘 지내야 함을 뜻하는 말이다. 퇴계는 자국의 안녕과 평화 유지를 위해 그들을 어르고 달래 친교를 맺을 것을 강조했다. 이때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정확히 47년을 앞둔 시기로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외교정책을 강조했던 퇴계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전쟁 당시 좌우로 갈라져 서로 죽고 죽일 때 우리 동네 소작농 돌쇠는 인민 위원장이란 완장을 차고 자기 지주를 고발해서 죽게 했다. 세상이 시끄러워 피신한 지주를 찾아낸 돌쇠가 순경을 앞세우고 가서 총부리를 겨눴다. 또 우리 집 돌쇠는 "서방님 목숨을 살려 드릴 테니, 강가 밭 서 마지기만 저를 줍시오."라고 목숨을 흥정하여서 밭 600평 양도 자필을 받고 몸을 숨겨 주었단다.
휴전 협정이 되자 서방님은 행방불명인데도 불구하고 자필 문서를 갖고 왔으니 속절없이 밭을 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어수선하면, 배반의 돌쇠는 꼭 나타나기 마련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청문회를 보면서 중립을 지켜야 할 법사위원장에게 그 돌쇠의 데자뷔가 어른거려서 섬찟했다.
청문회장은 광란의 무법천지였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던 돌쇠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원님 나팔 불듯이 증인을 엎어놓고 모욕주기와 망신 주기 호통으로 때려댄다. "토 달지 말고 사과하세요. “
"오늘 사표 쓰고 책임질 의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
"토 달지 말고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세요."
"사단장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국회 법사위원장은 그렇게 대단해서 그렇게 감히 고압적인가. 증인을 불러놓고 죄인 다루듯 하는 건 어느 나라 법일까.
"아닙니다." 하면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렇게 답정너라면, 자기가 쓴 창작 소설대로 읽고 나서 ‘땅 땅 땅’ 치면 될 것을 12시간이 넘는 무소불위의 행동은 왜 하는가.
결국 "10분간 나가서 반성하고 오세요."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도 아니고 이 무슨 무지몽매한 돌쇠의 짓거린가.
세상은 돌고 도는 법! 오늘 좀 지지자가 많다고 당장 무슨 권력을 잡은 건 아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돌쇠의 반란을 목격한 국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증인으로 나온 분들도 모두 집에서는 하늘 같은 가장이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 신분으로 사단장이다. 그런 분에게 인격적 모욕을 그렇게 유치하게 퍼붓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낄까? 과연 그렇다면, 그는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
지금 북·러 동맹으로 심각한 시점이다. 다수결 원칙에서 거수기 몇 개 더 가졌다고 마냥 만용만 부릴 때가 아니다.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기지를 잘 이용하여 나라 안팎의 안전을 위해 상의하고 대책을 세울 때다.
퇴계는 선조 임금이 막 정치를 시작하는 시기에 임금께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라는 소를 올렸다.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대표적인 조언 서(書)다.
돌쇠의 반란처럼 어처구니없는 이슈로 마음을 흐리게 하면 정사를 바로 볼 수 없다. 임금이 잘 다스리도록 조언하고 백성이 믿고 따라야 태평성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