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깃구깃한 위로
덕분에 마음이 풀어지는 박상영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이 책 저 책 방황하는 날이 길어지면
베스트셀러 순위 상단에 올라있는
스릴러를 집어 드는 게
나름의 극약처방이었다.
일단 리모컨이나 핸드폰 대신
책을 잡는 습관이 들면
그때부터 조금 어려운 책, 덜 재미있는 책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그렇게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봉제인형 살인사건>을 읽었는데
흠... 이번엔 독서 슬럼프가 레벨업 된 걸까?
아니면 내 취향이 베스트셀러의 궤도에서
엇나가기 시작한 걸까?
둘 다 끝까지 읽기가 고역일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한국 작가 에세이를 잡았다.
김금희의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선현경의 <하와이 하다>
그런데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내 감수성의 바닥을 확인시켜줬을 뿐이고
(문장은 정말 아름다운데
문장만으로는 황폐한 마음이 적셔지지 않았다)
<하와이 하다>는 초큼 심심했다.
아, 정말 재미있는 책 읽고 낄낄대고 싶어.
한 권만 더 시도해보고 차라리 넷플릭스에서 <종이의 집>을 볼 테야.
이렇게 마음먹은 날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잡았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다 읽으....면 좋았겠지만
이 얇고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데도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다이어트 에세이'라는 소개글을
인스타에서 많이 봤는데,
오직 다이어트 수기만은 아니고
좀 독특한 직업과
독특한 몸매와
독특한 성향을 가진 남자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게
얼마나 지랄 같은가를 보여주는
담백하고 깔끔한 에세이집.
김연수나 김영하의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의 자유로우면서도 정돈된 삶에
경탄하게 됨과 동시에
어쨌든 '난 놈'들의 세계에 기죽게 되는데
무절제와 게으름이 체화된
과체중 패션 테러리스트 작가의 삶의 들여다보자면
'에헤이', '쯧쯧' 하다가
어느 순간 힘이 난다.
남들 앞에서 원치 않게 울음이 터졌을 때,
눈물만 훔치고 되돌려줘야 할 것 같은
깨끗하고 반듯한 손수건이 아니라
내친김에 코까지 속 시원하게 펭 풀어버릴 수 있는
구깃구깃 꾀쩨제한 손수건을 받은 느낌이랄까.
만만한 위로.
다 읽고 나선 작가의 생김새가 궁금해졌다.
검색으로 핫팬츠 차림으로 북콘서트에 참석한 사진을 찾았다.
남자판 이슬아인가.
솔직히 나는 현직 직장인이 아니라
직장인과 작가를 겸업하는 그의 애환에 크게 이입하지 못했으나
미혼 직장인이
약속 없는 토요일
혼자서 뒹굴뒹굴 라면 끓여 먹으며 반나절에 읽어버리면
꿀잼일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더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