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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금보 Oct 13. 2020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개소리

회사에서 피해야 할 인간군상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고등학교 때 이 말을 듣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었다. 수학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을 때 들었던 이 말에 ‘공부를 즐겨야 되겠다’고 결심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장비 구입. 대형 문구점으로 향했다. 


노란색 옥스퍼드 공책을 사고 당시 중고생들의 잇템이었던 하이테크 0.3mm 펜을 색깔별로 구매했다. 


좋아하는 가수 CD를 사려고 한두 푼씩 모은 돈 전부를 가지고 문구를 샀다. ‘수학의 정석’을 씹어먹겠다고 결심하면서.


결론은 대실패. 문과 인간의 ‘수학의 정석’은 언제나처럼 집합에서 멈췄다. 하나에 3천 원짜리 일제 펜은 절친과 교환일기 쓸 때나 유용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안 듣느니만 못하게 돼버렸다. 그 말을 몰랐다면 사려고 별렀던 CD를 제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뒤 나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았다. 지구과학과 물리에 약했지만 오기 부리는 대신 그나마 더 잘했던 화학과 생물을 선택, 집중했다.


수학 점수가 형편없었지만 반타작하는 수준만 유지하며 외국어영역에 올인했다. 수학 때문에 수도권도 힘들 거라 절망했던 난 언사외 점수만 반영하는 대학교와 과를 찾아 무리 없이 인서울했다.




어릴 때 피하는 법을 터득한 바람에 매사에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돌파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지금까지 그러고 있다.


대학 진학 후 술을 잘 못 마셔 술자리 세팅과 고기 열심히 굽기, 취한 동기 뒤처리 같은 것들을 도맡았다. 술이 몸에 들어가 괴로운 것보다 몸도 마음도 편했다. 


이 스킬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통했다. “술은 마실수록 느는 거야”라는 꼰대 선배의 말에는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요. 어머니께서 과거에 119에 실려가셨답니다”라고 태생을 들먹이면 됐다. 


그럼에도 술을 권하는 패악을 부리면 주량 이상을 마셔 인사불성이 되거나 선을 넘는 추태를 (일부러) 부리면 대체로 더 이상은 술을 권하지 않았다. 


술을 받는 대신 고기를 굽고 소맥을 타고 취한 사람들의 흥에 맞춰 적당히 텐션을 올리면 된다.




그런데 돌아보면 사회생활에서 술을 피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피할 수 있을 때 꼭 피해야 하는 건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다. 


상황이야 닥치면 피하기 힘들지만, 사람을 피하는 건 예방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학교에서보다 다양한 상식 밖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이간질하는 직장 동료, 이유 없이 누군가를 따돌리려고 없는 말 만들어 욕하고 유언비어 퍼뜨리는 선배, 후배가 애써 만들어낸 기획안의 작성자를 슬쩍 자기 이름을 끼워 넣어 제출하는 얌체 사수, 물티슈나 커피 같은 회사 비품 야금야금 훔쳐가는 옆자리 직원, 업무 시간에 대놓고 야동을 보는 선배, 결혼 후 첫 명절을 맞는 직원의 이름을 추석 당일 당직표에 적어 넣는 상사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주변인들을 경악하게 하는 빌런 등등. 피해야 할 사람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어느 정도 ‘짬’이 생기면 사람 보는 눈을 얻는다. 피해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조금만 겪어보면 ‘각’이 나온다. 


엮이지 않도록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같이 점심을 먹거나 업무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는 정도로 적당히 상대하되 선을 지킬 것. 


특히 남을 험담할 때 같이 욕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맞장구를 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 남 얘기를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회사 다녀보면 안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당장 집에서 엄마랑, 전화로 남자친구랑 하는 얘기의 태반이 남 얘기다. 학교 다니는 학생이나 직장 다니는 어른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똑같이 유치하다.  


모르는 사이 은근 파가 나뉘고, 섞이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아싸’가 돼있다.


자신이 타인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사람이거나, 직장 내 성공에 대한 큰 야망이 없거나, 남의 평판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생들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약간이라도 성공에 대한 야망과 인정 욕구가 있으며 회사 내 평판에 예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 얘기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니, 어른이 돼도 끊을 수가 없다. 다만 욕을 함께 하는 사람은 매우 신중하게 잘 골라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는 게 어린 시절엔 없었던 '성숙함'이랄까.


나는 꽤 오랫동안 한 회사에 다녔다. 알게 된 것 하나, 언제나 공공의 적은 있고, 그 공공의 적 덕분에 나머지 인원은 더욱 끈끈해진다. 


믿을 만한 사람들과 험담을 할 때도 주의할 것은 있다. 화두를 먼저 던지거나 말을 덧붙이는 것은 지양할 것. 어느 순간 ‘OO이 그러는데’로 둔갑한다.




멀리하면 좋은 회사 내 인간군상을 정리해보면,


케이스 1. 사소한 데 불만이 많은 사람. 


함께 돈가스 집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고 가정하자. “여기 좀 지저분하지 않아요?” “가격 대비 좀 별론데요? 튀김옷도 눅눅하고” “원래 돼지고기 별로 안 좋아해요” 같은 말을 계속한다면 경계하자. 


불만은 불만대로 다 털어놓고는 먹을 때 여기저기 잘 흘리고 지저분한 사람은 더더욱. 여기에 책상까지 너저분하다면 그냥 가까이하지 말라.


불만이 많은 사람이 발전한다고들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도 엄격한 사람의 경우다. 


남이 하는 일에 늘 불만이고 자신에게 관대한데 좋은 사람일 가능성은 0.00001%. 꼬투리 잘 잡고, 참을성이 없으며, 책상이 지저분한 사람은 아무리 예쁘고 잘생기고 옷을 잘 입어도 일단 멀리하는 게 좋다.


케이스 2.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가장 짜증 나고 화가 나는 타입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인턴 교육을 해보면 이런 케이스를 정말 많이 만난다. 


한 번 틀려서 수정해준 맞춤법인데 다음 기획안에서 같은 걸 또 틀리면 뒷골이 살벌하게 당긴다. 하지만 단언컨대 신입은 대체로 그렇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신입의 종특이랄까. 


실수의 반복은 누구나 그러니 괜찮다. 두 번까지는. 세 번 이상은 곤란하다.


문제는 이게 신입만의 일이 아니라는 거다. 1년을 넘게 회사를 다녔는데도, 이미 여러 차례 지적을 한 문제인데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나태다. 후배가 그러면 혼내면 되는데 사수가 이런 사람이면 참 곤란하다. 


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이가 나태한 사람이면 그냥 배울 게 없다는 거다. 처음에 일 잘못 배우면 앞으로 사회생활도 고달플 확률이 높다. 고착된 버릇을 개선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운이 없게도 내 사수가 나태한 사람이라면, 눈치껏 다른 선배 여럿에게 틈틈이 물어보자. 


단, 사수에게 “너 얘한테 어떻게 가르치길래 다 나한테 물어보냐?” 같은 말이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수가 못 미덥다면 “지금 OO 대리님(사수) 자리에 잠깐 안 계셔서 그런데,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저 OO 선배 검토해주시기 전에 이거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혼날까봐요." 같은 스킬을 써서 더블 체크하자.


케이스 3. 상습 지각자. 


케이스 2와 일맥상통한다. 잦은 지각이 곧 같은 실수의 반복. 기본 중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흔치 않게 지각은 자주 하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흔치는 않으니 일단 자주 지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색안경 끼고 봐도 무방하다.


케이스 4. 남의 TMI 자꾸 전달하는 사람. 


말을 옮기다 못해 덧붙이는 경향까지 있다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런 사람과 절대 남 얘기를 같이 해서는 안 된다.


“OO 씨 결혼한 지 5년도 더 됐는데 아직 아기가 없대. 딩크족인가?”가 “OO 씨 불임이래”로, 이 사람 하나만 거쳐도 완성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재미’와 ‘과시’다.


“난 이런 거 다 알고 있었는데, 넌 몰랐지? 어때? 재미있지?”


경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첫째, 그 사람에게 내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할 것. 내게서 얻어낼 정보가 없고,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곧 흥미를 잃을 것이다. 


둘째, 그 사람의 얘기에 말을 덧붙이지 말 것. 앞서 말한 것처럼 “걔가 그러던데”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이 상사이거나 잘 보여야 하는 선배여서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면 “아, 정말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적당히만 호응하고 “선배는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세요?”라고 치켜세우는 멘트 정도로 반응하면 좋겠다.


케이스 5. 피해자인 척에 능한 사람. 


제출 기한이 지났는데도 보고서를 올리지 않는 A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A는 왜 아직도 보고서를 내지 않느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어제 김 대리님이 급하게 뭘 좀 처리해달라고 하셔서 그 일 보느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기는 했는데 시간이 좀 많이 모자랐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맞췄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곧 마무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보고서가 늦은 이유는 김 대리가 시킨 예기치 못한 업무였고, 야근까지 해가며 맞추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 내가 늦은 건 김 대리 때문인데 어쨌든 늦은 건 나니까 죄송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기획안을 작성하던 A를 본 김 대리. 하반기 매출 증진 기획안인데 상반기 내용이 쓸데없이 길고 하반기 매출 증진 방안 부분이 빈약했다. 상반기 부분은 지금보다 조금 짧게 요약하고 대신 하반기 개선안에 대한 타사의 구체적 사례를 보충하라고 충고했다. 다음날, A는 과장에게 기획안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 대리님이 상반기 내용 빼고 하반기 내용에 힘을 주라고 하셔서요... 죄송합니다. 수정해서 올리겠습니다.”


분명 조언을 한 것은 맞지만 “상반기 내용을 지금보다 짧게 요약하라”고 했지 “상반기 내용을 빼라”고 한 적은 없다.


자신의 실수를 남의 탓으로 돌려 엉뚱한 사람 멱살 잡는 부류의 인간은 보통 이기적이다. 자기 살자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타입과 엮이면 회사 생활 내내 ‘고통받는 김 대리’로 살게 될 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아니라, 애초 피할 일을 안 만들면 된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무익한 사람만 잘 피하고 걸러도 회사 생활 80%는 성공이다. 결혼식에 그 사람 안 온다고 결혼 못 하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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