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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수다쟁이
Nov 23. 2024
주부도 전문직이다
전업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10여 년
간혹은 그 명함이 한참 유행이 지난 옷을 꺼내 입는 것처럼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아마도 그건
자아실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실질적인
경제활동의
주체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부담감 혹은
미안한
마음이
체기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다
어떤 날
문득 10년
넘게 주부로 살아온
나를 돌아보니
나는 이곳저곳에
참 쓸모가 많은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되는
가정이라는
회사에
주부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주부는
보이지 않는 경제활동의
주체
자
이기도
한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전문가로서의
주부는
음식(요리) 전문가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아이가 어릴 때는 김밥하나 싸는 것도 버거웠던 적이 있었다.
때로는 밥이
설기도 하고
때로는 김밥이 다 터져서
밥 따로
재료 따로 먹어야 하는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음식이건 적당한 맛과 모양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거기에
약간 창의성을 발휘하면 김밥정도는
언제 어느 때 어떤 재료로도
가능하다. 김밥이
터질 일은 찾아볼 수
없고.. 때론
나만의 김밥을 싸기도 한다.
마치 김밥의 달인처럼..
속도는
어떤가? 밥 한 끼를 차리는데 처음에는 두세 시간이
소요 됐다면 지금은 웬만한 건
한 시간
이내에 해결이 된다. 밥 국 반찬 한
두 가지 정도는
말이다.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도 두세 가지 음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도 생긴 것 같다.
(
이를테면 배추라는 식재료로
배춧국, 배추 전,
속배추로 삶은
나물 같은
요리를 할 수 있다.)
TV에 나오는
요리사처럼 특화된
요리는
아니지만
집에서 먹는
밥 한 끼 정도 언
제 어느 때라도 계량 없이 만들 수 있는 전문가가 되었다.
주부의
또 다른
전문직은
내 아이의
교육(정서)
전문가
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은 언제 어느 때나 정보가 필요하다. 다른 아이에게 맞는 정보가 아닌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와
교육
.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던 우리 아이는 겁이 많고 사회성이
조금은
부족한 아이였다.
친구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뻘쭘해했던 아이를
위해 나는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친구 엄마에게 말을 걸거나
,
다가가서
같이 놀자고 제안했다.
순하고 얌전한 아이 성향은
놀이터 친구나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
오히려 인기가 있었고.
사회성이 부족한 우리 아이는 밝고 활달한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
유치원이 끝나고
놀이터에서의
두세 시간의 놀이시간은 아이에게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충분히 익히고 행복한 정서적 안정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 시간들로 인해 아이는 학교라는 커다란 사회에서도
무리 없이 잘
생활해
나가는 것 같다.
내 아이에게 부족한 면을 찾고, 거기에
알
맞은
솔루션을 찾는
것은
엄마의 중요한 역할이다
.
운동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소극적인 성향이지만
어린
시절에
정적인 아이는 극히 드물다.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고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또 다른 에너지가 생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운동은 필수라고 생각된다.
아이가
성격이 소극적이라고 운동까지
정적인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유아기 때
여자
아이라면 한 번쯤은 다 해보는
발레를 시켰더니 처음에는 예쁜 발레복에 눈길이
가서 좋아했던
아이는
금세
발레를 지겨워했다.
그래서 나는 좀 활동적인 운동인 생활체육이나
댄스로 운동을 바꿨다. 생각보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아이는 케이팝댄스나 생활체육을
좋아해
1년 이상 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엔 수영을 시켰는데 리듬감이 있는 아이는
수영도 곧잘 했다. 아주 추운 겨울 어쩌다 한번
결석하는 것 말고는
수영은 마스터반까지 3년을 했던 것 같다.
여름휴가를 맞아 물놀이를 갈 때는 적어도 아이는
물을 무서워하지는
않았고
,
나도 물에 대한 큰 걱정은 덜었었다.
아이의 교육 중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아이의 성향을 살피는 일은 아이의 정서를 살피는 일과 비슷하다. 부족한 부분은 좀
보완시켜 주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보단
좋아하는 것을 찾아 꾸준히 시키면 아이는 좀 더 안정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자랄 수
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작은 관심은 아이에겐 소중한 정서적 소통과 교류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내 아이의 성향에 맞추어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는
없다.
전문직으로서
전업 주부가 가장
움츠러드는
부분은 경제활동을 못한다는 점이다. 맞벌이가 많은 요즘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문제도 잘 들여다보면 주부라고 해서
전혀
경제활동
에 기여를 안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부들은 사소한 돈을 아낀다.
마트에서 주는 쿠폰은 저장해 놓았다가 할인을 받기도 하고
마트별로 가성비 좋은 품목을 찾아 좋은 물건을 싸게 사기도 한다.
어느 아울렛은 매주 수요일마다 세일을 하니
필요한 소비는 수요일로 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정해진 생활비에 맞추어 생활하다 보면
꼭 필요하지 않거나
비싼 물건은 잘 소비하지 않게 된다.
주부는 합리적인 소비의
주체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건 가정 경제에
커다란
주춧돌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가 좀 크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좋은 경험이었고
, '
돈을 버는 일이 참 힘들구나
'
하는 것도 오랜만에
느껴보기도 하고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네다섯 시간의 짧은 아르바이트는
노동 강도가 세다. 더구나 주부들이 하는 아르바이트의 경우엔..
두세 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면 나는 이미 하루에 쓰는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오후에는 병든 닭처럼 늘어져있게 됐다.
간신히 밥을 대충 하거나 또는 오늘 번 5만 원으로
한 끼를 시켜
먹는
경우가 잦았다.
나름 보람도 찾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득이 되진 않았던 것 같
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당근이다. 아이가 입다가 작아진 옷이라던가
일 이년 정도 읽고 난 책은 당근 하기에 가장 좋은 거래품목이다.(주로 현금 직거래만 한다
.
)
특히 책은 상태가 좋은 중고로 사서 읽히고
다시 좀 싼 가격에 팔아 다른 책을 사거나
아니면 아이의 몫으로 저축을
한다
.
큰돈은 아니지만 작은 돈의 소중함을 느끼는
경제활동이라 여겨진다.
물가에 제일 민감한 건 주부다.
물가가 어느샌가 너무 올라 엥겔지수가 차지하는
비용이 가계소비의 절반이상이라고 한다.
소득은 비슷한데 엥겔지수만 높아지고
있어
한숨만 나온다.
절대적인 비용은 어쩔 수 없더라도 뭔가 낭비하고
있는 건 없는지 고민해 봐야겠다.
가정 경제의 경제부
장관은 주부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도 주부
가 하는 일은 많다.
아이와 남편이 없는 시간은 정리정돈과 빨래를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분리수거도 해야 한다.
아이의 학원 픽업도 해야 한다.
남편의
셔츠와 바지를 10개씩 다림질하는 날은
세탁소 사장님이 된 듯도 하다.
멀티가 되지 않으면 주부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어느
날
30여
년 직장 생활을 하고 은퇴한 친한 언니와 얘기를
나누다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는 아이 키우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떻게
직장 생활하며
사
실
수 있으셨어요
?"
그 언니가 나에게 한 대답은 이랬다.
"
나는 직장과 가정 두 가지 일을 하고 살았지만
솔직히 하나는 포기하며 살 수밖에 없었어..
직장은
대충 할 수 없어서
가정일을 포기
(신경을 많이 못 써줬다는 의미)
해야 했지..
아이들과 집안 살림
,
먹는 거
.
.
다 잘하면 좋겠지만 몸이 두 개가 아닌데
어떻게 다 잘해?
"
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언니의 고단했을 삶을
위로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전업주부로서의 나의 삶도
위로를 받았다.
누구나
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가보지 않은 길은 늘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언니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
언니
,
저는
가정이라는 회사에
취업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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