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8 - 일기(2)
감정을 만드는 내 마음과 글을 써 내려가는 내 머리가 사막화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내게 들어오는 감정과 글이 없어서 밖으로 내보낼 것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안에서는 감정이 들끓어서 주체할 수 없었다. 기쁨은 터질 것같이 기뻤고, 슬픔은 멎을 것같이 슬펐다. 들끓는 감정을 밖으로 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일기를 썼다.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다. 잠을 청하러 누운 밤,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낮에는 도서관에 들러 글을 읽었다. 시를, 소설을, 그 해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었다. 공감되는 글을 발견하면 잠시 멈추어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 과정은 내 안의 감정을 단단히 뭉치는 작업이기도 했는데, 흐물흐물 쏟아질 것 같은 내 마음은 그것과 똑 닮은 글로 인해 치유되고 소성되었다. 그럼 그 감정은 단단한 내 것이 되어 조금 더 안정적인 형태로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그것을 가지고 나는 글을 쓰고 자신을 다스리며 또 며칠을 살았다.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때의 나는 건기와 우기가 번갈아 찾아오고 별안간 스콜이 쏟아지는 열대우림이었다.
지금 내 안은 메마르고 건조하다. 기쁨도 슬픔도 그저 지나갈 뿐, 이제 더는 들끓지 않는다. 마음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해진 것이다. 어쩌면 이게 이상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깎아먹지 않아도 되고, 근본 없는 불안함에 떨 필요도 없다. 적당한 온도로 편안한 하루를 보내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던 감정과 글들도 함께 점점 휘발되어간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 마음에부터 이미 그것이 있어야 한다. 진짜 감정을 들여다본 뒤 그것을 글로 풀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나에게 그 감정과 글이 찰랑찰랑 남아있어야 하는데, 이젠 퍼낼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나는 메마른 사구만 가득 쌓여있는 퍼석퍼석한 사막이다.
글을 쓰려거든 글이 들어와야 한다. 힘을 내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요즘 글이 쉬이 읽히지 않는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나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황량한 모래만 가득해서 그 무엇에게도 큰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지나갈 뿐이다.
김지수 작가님과 이어령 선생님이 함께 쓰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어제 다 읽었다. (무엇이라도 읽어보려는 노력이었는데, 얻을게 많은 책이었다.) 거기서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자기 안에 단어가 다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가지고 있던 그 많은 단어들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오백 개의 단어 정도만 남아있다고. 물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지혜를 폭포처럼 쏟아내시는 당신이었지만, 그 말을 읽고 나도 생각해보았다. 내 안에는 과연 지금 몇 개의 단어가 남아있을까? 이미 많은 단어들이 공중으로 증발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자꾸 쓰고 싶다. 그렇기 위해서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리적인 시간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퇴사를 해야 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또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마음의 여유도 필요하지만 지갑의 여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쓰기 싫은 글을 먼저 써야 하는 역설인 것이다.
시 한 편에도 깨어나던 내 마음이 이제는 책 한 권에 일어날락 말락 한다. 다시 내 마음이 촉촉해졌으면 좋겠지만 또 그 때문에 안달복달하며 감정에 휘몰아쳐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을 잘 다뤄 필요한 만큼만 꺼내 쓰고 싶다. 그러나 이도 저도 못하는 나는 아직 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