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금보 Oct 31. 2020

함부로 나대는 건 위험해

몸은 사리는 거야

일단 부딪쳐.


좋은 말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알아가는 것이 성장이고, 인간은 움직여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갈 수 있으니까.


새로운 것을 남들보다 먼저 접하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호기심 많고 적극적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힙한 식당의 신메뉴를 새벽부터 줄을 서서라도 먹어봐야 하고, 아이폰 신기종을 몇 개월이라도 더 일찍 사용해보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이웃나라로 향한다.


운동화 신상에, 게임 신상 타이틀에, 구찌 S/S 신상 컬렉션에 열광하고, 돈으로 시간을 사 누구보다 빠르게 먼저 경험해보고 싶다고 한다.


마니악한 얼리어답터들이 노예 생활로 열심히 번 돈으로 플렉스 하는 건 매우 건강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 얼리어답터들 덕분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니 타인의 소비 생활에도 유익한 존재들이다.


다만 회사 생활에 있어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른 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고 실수도 한다. 다만 실수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닌지라 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 실수.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호기심이요, 넣어둬야 할 것은 성급이다.


“넌 뭐 궁금한 게 그렇게 많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자.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구글맵이 버벅대는 경험은 한 번쯤 해봤을 거다. 그새를 못 참고 이길 저길 헤매다가 하루 5만 보 걷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기다렸다 구글맵이 반짝 정신을 차리면 다시 방향을 잡고 정석대로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타입이 있다. 전자는 고생을 사서 하는 모험가 스타일, 후자는 합리적인 노잼 스타일.


필자는 여행할 때 전자와 후자의 중간이다. 가야 할 곳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한 뒤 그 방향을 향해 걷되, 현지 분위기를 느끼고자 시간을 들여 골목 곳곳을 둘러보며 산책하듯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낯선 곳에서 몸을 사리면서도 정취는 정취대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여행 초보였을 땐 '노잼 스타일'이었다. 홀로 여행을 즐기다 보니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큰길 위주로 걸었다. 하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그건 여행이 아닌 길 찾기라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지도에서 가리키지 않는 다른 길로 들어서 보기 시작했다.


사회생활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실수하지 말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정석대로 가다가 지루하면 조금씩 변주를 주는 게 지치지 않고 실수를 최소화해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하자. 주목받고 싶고, 인싸가 되고 싶다면 마음만 앞서 조급해지지 말자. 우선 자신이 남들보다 성급하고,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은 스타일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분위기 파악하겠다고 초장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신상을 캐고 다니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는지, 남들과 조금 다른 독특한 차림새를 한 사람을 보고는 굳이 다른 사람을 붙잡고 “저분은 왜 저러고 다니세요?”라고 묻지는 않는지.


“오늘은 뉴페이스인 제가 쏘겠습니다!”라는 말로 관심을 구걸하지는 않는지. 당신은 뒷조사나 하는 무례한 사람이 되거나, 걸핏하면 계산하고 박수 치고 칭찬해주면 계산하는 호구가 될 것이다.


분위기를 살피고, 일단은 나서지 말자. 두어 번 모임을 나가보고 스탠스를 정하자. 존재감이 과하면 그냥 나대는 거다.




회사에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모임은 다음에 안 나가면 그만이다.


예컨대 입사 초반, 살면서 장례식장이라고는 가본 적 없는 신입사원이 직장 상사 부친상 빈소에 간다.


장례식장에서 절을 해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교회를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일단 향은 피웠다.


그런데 절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냥 세배할 때 하던 평절을 했다. 매우 곱게. 앞으로 이 신입사원은 회사에서 '장례식장에서 세배한 걔'로 통하게 된다.


프레임은 참 무섭다. 이직을 하려면 최소 2년은 다녀야 하는데 그 2년 동안 부정적인 편견에 갇히면 망하는 거라 봐야 한다.


신입사원이 괜히 나대면 부정적 프레임을 쓸 확률이 늘어난다. '의욕만 앞서는 애', '되바라진 애', '나대기만 하고 센스 없는 애'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신입사원 환영 회식을 한다고 직장상사가 예약 잡으라고 할 때, 잘 보이겠다면서 "제가 장소 물색해 보겠습니다" 하지 말자.


회사 근처에서 십수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난한 가격의 식당을 찾는 걸 신입이 하겠다고 나서는 게 어불성설이니, 그럴 땐 그냥 선배의 말을 따르자.


회식이 싫다고 티를 내지 말자.


"요즘에도 업무 끝나고 회식하나요? 저희도 낮에 점심 회식으로 끝내면 안 되나요?"라는 말을 하기에 신입사원은 짬이 한참 모자라다. 정 회식에 못 가겠으면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정성을 보여라.


낯선 환경,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간 보는 습관을 들이자. 모르면 검색하고, 물어볼 때도 조심하자. 그동안 자신이 무작정 들이대거나 나서는 인생을 살았다면, 회사에서는 자제하자.


경험한다면서 섣불리 뛰어들 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대지  . 시행착오를 소화하는 효율이 회사 생활의 기본이다.

작가의 이전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개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