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떠나요, 둘이서.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던 8월 여름.
재희는 방 안에서 멍하니 창밖에 떠다니는 구름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대단한 포부를 갖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사표를 쓴 게 아니라, 휴식기가 필요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재희는 십 년 가까이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을 만큼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회사를 가는 날만 되면 숨이 턱턱 막혀왔다.
남들 다 똑같이 참으며 다닌다고 스스로를 애써 눌러가며 꾸역꾸역 참고 다녀보려고 했지만 앞이 까맣게 변하면서 길바닥에 주저 앉는 상황이 오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재희는 과감하게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 상사와 동료들은 이제 막 시작인 나이에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리기도 해보고 그녀가 혹시 다른 곳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건지 로또라도 맞았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이유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선택한 퇴사였다.
친구들도 경력이 너무 아깝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렸다.
아깝지. 달려온 시간이나, 눈 앞에 놓인 승진도.
모두가 말하는 부분을 재희라고 모르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자격증을 어마무시하게 따놓은 것도 아니었다.
겨우 턱걸이. 최소한 필요한 것만 준비해둔 게 전부였다. 그나마 특출난 게 있었다면 리더십이 있어서 학생회장을 했다는 정도였을까.
그 덕분에 부족한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서류 면접은 언제나 프리패스였지만, 결정적으로 대면 면접에서 막혔다.
그러다가 합격한 회사에서 신입 사원 시절부터 성실함을 무기로 버텨왔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 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수월하게 잘 넘어갔다.
그렇게 평범하면서 평탄한 생활을 하던 재희는 안온한 일상을 제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래도 경력을 쌓아온 건 어딜 가지 않은지 통장에 적금과 퇴직금을 합치니 일 년 이상은 여유있게 놀아도 될 정도의 돈이 있었다.
집에 퇴사 소식을 알렸을 때, 부모님도 처음에는 말렸지만 결국 그녀의 편을 들어주셨다.
그로부터 퇴사하고 일주일.
밀렸던 영화나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밤낮이 바뀐 올빼미 생활을 하며 눈뜨면 구름 보는 날이었다.
오늘도 느즈막히 눈을 뜬 재희는 배를 긁으며 밥을 먹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일어났니? 밥 차려 줄까?”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나오는 딸에게 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응.”
평일 오후, 엄마랑 둘이 있는 시간은 조용하고 평온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약간 불편했다.
엄마랑 사이가 좋은 편인데도 퇴사하는 순간부터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아마 그건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하는 미안함인 것 같았다.
성인인 딸이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되어 집에서 뒹굴다 못해 엄마가 챙겨주는 밥만 먹고 있으니 철판을 깔고 지내는 그녀라고 해도 양심에 찔린 것이다.
“엄마는 안 먹어?”
어색한 공기를 이길 길이 없어 괜히 한 마디 건네게 된다.
“진작 먹었지. 시간이 몇 시인데. 벌써 두 시야.”
민망해진 그녀는 숟가락에 밥 한 숟갈을 가득 퍼 입안에 욱여넣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의 ‘꼭꼭 씹어 먹어. 체할라.’라는 말이 왜 더 가슴에 막히는지.
배고팠던 배가 더는 배고프지 않았다.
몇 입 먹지도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재희는 식탁을 치우고 물을 마시며 반찬하는 엄마를 흘끗 보았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매일 가족들이 먹는 밥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로 지었다.
반찬도 사흘 이상 가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벌써 삼십년.
어느 새 엄마의 머리 위에 새치가 보이기 시작하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손은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백옥 같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건조하고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게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스물 셋에 결혼을 했다고 했지.’
어린 나이에 결혼해 자신과 동생을 낳고 맞벌이까지 했다.
한창 꽃다운 나이, 피었을 때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도 들고 괜히 짜증과 함께 한숨이 나왔다.
“무슨 일 있니?”
무심코 내쉰 한숨이 또 뭐가 그렇게 걸려서.
내 걱정보다 엄마 걱정이나 하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없어. 나머지는 내가 도와줄까?”
“아니. 너 쉬는데 엄마가 해도 돼. 들어 가.”
왜 엄마는 희생만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그걸 당연시 여겨왔던 자신도 부끄러웠다.
그냥 좀 시키지. 재희는 입을 삐죽 내밀며 엄마를 몸으로 슬쩍 밀쳐 고무장갑을 꼈다.
“요리는 못해도 설거지는 잘 해. 그러니까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고 들어가서 쉬세요.”
거의 쫓아내 듯 엄마를 부엌에서 내보낸 그녀는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 그릇들과 냄비등 닦기 시작했다.
겨우 설거지 하나 인데도 엄마는 딸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고맙다고 말했다.
달그락 달그락.
몇 개 되지도 않는 그릇을 그동안 왜 한번도 먼저 나와서 해드린다고 하지 않았을까.
회사 다닌다는 핑계와 피곤하다는 말을 방패삼은 시간들이 생각났다.
설거지를 마친 재희는 하는 김에 커피라도 한 잔 타드리자는 생각으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믹스 커피를 타서 방으로 갔다.
“엄마, 커피 타 왔어.”
딸이 들어오면 그저 반가워서 웃는 엄마.
“우리 딸내미가 엄마 위해서 타 온 거야? 맛있게 잘 마실게.”
생각해보니 퇴사하고 혼자 드라마나 영화는 실컷 봤으면서 왜 엄마랑은 한 시간 조차 보내지 않았을까.
엄마랑 여행을 다녀온지도 기억이 까마득했다.
어릴 때는 엄마 치맛자락도 놓지 않아 화장실도 가기 어려울 만큼 껌딱지였으면서 어째서 다 자란 지금은 같이 있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자신이 간사하게 느껴졌다.
재희는 이참에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랑 여행갈래?”
딸의 제안에 커피를 마시던 엄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갑자기?”
“나 쉴 때 다녀오는 거지 뭐. 가까운 해외라도 갈까?”
“그럴 시간이 어디있어. 엄마도 휴가철 끝나면 다시 출근해야 하고, 해외 다녀오면 아빠랑 동생은.”
이 와중에도 가족들이 먼저인 엄마의 말에 속에서 울컥 감정이 치솟았다.
이럴 때는 자기 자신 먼저여야지.
휴가철이면 뭐해. 집안 일 하느라 휴가도 못 즐기면서.
“아빠랑 재운이가 애야? 없으면 다 알아서 챙겨 먹어. 가자.”
“그래도 집을 오래 비우기는 좀 그런데…….”
“그럼, 제주도 어때? 전에 바다 보러 가고 싶다고 했잖아. 2박 3일로 가자. 다녀와서는 엄마 어릴 때 살던 곳도 가보고. 전에 나랑 가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어, 어. 내가 바빠도 엄마 생각 해.”
사실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기 보다는 갑자기 떠오른 거지만 굳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 없었다.
엄마가 좋아하면 됐지.
“그러니까 같이 가자. 아빠도 엄마 집에서 일만 하는 것보다 다녀오라고 할 걸?”
거듭된 설득에 엄마가 흔들리는 것 같이 보이자 재희는 팔짱까지 끼우며 부리지 않던 애교를 부렸다.
“떠나요. 둘이서. 모녀 여행으로.”
“그래, 가자. 네 말대로 아빠랑 동생이 3일 정도는 잘 있겠지.”
***
설득 끝에 온 제주도 여행 첫 날.
분명 일기예보는 사흘 내내 해가 쨍쨍하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여행 첫 날부터 비가 주륵주륵 쏟아졌다.
공항에 내려서부터 되는 일이 없어 한숨이 튀어나오기 직전이었지만, 같이 온 엄마를 생각해 겨우 참았다.
“엄마, 바다는 오늘 보기 힘들 것 같은데 다른 곳이라도 갈까?”
“아니, 돌아다니기도 피곤하고 우리 카페나 가자.”
뭐라도 하나 즐기게 해드리고 싶은데.
재희는 핸드폰을 재빨리 켜 검색해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았다.
“여기로 가자. 제주도에서 유명한 카페래. 학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나 봐.”
“그러게. 예뻐 보이네. 거기로 가볼까?”
차를 렌트해 빗길을 달려 도착한 카페는 기대와 다르게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하고 많은 날 중에 오늘 임시 휴업이라니.
조짐이 좋지 않았다.
“미안……. 엄마 여기까지 힘들게 운전해서 왔는데 휴업이라네.”
민망함에 ‘하하’ 웃는 제게 엄마는 오히려 등을 다독이면서 말했다.
“아니야. 다른 데 가면 돼지.”
이럴 때 면허라도 있으면 자신이 차를 끌고 여기저기 가볼 텐데 없으니 어디로 가자고 하기도 죄송했다.
송재희.
그동안 면허 안 따고 뭐했냐.
막상 따면 차를 쓸 일이 없어서 따지 않았더니 이럴 때 꼭 낭패를 보게 된다.
머리를 뒤로 쓸며 손톱을 뜯고 있자, 엄마의 손이 그녀의 손 위로 포개졌다.
“계획이 틀어져서 짜증 난 거야?”
별말 하지 않고 손톱만 뜯어도 내 기분을 아는 엄마.
차마 그 모습에 그렇다고 말 할 수 가 없었다.
“미안해서.”
멋진 휴가를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첫 시작부터 틀어지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 기분 풀어.”
“응…….”
속상한 마음에 나오는 대답도 시원치 않았다.
재희는 애써 기분을 추스르며 엄마와 함께 다음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사람 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마저 하필이면 임시 휴업 상태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