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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an 28. 2022

해운대의 추억

내 배안에 아홉달을 품고있다가 세상으로 나온 내 아이들이라는 존재는 정말 신비하다. 내가 한참을 잘 살고 있었는데 내 인생에 불쑥 끼어들어온, 그 아이들이 내 인생에 들어온 후 내 삶은 너무도 많이 바뀌었다.  

남편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아이들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 신비한 느낌이 더 큰 것 같다. 어디서 이런 존재가 내게 와주었을까. 나와 닮은 곳이 많기도 한, 하지만 완전히 나와는 다른 존재. 정말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존재.


그 아이둘과 해운대를 다녀왔다.


나에게 해운대는, 광안리를 피해서 가는 해변이었다. 나의 첫남자친구가 부산사람이었고, 그의 대학교가 광안리 근처라 자주 광안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광안리는 마음이 아파서 가지 못하고, 해운대만 다녔다. 새로운 다른 남자친구들과 해운대에서 데이트를 했다. 해운대 입구 횡단보도는 다른 연인과 처음 손을 잡고 뛴 곳이다. 그 횡단보도에 서면 늘 그 사람이 생각난다.


더이상 학생 신분이 아닌 돈을 버는 성인이 된 후의 해운대는, 주로 호텔여행이었다. 남편과 해운대에 있는 좋은 호텔은 다 다녀본 것 같다. 육아가 시작된 후 나는 남편에게 서운한 점만 크게 기억이 는데, 이 곳 해운대에 남편없이 오니, 남편이 내게 잘해주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이 호텔 수영장에서 남편과 함께 수영을 하고 배드에 누워 책을 봤지', '내가 브런치를 좋아해서 달맞이길 브런치 맛집을 다 검색해주었지', '남편과 함께 유아동반이 안 되는 라운지를 한참을 다녔었지', '첫 부산 여행에선 엄청 좋은 뷰가 있는 방을 예약해주었지' 그때는 나를 엄청 배려해주는 자상한 남자였는데, 그때가 전생처럼 아득하지만, 모두 따뜻하게 기억에 남아주었다.


남편을 생각하는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아빠랑 모래놀이 했던 곳이야", "저 호텔은 아빠랑 같이 갔던 곳이네" 하며 다 기억을 하는 첫째. 기억이 안 날텐데 다 기억하는 척하며 맞장구를 치는 둘째. 아이들에게 아빠는 큰 존재이다. 주말에는 사람도 많고 방값도 비싸서 평일에 종종 아들둘과만 호텔여행을 다녔는데, 그래도 가족 모두 함께 하는 여행이 더 좋은 것 같다.


어쨌든 내 추억 속의 해운대는 그런 곳이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곳. 유아동반이 안 되는 라운지에서 바다뷰를 감상하며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는 곳(살 찔까봐 깨작깨작 맛만 보는 수준으로 다양하게 음식을 맛보기도 했지). 젤리 속을 헤엄치는 듯한 느낌으로 기분 좋게 수영을 하는 곳. 수영을 하다가 배드에 누워 책을 읽으면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그게 나의 해운대였다. 해운대에서의 나는 늘 예뻤던 것 같다.


하지만 아들둘과 함께 온 해운대는 정말로 달랐다. 모래놀이를 꼭 해야 하는 아들둘 덕에 차가운 바다바람을 맞으며 모래에 앉아 아이들이 뿌려대는 모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받아주었고, 물이 필요하다는 첫째를 위해 바닷물을 뜨러갔다가 한 발이 물에 빠지는 참사를 겪고도 내 발이 차가운지도 모르고 아들둘을 챙겼다. 코로나라 식사는 호텔방에서 했는데, 집에서 가져온 아이들 식판을 꺼내 포장해온 김밥과 어묵을 나눠 담아주고, 먹기 좋게 잘라서 입에 넣어주었다. 나도 배가 고프지만, 중간에 물 달라 우유 달라, 음식 크기가 크다 작다하는 아이들시중을 들다보면 배고픈 것도 잊어버린다. 아이들이 배가 좀 차면 나는 아이들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


나는 왜 이 곳에 왔는가? 회의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와 바다다" "여기 너무 좋다" "우와"하는 아이들의 감탄사를 들으면, 내가 왜 이 곳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너희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는 그게 좋은거다.





부산은 아이들이 내 삶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이 더 많은 곳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추억도 많아진 곳이 되었네.

둘째 돌 즈음 여름휴가로 왔었던 여기 해운대에서는, 업혀서만 자는 둘째 아들을 업고 왔다갔다했다. 남편은 아기띠를 하라며 어부바를 하는 나를 좀 부끄러워했는데, 나는 내 아기가 잘 자는 게 중요해서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뷔페를 먹겠다고 가서 아기띠를 하고 서서 뷔페를 와구와구 먹으니,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께서 아기를 안아주시겠다고도 했던 곳.. 나의 부산은 내가 엄마가 되기 전후로 정말 다르다.

나도 아가씨 때는 그 누구보다 고상했다고 자부하는데, 엄마가 된 후로는 그야말로 딱 아줌마 이미지네^^;;


이렇게 늙어가는가 보다. 하지만 이렇게 더 깊어지는가 보다. 엄마가 되면서 나는 깊어졌다. 물론 힘에 부쳐서 타인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행동도 많아졌다. 하지만 어부바를 한다거나, 서서 뷔페를 먹는다거나(그때는 코로나 전이다)하는 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줌마같다"는 말을 안 좋은 뜻으로 사용하는데, 나는 아줌마같이 변해가는 나도 좋다. 아이들을 위해 나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아이들의 웃는 모습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내가 좋다. 이 기쁨을 알게 해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아줌마가 되었지만, 행복하다.


물론 예쁘게 차려입고 고상하게 음식을 먹는 아가씨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김밥을 와구와구 입에 넣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는 지금의 나도 참 좋다. 너희들과 함께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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